광복 80돌 기획 ‘식민사학서 시민사학으로’ ⑤-2

일본서기 기록을 불신한다면서도 교묘하게 변용

지역명까지 따와, 임나일본부설 지지 명백한 증거

뒤집어진 향토사학계…편찬위 "다양한 해석" 반박

학문 자유 만끽하려면 왜 공공사업에 '숟가락' 얹나

전자책 여전히 버젓이 공시, 7년째 허공에 뜬 논의

광복 80돌이 됐건만 대한민국 역사는 여전히 '식민사학'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라이트와 극우 파시즘의 변이과정을 거치면서 21세기 한복판에도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일까? 인문연구가 이병권 씨가 멀리 에도 막부시대에 파종돼 메이지시대 인공재배된 식민사학이 어떻게 '친일'의 뇌리에 이식됐는지 돌아보았다.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에도 막부가 준비한 '미래' ② 과학 위장한 실증주의 사관 ③ '제국주의 사생아' 조선사편수회 ④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해방 이후' ⑤ 되살아난 유령1, 동북아 역사지도 ⑤ 되살아난 유령 2, 전라도 천년사 ⑥ '시민사학'으로 광복 백주년 준비하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시민 80명이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2025.6.30 [서경덕 교수 제공] 연합뉴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시민 80명이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2025.6.30 [서경덕 교수 제공] 연합뉴스

동북아역사재단이 추진한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사업’이 좌초된 뒤, 최대 규모의 역사 편찬 사업이 다시 추진되었습니다. 호남 지역 3개 지자체(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가 2018년에 착수한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입니다. 총 사업비 24억 원을 투입해 4년 뒤인 2022년, 34권을 간행했습니다. 총 1만 3,559쪽 분량으로, 출판물은 모두 2,000질이 발간되었습니다. 집필진은 호남 지역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213명이 참여했습니다.

이재운 편찬위원장(전주대 명예교수) 외 참여 연구진 명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공개 되었습니다. 이병도 전라북도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23년 10월 19일 도정 질의 중 명단 공개를 촉구한 바 있으나, 편찬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뉴스 전북, 2023.10.19.) 이 사업은 동북아역사지도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 인식을 둘러싸고 강단사학계와 시민단체, 향토사학계 간 논란을 촉발했습니다. 또한 전라북도 의회와 국회가 개입하면서 사업이 중단되는 공통점을 보였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가 완성되지도 않은 채 좌초됐다면, 전라도천년사는 온, 오프라인으로 간행된 뒤 논의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합니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사업은 1018년 고려 현종 때 ‘전라도’라는 지역 명칭이 생겨난 지 천 년을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지역 강단사학계는 ‘책임 있는 역사 서술’을 내세우며 사업 주체로 참여했습니다. 이재운 전주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전라도천년사편찬위원회’를 꾸리고 집필진을 구성했습니다. 위원회는 고려 현종 이전의 상고사까지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 때문에 사업 공식명칭과 달리 실제론 ‘이천년사’가 됐습니다.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가 온라인에 공시한 책. 여론 수렴과 공개 논의를 명분으로 방치돼 있다. 2025.8.31. [편찬위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가 온라인에 공시한 책. 여론 수렴과 공개 논의를 명분으로 방치돼 있다. 2025.8.31. [편찬위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사업이 관심을 끈 계기는 ‘출판 봉정식’ 행사 안내였습니다. 2022년 12월 21일 전주시 라한호텔에서 전북·전남·광주 주요 단체장이 참석해 봉정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인 12월 20일 전라북도가 이를 돌연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봉정(奉呈)’이란 단어는 문서나 문집을 삼가 받들어 올린다는 뜻입니다. 행사 명칭에서조차 “누가 누구에게 받들어 바친다는 의미인가”라는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상하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편찬사업의 주무 지자체였던 전북도는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라며 논란이 된 부분을 재검토하고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향신문, 2022.12.21.)

갑작스러운 봉정식 취소는 시민들의 강력한 이의 제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19일 ‘전라도 오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 등 시민단체가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정식 취소”와 “최종본 즉각 공개”를 요구했습니다(경향신문, 2022.12.19.). 이들은 일부 집필 내용이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하며 역사 왜곡, 식민사관 조장이라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최종본 공개, 주요 수정사항을 포함한 공개 검증 후 출판, 그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책임”을 촉구했습니다.

