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활동가들을 만나다] '촛불' 사회자 김지선 씨

평범한 시민이 부조리한 사회 보며 활동가로 변신

촛불과제 수행할 동력 필요성에 촛불행동 참여

주권자임을 자각하며 탄핵 외친 시민들에 감동

민주화 이룬 선배세대에 감사, 후배들이 계승 다짐

불의에 항거한 역사적 DNA, 집회 이끌며 뭉클

"서로에게 촛불되고 희망되어 민주주의 완성하자"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득신 작가
이득신 작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선거시즌 언론과 출마자들에 의해 투표독려가 이루어지면서 마지못해 느끼는 게 일반적이다. 각자가 해야 할 밥벌이의 서글픔 또는 위대함이 있기에 우리가 ‘매일’ 주권자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공수교대나 정쟁과는 별개로 평온한 일상을 살던 국민들에게 12.3 내란 사태는 우리의 주권의식을 충만하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른바 ‘반국가 세력의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계엄을 선포했지만 그가 말한 ‘반국가 세력’들이 국가의 주인 됨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계엄 당일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냈고 주권자임을 스스로 확인한 국민들은 여의도에서 윤석열 탄핵을 통과시켰으니 그들의 내란은 정치적 방향과 지향점이 다른 이들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몰아세운 단순히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나라가 민주국가이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다분히 '습관성' 헌법 인식을 넘어서 주권의식이 발동한 중요한 사건이 바로 계엄령과 내란이었다. 그들의 내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팔을 걷고 나섰으며 생계를 뒤로한 채 집회에 참가하여 윤석열의 탄핵과 파면을 목이 터져라 외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과 함께한 촛불집회 사회자 김지선 씨가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 동아일보 사설을 열심히 읽는 학생이었고 세상이 바뀌는 것보다는 큰 일 없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보며 어린 동생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과를 받지 못했던 사실에 분노했지만 2003년 이라크 파병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저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와 등록금 투쟁에 참여한 일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주류 기득권층이 다수였던 국회에서 탄핵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주도로 탄핵 반대 촛불이 거세게 일어났고, 학내 등록금 투쟁에서는 불의에 저항하고 함께 싸울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단과대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에서 문화국장,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시민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진보적인 학생들을 모아 예술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극동아리, 노래동아리, 영상동아리 등을 만들어 여러 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연출하기도 했다.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김지선씨.
촛불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김지선씨.

2016년 박근혜는 촛불에 의해 탄핵되었다. 그러나 당시 촛불의 가장 큰 교훈은 촛불항쟁의 과제들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게 투쟁할 시민동력이 문재인 정부 탄생이후 흩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자연스럽게 거리에서 굳건히 투쟁할 수 있는 시민들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시민단체 촛불행동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2019년 검찰개혁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공수처가 설치되고 촛불이 중단되었을 때 촛불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 여러 시민단체들과 민주진보 유튜버들이 광화문촛불연대라는 단체를 구성했고 김 씨는 촛불시민들이 모일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들어진 촛불전진이라는 단체에 참여하게 된다. 정치를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정치를 견인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크게 공감한 것이 참여의 이유였다. 이후 유튜브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방송 진행과 중계 등의 역할을 해오다 촛불행동에서 집회 사회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촛불 집회 사회를 맡은 건 아니었다. 본집회 전 사전집회에서 가벼운 형식으로 사회를 맡았는데, 시민들 자유발언을 이끌어내면서 즉흥적으로 질문도 하는 그런 진행방식이었다. 그러다 대타로 맡게 된 본집회의 사회에 대한 평가가 좋아 본격적인 사회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특히 집회 기획단계부터 참여했는데, 그날의 순서를 정확하게 소개하고 집회의 기조와 의의를 제대로 해설하는 것에 대해 높게 평가한 집회 실무팀이 사회자로 추천한 것이다. 2022년 10월부터 매주 사회를 보기 시작하여 12.3 내란 사태 이후에는 매일 사회를 보고 있으니 어느덧 200회가 넘는 집회의 진행을 맡고 있다.

 

집회에서 행사진행을 맡고 있는 촛불행동 김지선 사회자.
집회에서 행사진행을 맡고 있는 촛불행동 김지선 사회자.

