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참의원선거 극우 바람 일으킨 참정당의 세계관
태평양전쟁은 미국 탓, 치안유지법은 공산주의 탓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내 간첩 심어 전쟁 선동했다”
일본은 문제없고 모든 건 외부 음모 탓
“(일본은) 중국대륙의 땅을 빼앗으려 한 게 아니다. 일본군이 중국대륙에 침략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틀린 얘기다. 중국 쪽이 테러 공작을 해서 (일본이) 자위를 위한 전쟁으로 점차 말려들어간 것이다.”
20일의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만들어내 일본사회의 최대 화두가 된 극우정당 참정당(산세이토)의 가미야 소헤이(48) 대표가 6월 23일 오키나와 나하 시 선거유세 때 거리연설을 할 때 한 얘기다. 5년 전에 창당한 참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13석을 얻어 15석이 됐다. 원래 가미야 대표 혼자 3년 전 참의원선거 때 비례대표구에서 국회의원이 된 원내 1석 정당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13석을 보태 모두 15석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에서 13석을 늘린 또 다른 우파 정당 국민민주당과 함께 ‘대약진’하면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을 과반의석 미달의 야대여소로 전락시킨 주역이 됐다. 참정당과 국민민주당의 약진은 향후 정권의 향방과 상관없이 일본정치의 우경화를 가속화하면서 국수주의적 외국인 혐오 등 배외주의 강화 쪽으로 일본사회를 몰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신조 지지 젊은 층 대거 극우 참정당에 투표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1931년 만주침략과 1937년 중국 본토 침략은 중국인들이 일본을 향해 테러를 가했기 때문에, 일본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행한 전쟁으로, 침략이 아니었다는 가미야 대표의 주장은 지금도 건재한 일본 우익세력의 전형적인 역사왜곡이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을 테러로 몰면서, 중국이 가만 있는 일본에 먼저 테러를 가해 어쩔 수 없이 대응한 자위전쟁으로 완전히 뒤집어 날조했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서 식민지배를 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나 중국이 한반도를 장악해 일본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일본을 겨냥한 ‘한반도 비수[칼]’론)이며, 결코 침략도 식민지배도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일본 우익세력의 뻔뻔한 거짓말과 동일한 논법이다. 가미야의 위 연설은 그들이 아직도 세상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22년에 참의원선거 가두유세 중에 암살당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켜내려 한 일본 수정주의 역사관의 중심 줄기다. 이번에 참정당에 몰표를 준 유권자들 다수가 아베 신조 지지자들이었다는 일본언론의 분석이 있었다.
“대동아전쟁도 일본이 시작한 게 아니다”
가미야 대표는 그날 가두연설 중에 태평양전쟁(미국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은 일본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미국 태평양함대)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일본은 당시 도조 히데키 씨가 총리였는데, 도조 히데키를 중심으로 외교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하면,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화평을 맺었다. 당시는 중국이 아니라 지나였지만, 지나의 군벌 장제스와 마오쩌둥, 장쉐량 등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작업을 했는데, 어쨌든 전쟁을 하자, 전쟁을 하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꼭같은 논법이다. 도조 히데키 등 당시 군국주의 일본 지도부는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중국과도 화평조약을 맺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인지 정말로 그렇게 믿고 하는 얘긴지 확인할 순 없지만, 어쨌든 사실무근의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중국대륙을 본격적으로 침탈해 이권을 독점하려던 일본에 대해 중국 철수를 요구했고, 도조 히데키 등 일본 육군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팽창론자들이 미국의 요구는 일본이 그때까지 중국에서 쌓아 온 이권 등 모든 침략과 수탈의 성과들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결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미국의 개입을 지연시키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 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가미야의 주장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는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일본은 조선을 합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의 또 다른 변주곡이다. 그들은 일본정부 수뇌들을 포함해 모두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공언하고 있고, 그 때문에 중국이 하얼빈에 안중근 기념관을 세웠을 때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적반하장이다.
일진회 같은 조선의 친일‘선각자’들이 자진해서 한일합병을 요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선을 합방하는 고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본 우익세력의 터무니없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다수의 일본 유권자들에게 먹혔다는 사실이다.