전라도 천년사 1권 표지
전라도 천년사 1권 표지

2023년 4월 18일, 전라북도는 ‘전라도 천년사’를 전자책(e-book) 형식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식민사관 관련 부분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겨레, 2023.4.18.) 이후 전라북도연구원은 2023년 5월 8일, 2주간의 의견 수렴 결과 총 73명이 제출한 157건의 의견이 접수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KBS 뉴스, 2023.5.8.). 편찬위원회가 이들 의견을 논의하고 반영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공개 기간은 두 차례 연장되었으며, 전자책 형태의 ‘전라도 천년사’는 2025년 현재까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취합된 157건에 대한 내용이나 이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답변은 아직까지 이루어지고 않고 있습니다. 제작에 참여한 학계에서는 부록으로 의견을 담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전면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e-book 형태로 편찬 내용이 드러나면서 전라도 지역 시민단체와 향토사학자들은 ‘전라도천년사’가 일제 식민사학의 유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를 표했습니다. 2023년 1월 20일 ‘바른역사시민연대’ 등 3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편찬 내용이 식민사관에 기반한 역사 왜곡이며, 백제의 지위를 축소하고 전라도 지명을 ‘일본서기’의 지명으로 표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일본서기 인용이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였다고 지적하며 편찬위원회를 상대로 전권 폐기, 공개 사과, 해산을 요구했습니다. (광주 MBC,2023.5.25.) 나간채 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전남대 명예교수)는 “특히 고대사의 주요 전거가 일본서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일본서기 자체가 문제가 많은데, 친일 식민사관 학풍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편찬 참여 학자들은(비실명)은 이러한 주장은 오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인 15일 광복회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주최한 '국민과 함께하는 광복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광복 80주년인 15일 광복회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주최한 '국민과 함께하는 광복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삼국사기·삼국유사 같은 한국사 기록만으로는 고대사를 온전히 해석하기 어려워 다양한 외국 사료를 인용할 수밖에 없고, 일본서기 인용도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그 왜곡을 지적하기 위한 전거라는 설명입니다. 교차 검증은 학술 연구의 기본이며, 이를 막는 것은 침소봉대라는 주장입니다. 김덕진 편찬위원회 부위원장(광주교대 교수)도 “(일본서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고대사 연구자들이 사료 부족 때문에 인용할 수밖에 없고, 다만 곧이곧대로가 아니라 비판·검증의 맥락에서 활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편찬위 측은 맞춤법 오류와 역사 해석 차이 문제는 전자책 의견 접수 마감(2023년 7월) 이후 검증 절차를 거쳐 바로잡겠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5월 31일 가야사학회·고구려발해학회·고조선단군학회 등 24개 학술단체는 공동성명을 발표해, 전라도천년사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사이비 역사학’적 시각에 경도되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상대에 ‘사이비’ 딱지를 붙여 무시하는 일제 총독부의 수법 그대로였습니다. 성명서는 “일본서기의 한국 고대사 관련 기록은 왜곡이 많지만, 백제계 사서가 인용되어 연구에 필요한 사료도 다수 존재한다. 예컨대 백제가 파견한 왕인 박사, 성왕의 일본 불교 전파, 무령왕의 섬 출생 설화 등은 일본서기에만 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경 편찬된 책으로, 역사서라기보다는 일본 천황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합니다. 특히 4~6세기 야마토 왜의 한반도 진출과 관련된 기사들은 자국 위세를 과장하며, 한반도 남부 역사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따라서 일본서기에만 전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해당 시기 일본인들조차 부정하기 어려운 대세로 굳어진 이야기를 수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곧 일본서기의 가치가 독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마 지워버릴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계 성명서가 일본서기의 유용성을 강조한 부분은 오히려 그 취약성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사례인 것입니다.

