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오롯하게 담기지 않은 손끝의 망설임
'바람'과 '시름'을 아우르는 말
손끝이나 작은 나뭇가지 끝으로 무언가를 살살 헤집어 본 기억, 다들 있으시지요? 그 작은 몸짓에 담긴 두 가지 다른 마음을 꼼꼼하게 담아내는 값진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해작이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해작이다'에는 크게 두 가지 뜻풀이가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찾으려고 조금씩 들추거나 파서 헤치다.
이는 궁금한 마음이나 바라는 마음을 품고 무언가를 찾는 모습을 그릴 때 꼭 맞는 말입니다. 잃어버린 구슬을 찾으려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해작이는 아이의 애타는 손길, 봄나물을 캐려고 뾰족한 연장 끝으로 흙을 살며시 해작이는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몸짓이 바로 '해작이는' 것입니다.
딸애가 마당 구석에서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해작인다.
이 보기에서는 흙 속에 숨은 개미나 작은 풀씨, 혹은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으려는 아이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둘째, 탐탁하지 아니한 태도로 무엇을 조금씩 깨작이며 헤치다.
똑같이 무언가를 헤치는 몸짓이지만, 이 풀이에는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모습, 곧 못마땅함이나 깊은 걱정이 담겨 있습니다. '깨작이다'라는 말이 더해져 그 마음이 한결 더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밥투정하는 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알만 굴리며 해작이는 모습, 속상한 마음에 밥상에 마주 앉아 멀건 반찬 그릇만 젓가락으로 해작이는 모습이 여기에 이어집니다.
무슨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는지, 아이는 밥은 먹지 않고 숟가락으로 밥그릇만 해작이고 있었다.
그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애꿎은 찻잔 속 찻잎만 해작이며 시간을 끌었다.
이처럼 '해작이다'는 하나의 몸짓 속에 담긴 두 가지 다른 마음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는 말입니다. 흙더미를 해작이는 손길에서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바람'을, 밥그릇을 해작이는 손길에서는 마음속에 담긴 '망설임'이나 '시름'을 읽어낼 수 있지요.
어떠신가요? 오늘부터 우리 둘레 사람들의 '해작이는' 몸짓에 조금 더 눈길을 주면 어떨까요. 아이가 흙을 해작이고 있다면 "뭘 찾고 있니? 같이 찾아볼까?" 하고 다정히 말을 건네고, 누군가 밥그릇을 해작이고 있다면 "무슨 힘든 일 있니?" 하고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토박이말 하나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고 보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나날살이에 '해작이다'라는 말을 부려 써 보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쓰는 여러분의 하루가, 그리고 여러분 둘레의 하루가 한결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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