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이는 잔물결
딴짓으로 피어나는 작은 숨구멍
여러분은 어쩌다가 무언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괜히 다른 것에 손을 댔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있으신가요? 또는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자꾸만 다른 생각에 빠져 딴짓을 하던 어린 날이 떠오르지는 않으신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 '해찰'과 그로부터 나온 살가운 말들에 바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해찰'은 크게 두 가지 뜻을 품은 이름씨(명사)입니다. 첫째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는 행동'을 이릅니다. 옷가게에 들렀는데 마음에 드는 옷은 없고, 괜히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옷가게에서 해찰만 부리다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뜻은 '우리에게 더 익은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하는 다른 짓'을 뜻합니다. 어릴 적 따분한 수업 시간에 창밖을 보거나, 괜히 책상에 그림을 그리며 딴생각에 잠겼던 순간들이 바로 '해찰'을 부리던 때입니다. 지난 날에 해찰을 부리던 일이 생각나시기도 하고 오늘 해찰 부리는 사람을 보고 계시기도 할 겁니다.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그 쓰임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어 시간에 아이들이 해찰을 부리거나, 또는 열심치 않는 아이가 있든지 한다 치면…" - 채만식, 《소년은 자란다》
이 '해찰'이라는 이름씨(명사)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움직씨(동사)로도 얼마든지 부려 쓸 수 있습니다. 바로 '해찰하다'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다"라는 뜻이지요. "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자꾸 해찰해서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딴짓하다'를 그대로 '해찰하다'로 바꿔 쓸 수 있는 것이지요. 어딘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거나 딴생각을 하는 그 모든 짓(행동)이 바로 '해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더욱 재미있는 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해찰궂다'라는 그림씨(형용사)입니다. 말에서 느껴지듯 '해찰하는 태도나 성질이 있다'는 뜻입니다. 유난히 한곳에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딴짓을 자주 하는 아이에게 "저 아이는 참 해찰궂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해찰궂은 눈으로 둘레 두리번거렸다'라고 쓰면,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호기심이나 딴생각에 가득 차 둘레를 훑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해찰'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해찰하다'라는 움직임이 나오고, '해찰궂다'라는 됨됨(성질)이 피어납니다. 꼭 어린아이들만 해찰을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바삐 해야 할 일을 앞두고 괜히 책상 갈무리를 시작하며 해찰하는 어른들, 본디부터 마음이 쉽게 흩어져 해찰궂은 됨됨을 가진 사람들. 어쩌면 '해찰'은 지루하고 힘든 나날살이 속에서 우리가 짧게 딴 길로 새어 보고픈 마음, 작은 숨을 고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몸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해찰하고 있는 것을 보시거든 "해찰 부리지 마!" 하고 핀잔을 주기보다, 그 마음에 어떤 잔물결이 일고 있는지 따뜻한 눈으로 한번 들여다봐 주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해찰궂은 마음을 너무 나무라지만은 말았으면 합니다. 딴 길로 샜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말없이 나아갈 힘을 얻는, 그런 슬기로운 '해찰'이라면 우리 삶에 작은 능(여유)과 숨을 틔워 줄 것입니다.
'해찰', '해찰하다', '해찰궂다'. 이제 이 살가운 우리 토박이말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나날살이 곳곳에서 이 말들을 부려 쓰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둘레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 주세요. 우리말을 아끼고 나누는 기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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