 

백제와 신라를,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관문, 정감록 십승지 무주 무풍면의  ‘나제통문’
백제와 신라를,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관문, 정감록 십승지 무주 무풍면의 ‘나제통문’

전라도천년사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되었습니다. 2023년 5월 10일 전라북도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은미 의원은 편찬 과정의 졸속성과 식민사관적 표현, 지나치게 짧은 공람기간을 지적하며 재논의를 촉구했습니다. 5월 15일 본회의 발언에서는 “식민사관과 역사 왜곡, 수백 건의 맞춤법·오탈자”를 근거로 폐기를 주장했습니다. 같은 날 전북도의회와 도청 앞에서는 시민사회와 일부 의원들이 ‘전라도천년사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경향신문, 2023.5.16.).

2023년 10월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습니다. 이재운 편찬위원장은 “우리 교육과정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수록했다”고 주장하며, 일본서기 인용에 대해서는 “독소와 왜곡은 제거하고 건전한 내용만 활용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완영 매림문화TV 대표는 “단군을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기술하고, 일본서기의 지명 비정을 인용하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꼴”이라며 전면 폐기를 주장했습니다(노컷뉴스, 2023.10.15.).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역사는 한 번 잘못 기록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라며 다른 학설을 병기해 수정 발간하고 임나일본부설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은 삭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같은 당 김윤덕 의원은 “전라도천년사가 도민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세워야 할 책인데, 오히려 식민사관 논란으로 큰 혼란을 주었다”며 집필진이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역시 “이것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역사 인식 문제”라며, 검증 절차 부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후 국감 분위기를 반영해, 2023년 10월 17일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문체위 간사 김윤덕·이병훈·이개호·이용호 의원은 광주·전남·전북 3개 시도지사에게 ‘전라도천년사’ 본문에 여러 학설을 병기해 수정·재발간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이들은 “별책 분리가 아닌, 본문 내에 논쟁적 학설을 함께 수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노컷뉴스, 2023.10.17.)

 

오세훈 서울시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어린이 합창단원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 타종행사'에서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2025.8.15 [공동취재]
오세훈 서울시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어린이 합창단원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 타종행사'에서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2025.8.15 [공동취재]

3개 지자체는 잠정 배포 중단에 이어 2025년 5월 13일, 고려 현종 이후 시기만 우선 배포하는 안에 합의하면서 사실상 재배포 방향을 구체화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천년사’의 최종 운명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2023년 4월 시민단체 요구로 공람을 목적으로 일시 공개된 전라도천년사는 공람 기간이 계속 연장되어, 현재 누구나 전자책 형태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 형태로 인터넷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공람 과정에서 접수된 157건의 시민 의견은 공개되지 않았고, 그 반영 여부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주요 역사 왜곡 쟁점

전라도천년사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시민단체와 편찬위원회의 인식 차이가 잘 드러나는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2023년 7월 27일 오후 2시, 남도일보 본사 회의실에서 긴급현안 ‘전라도천년사 왜곡논쟁’ 100분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편찬위원회를 대표한 3인과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3인 등 총 6명이 패널로 나서 쟁점별 논쟁을 벌였습니다. 지병문 전 전남대 총장이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편찬위 측에서는 조법종 우석대 교수, 박중환 전 국립나주박물관장, 강봉룡 목포대 교수가, 반대 측에서는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정현애 바른역사시민연대 공동대표가 각각 패널로 참가했습니다. 160여 분 동안 이어진 토론에서 찬성·반대 측이 각각 제시한 의제를 종합하고, 논란의 핵심으로 공통 의제들을 추려 선정했습니다.

필자가 이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한 내용은, 집필진이 왜 그토록 전라도천년사 집필 과정에서 유독 일본서기에 집착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편찬위 측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고대 전라도 지역의 역사 연구를 하기에는 『삼국사기』 기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산강 지역 가야와 마한 지역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해당 시기를 비교적 많이 다루고 있는 일본서기를 활용했다는 주장입니다.