가미야의 참정당을 지지한 유권자들 다수는 젊은 남성들이었고, 나이든 세대 유권자들도 상당수 참정당에 표를 찍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악법인 치안유지법 제정도 “공산주의세력 탓”
가미야의 주장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일본도 공산주의가 퍼져나가지 않도록 치안유지법을 만들었다. (중략) 악법이다. 악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악법이었다. 공산주의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황실 일을 천황제라 부르고 그것을 타도하려 했다. 일본의 국체(천황제)를 바꾸려 했던 것이다.”
치안유지법은 한국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악법이다. 가미야도 그것이 악법인 것은 알지만, 일본 ‘국체’(천황제)를 무너뜨리려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을 단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정했다는 꼭같은 논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 치안유지법에 대해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 교수(평화교육연구소 자료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 단속 명목으로 ‘국체 변혁’을 꾀한다는 여러 반정부운동이나 사상을 탄압”하고, “조선 등에서는 독립운동가도 치안유지법으로 가혹하게 단속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그 법을 악용해)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확대했다.”(<마이니치신문> 7월 19일) 공산주의 단속을 명분으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기 위한 악법이었다는 얘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 친북 반국가세력, 공산주의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 정권 때 대거 공직에 취임한 ‘뉴라이트’ 인사들의 세계관과 일본 극우의 그것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내 간첩 심어 전쟁 선동했다”
가미야의 주장은 계속된다.
“(공산주의자는 국체[천황제]를) 자신들만으로는 바꿀 수 없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려 했던가. 정부의 중추에 공산주의자 등을 들여 보내는 것이었다. 스파이(간첩)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 미국 등과 전쟁을 하도록 공작을 했던 것이다. 러시아가 아니라 옛 소련이다. 소련은 공산주의였으니까. 그렇게 해서 미국과 영국, 그들 나라의 지원을 받는 중국과 싸우게 하자. 그래서 일본이 전쟁에 말려들게 됐다는 사실도 있다. 교과서에는 씌어 있지 않다. 왜 그런가. (태평양전쟁) 전후의 교과서는 그들(연합국 전승국)이 체크(통제)해 온 것이니까 그렇다. 이런 사실들을 분명하게 국민의 상식이 되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은 ‘외부의 나쁜 놈들’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모든 나쁜 일은 외부의 공작 때문이다. 가미야를 비롯한 일본 극우세력이 세계를 이해하고 선동하는 방식이다. 한국 극우세력의 부정선거론, 공산주의 탓도 같은 맥락에서 실필 수 있다.
유대계 국제금융자본 음모론
가미야는 2022년에 펴낸 <참정당 Q&A북 기초편>에서 “유대계 국제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복수의 조직”들을 ‘저 세력’이라 지칭했다. 그는 ‘저 세력’이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망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일본 우익들의 전형적인 ‘음모론’이다.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고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나 미국 영국을 가리킬 때도 그는 ‘저 세력’이란 용어를 썼다.
야마다 교수는 가미야의 주장은 “피해자의식을 부풀려서 선동하는 정치적 수법”이라며, ‘유대계 금융자본의 음모’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신봉하는 트럼프주의자들의 ‘딥 스테이트’론과 함께 전형적인 음모론으로 못박았다.
극우세력 영향 더욱 강해질 일본 정치
아베 신조의 극우사상을 신봉했던 일본의 젊은 세대 남성들 다수가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하는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등 기성 정당들에 환멸을 느끼고 참정당과 국민민주당과 같은 신생 우익정당들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 오르지 않는 임금에 좌절하고 한탄하면서 자신들의 세금을 빼앗아 자신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는 듯 보이는 재일 외국인 노동자들과 여행자들을 배척하고 분노한다. 그들은 그런 그들의 감정을 이해해 주고 대변해 주는 참정당 같은 국수주의 우익 정당을 지지한다. 앞으로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이 집권을 하더라도 이번 참의원선거에서 뚜렷해진 이런 극우 포퓰리즘의 인기를 의식하며 정책을 조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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