현장인터뷰 당시 경남에서 올라온 어떤 어머님이 “이거 인터뷰한다고 잡아가는 것 아니지요? 잡아가도 상관없습니더. 어차피 애들은 다 컸고 미련 없는 나이입니더” 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는 김지선 씨는 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해 덧붙였다. 윤석열은 전쟁과 계엄을 일으킬 자라서 당시 모두가 비상한 각오로 싸울 의지를 불태우던 때였다. 우리 국민들의 상당히 낙관적이면서 자신을 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표정과 그렇게 엄청난 결의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모습, 신념이 담긴 짧은 발언들이 엄청난 감동으로 밀려왔다고 그는 말한다. 다른 참가자들의 인상적인 발언도 소개했다. 22대 총선에서 192석이라는 민주진보진영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윤석열의 탄핵에 대해 단상에 올라온 어느 참가자는 “심판은 끝났어요! 총선에서 심판했는데 뭘 더 심판합니까! 언제까지 심판만 외칠 겁니까. 밥상 다 차려지면 그때 숟가락 얹는 것 좀 그만 하세요” 라고 호통을 쳤다. 국민들은 매일, 매주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데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 대해 혼쭐을 내는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기도 했다. 12월 3일 이후 국회에서 끝없이 이어졌던 2030세대들의 자유발언도 인상적이었다. 단상에 올라온 청년들이 선배세대에게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왔던 역사에 대해 감사함을 이야기하고 이제 그 정신을 후배세대들이 지키고 계승하겠다고 하는 연설에 매일매일 뭉클했다고 한다. 한파와 폭설을 맞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버텨낸 그때에도 승리와 낙관이 가득한 발언들이 비로소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독재에 맞서 싸울 때에도 독재자들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고 정권과 싸우던 이들만 다칠 수 있기에 투쟁을 만류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박근혜 탄핵 전에도 역시 비슷한 반응들이었다. 윤석열 탄핵도 마찬가지였다. 당선되고 바로 촛불을 들며 선제탄핵을 외치자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탄핵을 외치는 것은 선거불복으로 보일 수 있다” 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확했다. 윤석열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 거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집권초기의 구호가 ‘윤석열 탄핵’ 으로 바뀌자 정말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호응이 밀려들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윤석열은 국민들의 뜻이 모여 국회 탄핵된 것이다. 초기부터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친다는 것은 그날로부터 모든 것을 걸고 퇴로 없이 싸운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큰 결심이 필요한 구호이기도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가’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기도 했고 국민들과 함께하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난 2년간 고비와 난관은 상당했다. 촛불은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했고 오해와 공격들도 많았으며, 촛불행동은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시민들과 동지가 되었다는 것이 촛불집회 사회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었다.

 

촛불집회 사회자 김지선 씨가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촛불집회 사회자 김지선 씨가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3년간의 촛불 과정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주권자로서의 책임의식이었다고 김지선 씨는 말한다. 정치를 정치인에게 맡겨두면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의 무장으로 투쟁해 온 것이다. 그 절실함이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탄핵이었다. 이제 윤석열에 대한 파면이 완성되면 지난 기간의 항쟁과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12월 3일 국회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계엄군을 막아섰던 장면은 모든 국민의 삶에 큰 경험과 자산이 될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물론이고 올 수 없었던 이들마저 TV로 내란세력들의 반란행위 중계를 확인했다. 분노한 민중은 결국 집회장으로 향했다. 이는 어쩌면 80년 5월 전두환의 총칼에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2025년 대한민국 시민들의 혈관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역사적 DNA는 이렇게 만들어져 왔고 어려운 고비마다 본능적으로 일어선 것은 결국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먼저 나선 이들에 대한 고마움, 죄책감이 승화되고 다시 이어져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그 귀한 마음이 혹한의 한파를 뚫고 불의한 권력마저 심판대에 세우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김지선씨는 함께하는 촛불시민들에 대한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만나면 언제나 손을 꼭 잡으면서 “정말 고생이 많다. 제일 고생이 많다”라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에게 그 마음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집회의 사회자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책임감 있게 촛불에 임하는 것처럼 모든 촛불시민들이 다 주인의 자세로 촛불을 지켜왔기에 사회는 진보한다는 생각이며 위대한 국민들과 함께하는 동지가 된 것으로 너무나 큰 영광을 얻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촛불 시민의 발언 “오늘도 광장으로 나간다. 내가 믿는 촛불이 나를 믿고 있으니까” 라는 말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촛불이 되고 희망이 되어 서로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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