 

1915년 10월, 일제가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연 조선물산공진회 때 근정전 앞에 내걸린 일장기.   나무위키
1915년 10월, 일제가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연 조선물산공진회 때 근정전 앞에 내걸린 일장기.   나무위키

둘째, 전문 역사서로서 일본서기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필요한 부분만 철저히 선별해 해당 지역의 고분·유물·유적과 교차 검증해 활용했다는 주장입니다. “왜곡과 부실의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일본서기를 고집하며, 심지어 삼국사기의 기록조차 부정하면서까지 집착했는가?” 좌장 지병문 전 총장이 여러 차례 제기한 의문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포함해 전라도천년사 논쟁에서 드러난 주요 쟁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단군·고조선 부정과 강역 축소

전라도천년사는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기원전 8~7세기”로 기술했습니다. 이는 단군을 역사적 실체로 보지 않고 신화로 격하하는 식민사학적 인식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기원전 2333년을 고조선의 개국 시점으로 기록했습니다. 『동국통감(東國通鑑)』 『제왕운기(帝王韻紀)』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다수의 역사서가 고조선의 건국 시점을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최재석, 윤내현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고고학·문헌학 연구들이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 가능성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선 칼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제1의 과제였고,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부로 축소하는 것이 그다음 과제였습니다.

친일사학의 거두 이병도(1896–1989)는 말년에 자신의 평생 연구 주제였던 단군과 고조선을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는 글(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을 발표하고 최태영과 공저한 《한국상고사 입문》(1989)에서 재확인했습니다. 그의 후학들은 이러한 ‘스승의 유지’를 계승하기는커녕 스승이 ‘오류’로 인정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편찬위 측 조법종 교수는 고조선 건국 시기와 관련, 남도일보 토론회에서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기원전 2333년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 후기인 기원전 8~7세기를 지칭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천년사 어느 대목에서 고조선 건국 시기와 전체 치세 기간을 분명히 언급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 자. 이병도는 "단군을 신화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일부 인정했다.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 자. 이병도는 "단군을 신화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일부 인정했다.

2. 벼농사 시작 시기의 과도한 후퇴

이재운 편찬위원장은 편찬서 서문에 “백제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했습니다. 백제의 문화 수준과 역사 발전을 부정하는 기술입니다. 《한민족대백과사전》 ‘농업사’ 항목(김민수,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은 한반도 남부에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시기를 늦어도 기원전 1세기로 봅니다. 이 위원장의 기술과 최소 2~3세기 차이가 납니다. 더욱이 전라도와 동일 문화권인 충북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 유적은 기원전 1만 년을 훨씬 상회합니다. 단순 착오라기보다 백제 지역의 문화 발달 시기를 늦추는 기술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일본과의 문명 격차를 축소하거나, 오히려 일본이 더 앞섰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결국 4~6세기 일본 야마토 왜가 해상 왕국을 이루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3. 변형된 임나일본부설?

“모두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쳐서 깨뜨렸다. 이로 인하여 비사달, 남가라, 탁국, 안라, 나라, 탁순가라 7국을 점령하였다. 곧이어 군대를 이동하여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래를 도륙하고는 백제에 하사하였다. 이에 백제 초고왕 및 왕자 귀수도 또한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만났다. 이때 비리, 벽중, 포미지, 반고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일본서기, 권9 신공 49년(396년)

전라도천년사 선사·고대편 3권 369~383쪽(전자책)에 인용된 일본서기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대해 전라도천년사가 기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이 일본서기의 기사에서 서쪽 지역을 침탈한 주체는 야마토 왜가 아닌 백제 근초고왕이고, 둘째, 서기 369년 당시 근초고왕은 영산강 일대를 정복했지만 지방관을 파견해 직접 통치할 능력이 없어, 6세기 후반까지는 호족 중심의 간접 지배가 이어졌다. 셋째, 백제는 6세기 초까지도 영산강 유역을 직접 편입하지 못했고, 여러 부용국이 통치하는 상태로 두었으며, 이들 소국들은 해상세력과 연계해 무역을 벌였다. 마지막으로 『양직공도(梁職貢圖)』의 지명이 일본서기 지명과 유사하므로, 4~6세기 영산강 유역의 지명을 일본서기 지명으로 비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직공도는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에 해당하는 양(梁)나라 무제(武帝, 재위 502~549)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책입니다.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해석입니다. 첫째, 일본서기 기사 자체의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편찬위 스스로 일본서기의 신뢰도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어떠한 사료 근거도 없이 해당 기사의 주체가 야마토 왜가 아닌 백제의 근초고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왜 이 기사를 인용하였는지 묘연합니다. 일본서기의 기사가 잘못된 것이라면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강력한 ‘해양세력(야마토 왜로 추정)’과 영산강 일대 호족들과의 연대설 역시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둘째, 백제의 영산강 지배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와 충돌합니다. 4세기 후반 이후 영산강 유역에서는 백제계로 추정되는 고분 양식과 유물들이 등장합니다. 백제가 이미 일정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6세기 후반까지 백제의 직접 지배가 없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셋째, 호족 중심의 독자세력설이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영산강 유역에 강력한 토착 세력이 있었던 것은 일정부분 사실로 보입니다만 이를 곧바로 일본 해상세력과의 연계로 해석할 근거는 희박합니다. 일본계 유물은 교역 흔적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해상세력이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의 변형판일 뿐입니다.

