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활동가를 만나다] 다큐 제작자 김경자 감독

윤한봉 자서전 '운동화와 똥가방"서 출발한 영화

국제평화대행진 통해 분단의 땅에서 평화 외쳐

5.18 여성 다룬 최초 다큐 '외롭고 높고 쓸쓸한'

항일·반전 '소안의 노래' 부산평화영화제 수상

광주 지역 아픔 넘어 평화 직시한 영화 제작 중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김경자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김경자 감독.

광주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된 사건이다. 단지 광주 지역이나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분단의 상징이 된 사건이기도 했으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세계인들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반도의 비극은 분단과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이념으로 양분되어 여러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의 구실이 되었다.

5월 광주의 비극을 알리기 위한 영화는 많이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를 비롯해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5월의 확장선에서 광주를 알리는 영화도 매우 중요하다.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김경자 감독이다. 그는 지난 7월 1일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라는 다큐영화를 공개했다. 국회에서의 상영회를 통해서다.

이 영화는 2024년에 제작을 완료한 영화이다. 하지만 독립 다큐영화의 특성상 극장 개봉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의 영화는 간간이 영화제나 단체상영회를 통해 관객을 찾는다. 지난 1월 피카디리에서 상영회를 갖기도 했지만 상업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의 문법을 따르기 어렵기 때문에 예약된 관객과만 소통하는 실정이다.

 

영화 '진달래 꽃을 좋아합니다'의 한 장면.
영화 '진달래 꽃을 좋아합니다'의 한 장면.

이미 여러 편의 다큐영화를 만든 김 감독이 온 정성을 다해 소개한 인물은 광주 5·18의 마지막 수배자라고 불리는 고 윤한봉 선생이다. 영화는 윤한봉의 자기 변론으로, 도망자로서 오월 영령들을 의식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그의 자서전 『운동화와 똥가방』에서 출발한다. 5·18의 현장을 도망쳐 살아남은 자로서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다짐한 한 인간의 내면 고백이다.

5월의 광주를 경험한 이들은 멍에를 지며 살고 있다. 윤한봉 선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김경자 감독 또한 이 지점에 주목하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2024년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2024년 광주독립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윤한봉 선생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주동자로 지목되어 현상수배되었다. 1970년대 광주 지역 운동권 총책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수괴급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가 체포될 경우 많은 민주인사들이 줄줄이 엮일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는 이미 1971년 교련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고, 민청학련의 전남북 총책을 맡아 학생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던 중이었다. 결국 1981년 4월 29일 화물선에 몰래 승선해 40여 일간의 항해 끝에 미국으로 밀항한다. 미국의 한국인 정치망명자 1호였다.

밀항으로 입국할 경우 암호명을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로 정했는데, 그것이 영화 제목이 되었다. 미국 도착 후 그는 민족학교, 재미 한국청년연합을 결성하여 한인동포사회의 시민운동을 주도했으며, 타민족과의 연대사업을 펼쳐 광주의 아픔을 알렸다. 또한 1989년 7월 20일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7일에 걸쳐 국제평화대행진을 주도하였다.

윤한봉은 미국 한인사회에 민족 민주 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학습의 장을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진행한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피교육자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윤한봉은 ‘평화’라는 화두에 집중했다. 평화의 지속 상태만이 인류가 상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국제평화대행진이다. 그렇게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백두산 정상에 모여 인류애를 외쳤고, 분단을 넘고자 하는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었다. 국제평화대행진은 윤한봉이 뛰어난 전략가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연출의도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광주5·18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이 미국으로 망명해서 오월에서 평화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질문하고 싶었다.”

