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득 기쁨이 흐뭇하게 번져
소리없이 피어나는 웃음 한 조각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픈 토박이말은 '해족하다'입니다. 아마 많은 분께 낯선 말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 뜻을 알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지는, 그런 어여쁜 말입니다.
어떤 웃음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해족하다'를 '흐뭇한 태도로 귀엽게 살짝 한 번 웃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뜻풀이 속에 '해족하다'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흐뭇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웃음은 크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살짝' '한 번' 피어나는 귀여운 웃음입니다. 소리없이 기쁨이 얼굴에 번지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김남천의 소설 <대하>에 다음과 같이 쓰인 보기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언니와 평양집이 있을 따름이다. 모두 그를 쳐다보며 해족하니…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자기를 반기는 이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리운 이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따스한 눈길에서 오는 좋은 마음들이 뒤섞여 흐뭇함으로 차올랐을 겁니다. 그 벅찬 마음이 입가에 ‘해족한’ 웃음으로 살며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긋' '생긋'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흔히 우리는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며 '방긋방긋 웃는다'고 하고, 젊은 아가씨가 수줍게 웃을 때 '생긋 웃는다'고 합니다. '해족하다'는 이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방긋'이나 '생긋'이 주로 웃는 모양새에 무게를 두었다면, '해족하다'는 웃음이 피어나는 마음의 바탕, 즉 '흐뭇함'과 '마뜩함'을 품고 있습니다. 마음에 마뜩함이 차올라 저절로 번져 나오는 웃음, 그것이 바로 '해족한'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말을 언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아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손 편지를 건넬 때, 어버이는 더없는 사랑스러움에 해족한 웃음을 짓습니다.
손수 가꾼 텃밭에서 첫 열매를 땄을 때, 그 작고 앙증맞은 열매를 보며 우리는 해족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겁니다.
나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니 절로 해족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해족하다'는 우리 삶 속 기쁘고 마뜩한 때를 더욱 빛내주는 값진 말입니다.
이제 이 말을 아셨으니, 둘레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거울 속 내 얼굴에서 '해족한' 웃음을 찾아 보세요. 그리고 이 예쁜 말을 나누어 주세요. 우리의 말과 삶이 한결 더 넉넉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앞서 알아본 '해작거리다' '해작대다'처럼 움직임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들이 있듯, '해족하다'에도 그러한 짝꿍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흐뭇한 웃음이 한 번이 아니라 이어서 피어나는 모습을 '해족대다'나 '해족거리다'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 모습을 흉내 내어 '해족해족'이라고도 쓸 수 있을 겁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해족거리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거나, '선물을 받으신 할머니께서 해족해족 웃으셨다'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얼마든지 새롭게 쓸 수 있을 법한 말들이 아직 우리네 말집(사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말이란 본디 쓰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예쁜 말을 알고 자주 부려 쓴다면, 언젠가는 '해족거리다', '해족대다’와 같은 말들도 떳떳하게 사전에 오를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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