넷째, 『양직공도』 지명 비정 문제입니다. 일부 지명이 『일본서기』와 대응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이를 곧바로 “일본 해상세력의 지배 증거”라고 보는 것은 과도합니다. 학계에서도 지명 비정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은 학문적 균형을 잃는 것입니다.

다섯째, 양직공도를 통한 위치 비정의 문제입니다. 이 책은 양나라에 사신을 보낸 여러 나라(이른바 ‘번국(藩國)’)의 사신 모습과 그 나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양은 주변 여러 이민족과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외교가 활발했습니다. 양나라는 이러한 기록으로 제후국과의 중화적 위계 질서를 드러내는 동시에 외국 정보(풍속, 의복, 외교 관계)를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전라도천년사의 편찬진은 양직공도의 그림에 나오는 한반도 남부의 그림에서 몇 가지 위치를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과 비교하여 영산강 유역의 호족세력과 해상세력(야마타왜)이 활동한 지명을 비정한 것입니다. 일본서기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반도 남부의 지역명을 왜 굳이 유추와 해석을 거듭하면서까지 기술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데라우치 초대 총독의 말. 일제는 식민지배 초기부터 통치 이데올로기 확보 차원에서 조선사 왜곡에 착수했었다. 2025.8.6. [KBS 역사스페셜 화면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데라우치 초대 총독의 말. 일제는 식민지배 초기부터 통치 이데올로기 확보 차원에서 조선사 왜곡에 착수했었다. 2025.8.6. [KBS 역사스페셜 화면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다섯째, 임나일본부설을 연상시키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백제가 직접 지배하지 못했고 일본식 지명을 가진 지역이 있었다는 주장은 곧 일본 야마토 왜의 지배지역을 의미합니다. 근초고왕과 양직공도를 끌어들여 설명을 좀 더 풍부하게 한 것 같지만 야마토 왜가 한반도 남부를 4~6세기 동안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에둘러 설명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입니다. 결국 불필요하게 일본서기를 인용하면서도 일본서기의 내용 자체를 사료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뒤틀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4. 서기 369년의 비밀

전라도천년사는 일본서기 신공 49년의 기술 내용을 달리 해석하면서도, 정작 이 ‘신공 49년(서기 369년)’이라는 시점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369년 야마토 왜가 군사를 일으켜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 구례 등을 무찌르고 이 지역을 백제 왕에게 주었으며, 당시 근초고왕이 왕자와 더불어 나아가 무릎 꿇고 감사를 표했다”는 일본서기 기사는 임나일본부설을 구성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해당 시기에 이와 유사한 어떠한 내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중국의 동 시기를 기술한 어떠한 역사책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가공된 ‘주장’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일본서기의 일부분을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전제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다고 추론하게 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서기』는 저자나 제작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은 책입니다. 역사서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부정확하고 가필의 흔적이 많아 일본 학자들조차 공식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일본서기』가 주장하는 내용을 좀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369년 야마토 왜는 백제 지역 정벌 이전에 가야 7국(일본은 6국이 아닌 7국이라 주장)을 멸망시키고 서진하여 백제 지역을 평정했다고 합니다. 맹렬한 기세로 백제 지역에 들어서자, 근초고왕이 왕자를 대동하고 무릎 꿇고 항복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야마토 왜는 근초고왕에게 전라도 점령 지역을 하사하여 다스리게 하고, 야마토 왜에 충성하도록 했으며, 이를 근거로 ‘임나일본부’가 가야 지역과 전라도 남·북도를 아우르는 지역을 지배했다고 주장합니다. 전라도천년사는 이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369년’이라는 연대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조작일 가능성이 큽니다. 야마토 왜 신공황후 49년 시기는 실제로는 서기 249년인데, 누군가 이를 120년 끌어올려 369년으로 주장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시라이시 다이이치로(白石太一郎, 1907~1997)는 1965년 『日本歴史』 제312호에 발표한 논문 ‘고고학과 문헌학에 기초한 편년 재검토(考古学と文献学に基づく編年の再検討)’에서 고고학적 발굴 자료와 문헌 기록을 종합한 결과 신공 49년 기록이 실제 사건보다 약 120년 앞당겨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풍납토성 터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청동자루솥.(국립중앙박물관)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풍납토성 터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청동자루솥.(국립중앙박물관)

