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들을 땐 바람결, 눈으로 볼 땐 구름결
오늘 하늘을 올려다보셨나요? 뭉게뭉게 피어오르다 어느새 흩어지고, 실처럼 가늘게 떠가다가도 곧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같은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 구름의 모습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참으로 멋진 낱말 하나를 길어 올리셨습니다. 바로 '구름결'입니다.
'구름결'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보송보송해지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듯하지 않으신가요? 이 예쁜 토박이말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구름같이 슬쩍 지나가는 아주 짧은 겨를'을 뜻합니다.
하늘의 구름이 바람을 타고 휙 지나가듯, 우리 눈앞에 아주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때새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너무나 짧아서 붙잡을 수 없는 눈 깜짝할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경희는 구름결에 그 사람을 보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집으로 가는 길, 구름결에 스친 저녁노을이 참 고왔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짧은 동안이나 어렴풋하게 스쳐 지나간 일을 이야기할 때 '구름결'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순식간에' 보았다고 하는 것보다 '구름결에' 보았다고 하면 훨씬 더 아련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살지 않나요?
둘째는 '엷고 고운 구름의 결'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새털구름이나 비단처럼 얇게 퍼진 구름의 보드라운 모양새를 말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질 것만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빗대어 말할 때도 쓸 수 있습니다.
동희는 구름결 같이 부드러운 아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어머니가 사 주신 새 이불은 꼭 구름결 같아서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
이처럼 부드러움과 고움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구름결 같다'고 나타내 보세요.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말이랍니다.
'구름결'과 생김새가 비슷한 '바람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두 말은 어떻게 다를까요?
'바람결'은 주로 바람의 움직임이나 바람에 실려 온 소식을 뜻합니다. 고갱이는 '바람' 그 제몸에 있지요.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바람이 부는 움직임)
바람결에 그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 때)
이처럼 '바람결'은 바람의 움직임처럼 살갗으로 느껴지거나(촉각), 바람에 소리가 실려오듯 귀로 들리는(청각) 느낌이 셉니다.
그에 견주어 '구름결'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눈으로 보는(시각) 아주 짧은 동안이나, 구름의 생김새처럼 부드러운 모양새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기별(소식)을 들을 때는 '바람결'을, 무언가를 잠깐 보았을 때는 '구름결'을 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구름결에 기별(소식)을 들었다"거나 "바람결에 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면 어딘지 어색하게 들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나날살이 속에는 '구름결'에 스쳐 지나가는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때마다 달라지는 구름의 결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값진 것들의 부드러움을 '구름결 같다'고 한번쯤 속삭여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토박이말 '구름결'이 여러분의 하루를 더욱 넉넉하고 따스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 예쁜 말을 나만 알고 있기보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알려주며 함께 나누는 기쁨을 누려보세요. 우리의 말과 삶이 한결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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