 

영화 '진달래 꽃을 좋아합니다'의 한 장면.
영화 '진달래 꽃을 좋아합니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지금까지 장편 다큐 4편을 만들었고 단편까지 포함한다면 그의 작품은 수십 편에 이른다. 광주를 이야기한 그의 또 다른 영화는 2017년에 제작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다. 제목은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가져왔다. 가난하고 늙은 엄마의 이야기를 시로 승화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광주 5·18의 여성들에게 집중했다. 5·18은 남성과 명망가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당시 여성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들은 주먹밥을 만들고, 대자보를 쓰고, 주검을 수습했으며 가두방송을 했고, 밥을 짓기도 했다. 분노와 울분에 가득한 이들을 보듬으며 마치 엄마의 모습처럼 상처에 휩싸인 시민과 시민군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20~30대에 경험한 사건이 이제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언젠가 그녀들은 떠날 것이며 결국 풍경만 남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감독으로 시선으로 녹아 있다. 작품은 편집을 최소화하고 자막도 배제한 채 묵묵히 지켜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자극적인 요소가 없어 밋밋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기름칠을 안 한 깔끔한 영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삿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모습이 붉은 노을에 어우러진 몽환적인 모습에 반해 한때 김경자 감독은 미술학도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 여건상 심리학을 전공했고 ‘한국인의 대화 특성’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드라마 속 대화심리에 주목했다.

2009년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영화를 접하게 된다. 바흐만 고바디의 영화 『거북이도 난다』였다. 이 영화로 카메라를 들게 된다. 전쟁을 다룬 극사실주의인 영화로 인해 그의 마음속 내재된 세계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도 회복력, 희망, 그리고 인간 정신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엮어낸 가슴 뭉클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이란 영화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쿠르디스탄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현실을 헤쳐 나가는 어린 아이들의 삶을 따라간다. 그 영화를 접하며 김경자 감독은 아이들의 시선에 집중하는 몇 편의 단편을 만들기도 한다. 시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민수의 대인시장’ 등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다큐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안동 상영회 당시의 홍보용 웹자보
다큐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안동 상영회 당시의 홍보용 웹자보

김경자 감독의 첫 장편은 2015년에 제작되었다. 완도군에 위치한 작은 섬 (보길도 옆) 소안도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활발한 항일운동이 전개된 곳이며, 한국전쟁 전후로는 250여 명이 보도연맹 사건을 계기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지역이다. 이 작은 섬에서 벌어진 아픔을 이야기하고자 소안의 망각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영화 『소안의 노래』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에게 2016년 부산평화영화제 <드넓은 푸른 공감상>을 안겨준다. 감독이 작품 활동을 하며 여러 곳의 추천과 상을 받기도 했지만 ‘상 이름’ 이 주는 감동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가는 상이기도 하다.

감독이 이 다큐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문학평화 포럼’에서 소안도 이야기를 접한 것이었다. 어떻게 저런 작은 섬에서 큰 저항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출발한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였다. 1920년대에는 섬주민 800여 명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감시를 받기도 했으며, 소안도를 벗어나 서울, 광주, 만주, 일본, 중국 등지에서도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당시 소안도 사람들은 독립과 항일을 가슴에 새기며 민족해방가, 독립군가, 애국가 등의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일제와 전쟁을 거치면서 소안도의 피해는 매우 컸다. 그것은 일제시기에 항일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하나였고 사회주의운동이 드셌던 곳이었기에 해방 이후에 좌파 활동에 많이 참여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상당수의 주민들이 참여하게 되었기에 그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안의 노래』는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인물들의 후손들과 6·25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구술을 통해 소안도 역사의 상처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김경자 감독은 약 8년에 걸쳐 소안도와 광주를 오가며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겸 제작자 김경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겸 제작자 김경자

김경자 감독은 광주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지금도 광주에서 살고 있는 광주 토박이다. 그가 경험한 공간이 광주이며 살고 있는 시간이 광주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영화는 그래서 시간과 공간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단순히 지역의 아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결국 분단의 상처로 귀결된다. 분단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시련들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그가 자신이 만든 영화를 들고 전국을 순회하는 이유는 '광주'를 말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과 분단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국가보안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의 다음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분단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세계가 관통하고 있는 평화를 끄집어내어 분단을 어떻게 직시하는지 매우 흥미로운 영화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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