그렇다면 누가 이런 과감한 ‘역사 수정’을 추진했을까요? 일본서기의 진위 여부와 별개로, 120년 조작은 일제 식민사학자 쓰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와 그의 영향 아래 있던 이병도에 의해 유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쓰에마쓰는 도쿄대 출신으로 이병도와 함께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식민사학자로 해방 이후에도 이병도와 친분을 유지하며 한국 학계를 드나든 인물입니다.

쓰에마쓰는 『임나흥망사』(1949)에서 신공 49년을 369년으로 수정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특별한 사료적 근거는 없었습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한다’는 주장뿐이었습니다. 이병도 역시 같은 입장을 취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라도천년사 편찬위도 일본서기의 신공 49년이 369년이 아니라 249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도일보 토론회에 참석한 편찬위 측 조법종, 박중환, 강봉룡은 시민대표 측의 문제 제기에 ‘120년 조작’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의문입니다. 스스로도 인정한 부실한 일본서기를 왜 집필 기준으로 삼았는지 말입니다.

필자는 ‘120년 조작’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론합니다. 첫째,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 남부가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려 했다. 둘째, 일본의 유일한 역사서라 주장하는 일본서기에 근초고왕 시기 야마토 왜의 한반도 남부 정복 기록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적극 활용했다. 셋째, 그러나 실제 역사 시기와 기록이 맞지 않자 임나일본부설을 정설로 만들기 위해 시기 조작이 불가피했다.

근초고왕이 굴복했다는 기록은 당시 백제가 고대국가로 완성되어 가던 시점이라는 역사적 상황과도 모순됩니다. 근초고왕 시기 백제는 문물 정비와 활발한 대외 진출을 통해 고구려·신라·가야와 함께 철기문화를 누리며 고대국가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6세기 후반에야 철기문화를 갖추었습니다. 결국 ‘실증사학’을 자처한 이들의 역사관이 사실상 왜곡과 조작에 근거한 것임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5. 임나일본부설 지명의 무분별 적용

이제 본격적으로 전라도천년사가 일본서기를 근거로, 한반도 남부 지명을 어떻게 일체화하려 했는지 논리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병행 인용했다는 주장입니다. 제작진은 삼국사기·삼국유사와 일본서기의 지명 기록을 상호 보완 자료로 본다고 전제했습니다. 특히 4~6세기 전후 가야·백제·왜 관계를 기술한 일본서기에서 ‘한반도 남부 소국(小國) 이름’과 현재 지명을 음운 유사성과 위치 추정을 통해 연결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의 지명 ‘己汶國(기문국)’은 발음과 지리 추정을 근거로 ‘남원’에 비정합니다.

둘째, ‘임나일본부설’의 변형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본서기에 나타난 임나 4현·가야 제국·백제 소국 지명 체계를 부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 학자들이 사용한 지명 대응 지도와 고지도 복원 논리를 상당 부분 차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의 ‘사타국(娑陀國)’을 ‘구례·순천’으로 비정한 것은 스에마쓰 야스카즈식 해석으로 보입니다.

셋째, 음운·한자를 과감히 차용했습니다. 지명을 한자 음훈으로 분해하여, 현재 지명과 발음이 유사하거나 뜻이 관련 있는 경우 대응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의 ‘沈彌多禮國(침미다례국)’을 ‘다례’와 ‘다리(지명)’ 발음으로 연결하고, ‘강진·해남 일대’로 비정합니다. 이는 식민사학에서 흔히 사용한 방법입니다. “언어학적 검증이 없는 자의적 비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입니다.

넷째, 고대 교류사를 기정사실화 하여 지명화를 합리화했습니다. 편찬위는 백제·가야와 왜(일본) 사이의 해상 교역 및 군사 교류가 빈번했다고 전제하며, 일본서기 지명을 ‘왜가 기록한 한반도 남부 현지 정보’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지명 기사가 단순히 일본 내 전승이 아니라, 실제 한반도 남부 소국명과 지리 정보를 반영한 기록이라고 가정한 것입니다.

 

전정호 작 ‘광란’(90x60cm 목판화). “독립의 흔적을 지우고 친일, 식민사관을 주입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때마침 히노마루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자가 나타났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사형집행 하루 전 회자수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마음껏 먹게 한다. 술 취한 채 다음날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칼춤을 추며 내리친 칼이 어찌 일도가 되겠는가. ‘광란’ 2023년 계묘년 취중에 빠져 있는 회자수의 미친 칼춤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난도질당해 허공 뿌려지고 장군의 슬픈 귀향을 우리는 비통함으로 보고 있다.”
전정호 작 ‘광란’(90x60cm 목판화). “독립의 흔적을 지우고 친일, 식민사관을 주입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때마침 히노마루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자가 나타났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사형집행 하루 전 회자수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마음껏 먹게 한다. 술 취한 채 다음날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칼춤을 추며 내리친 칼이 어찌 일도가 되겠는가. ‘광란’ 2023년 계묘년 취중에 빠져 있는 회자수의 미친 칼춤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난도질당해 허공 뿌려지고 장군의 슬픈 귀향을 우리는 비통함으로 보고 있다.”

다섯째로 일본서기 지명을 현재 전라도 행정구역과 1대 1로 연결해 반영했습니다. 행정구역에 맞춰 반영했습니다.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으나, 재야학계와 시민사회 측에서 “결과적으로 일본서기 지명 체계를 합리화·고착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논리 구조는 겉으론 “학술적 비교”를 내세우지만, 일제 시기 스에마쓰 야스카즈·이마니시 류 등이 사용한 식민사학 지명 비정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언어학적 검증 부족, 고고학·문헌사학의 교차 검증 미비, 일본서기 기사에 대한 사료 비판 부재가 치명적인 문제로 지적됩니다. 결과적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떠받든 식민사관의 변형이 됐다는 게 많은 재야학계와 향토사학계의 입장입니다.

남도일보 토론회 말미에 정현애 바른역사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전라도천년사에서 언급한 한반도 남부에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비정한 위치와, 쓰에마스 야스카스가 ‘임나흥망사’에서 비정한 지명을 지도에 그려 비교, 제시합니다. 그 결과는 거의 복사 수준이었습니다. 편찬위 측에서는 결론이 유사할지는 모르지만, 접근방법과 연구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천년사가 제시한 위치 비정과 쓰에마스 야스카스가 제시한 위치가 대동소이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러한 논리 구조 속에서 이들이 사실상 만든 지명은 △ 남원→기문국(己汶國) △ 장수(또는 고령)→반파국(半波國) △ 강진·해남→침미다례국(沈彌多禮) △ 구례·순천→사타국(娑陀, ‘임나 4현’ 일부로 해석) △ 여수→哆唎(다리). 일본서기 상·하다리'(上哆唎·下哆唎)에 대응 △ 광양→ ‘牟婁(무로)입니다.

전라도천년사 편찬위는 숱한 지적에도 자신들이 ‘전문 역사학자’라는 점을 내세워 부실투성이 역사 기술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사료 분석에 근거한 엄밀한 연구였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서술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성찰과 반성 없이 수십 년간 이어온 고답적인 연구 방식만으로는, 나날이 성장하는 시민의 역사의식을 따라잡는 데 이미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결국 변화를 강요당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서 국민 대표로부터 '빛의 임명장'을 받은 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 행사에서 국민 대표로부터 '빛의 임명장'을 받은 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전라도천년사 논쟁은 단순한 지역사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 고대사 서술에서 백제·신라·가야·왜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과제입니다. 광주·전북·전남 3개 지자체는 2025년 5월, 고려 현종대 ‘전라도’라는 지명이 성립하기 이전의 역사를 편찬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편찬 작업은 일단 멈추었지만, 전자책은 고스란히 공시되는 어정쩡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논쟁은 역사 편찬의 공공성과 투명성, 그리고 소수 학자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만끽하며 자유로운 연구를 하려면 사적으로 할 일입니다. 굳이 공공사업에 ‘숟가락’을 얹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의 회복과 완성을 지향하는 시대적 맥락에서, 역사 편찬은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공 과제입니다. 특정 학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국회·학계·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제도적 논의 구조를 마련하고, 식민사학의 잔재를 극복하는 역사 정의의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전라도천년사 논란이 남긴 교훈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공정한 역사 인식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1945년 8월, 서울 경복궁 내에 있던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국기를 내리고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미군들. 나무위키
1945년 8월, 서울 경복궁 내에 있던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국기를 내리고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는 미군들. 나무위키

『전라도천년사』 주요 일지

2018년, 광주·전북·전남 3개 지자체, 편찬사업 본격 착수
2022년, 총 213명 연구진 참여, 34권 완간 (2,000질 인쇄)
2022년 12월 21일, 전라도천년사’ 봉축행사 개최) 시도 및 취소 결정
2023년 4월 18일, ‘전라도천년사’ 전자책 공람 및 시민 의견 수렴 절차 개시
2023년 5월 12일, 전라북도 의회에서 본격 문제 제기
2023년 10월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 관련 증언 청취
2023년 10월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3개 지자체에 공식 서한. 다양한 학술적 입장 반영 요청
2025년 5월, 3개 지자체, 고대사 제외·중세 이후 우선 배포합의
2025년 8월현재 학술 재검토 및 공개 토론회 진행 중

참고문헌

국립중앙도서관. 「전라도천년사 편찬 관련 국회 회의록 및 청문회 자료」.
김동걸, 『가야사 어떻게 볼 것인가』, 푸른역사, 2016.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해방세대 학자의 역사연구 역사강의』, 지식산업사, 2011.
노태돈, 『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 2000.
송은석, 「한반도 초기 벼농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고고학보』 제85집, 2012.
이병도, 『한국상고사 입문』, 일지사, 1989.
쓰에마스 야스카즈 (末松保和), 『임나흥망사』, 일본사연구소, 1949.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전라도민연대, 「전라도천년사 식민사관 수용 규탄 및 공개검증 촉구 성명서」, 2023.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 『전라도천년사 전자책』, 2022.
조선일보, 「단군과 고조선은 역사적 실체」, 1986.10.9.
한국사족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한민족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광복 80주년인 15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한 시민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광복 80주년인 15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한 시민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2025.8.15. 연합뉴스

전라도천년사 관련 언론 보도

광주인 (2023.08.14).「광복절에 친일사관 ‘전라도천년사’ 설명회 규탄성명
경향신문 (2023.05.16).「식민사관 논란 ‘전라도 천년사’, 폐기 목소리 커진」
GJINEWS (2023.10.10). 「국감 도마에 오른 ‘전라도천년사’ … 광주·전남·북 3개 시도 당장 폐기 촉구」
KBS 뉴스 (2023.05.30). 「‘전라도 천년사’ 왜곡 논란, 쟁점은?」
전라일보 (2022.12.26). 「행정당국 독단적 결정에 ‘역사 왜곡 논란’ 휩싸인 ‘전라도천년사’」
JJAN (2025.05.13). 「전라도천년사 고대사 빼고 발간…중세 이후부터 우선 배포
한겨레 (2023.06.12). 「호남 학계, 식민사관 논란 ‘전라도 천년사’ 맹목적 비난 중단 촉구」
광주MBC 뉴스데스크 2023.05.26] 끊이지 않는 갈등...'전라도 천년사'
남도일보(2023.7.23) ‘전라도천년사 왜곡논쟁 100분 토론’(유투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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