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활동가들을 만나다] 미얀마 출신 이본아 씨
미얀마 임정 민족통합정부 한국대표부 활동가
여의도 탄핵 광장에서 역사의 현장 지켜본 뭉클함
귀화시험 합격 다음날, 미얀마 쿠데타 소식의 참혹함
두 나라의 평행이론, 군부와 독재자의 끝없는 탐욕
겉으론 화려하나 속으론 곪아있는 당혹스런 한국
민주화 투쟁과 학업 병행하며 고국으로 갈 날 꿈꿔
민들레에 ‘대리기사 이야기’를 연재했던 이득신 작가가 우리 사회 곳곳의 활동가들을 만나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 작가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영화와 K팝 등으로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지만 쿠데타 세력이 도사리고 속이 곪아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주]
12.3 내란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전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크고 작은 반발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계엄령 선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까지 하게 된 격이었다. 탄핵을 갈망하는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탄핵이 발의되어 표결에 부쳐진 12월 7일의 심정은 허탈함을 넘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했다. 통과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200석에 미치지 못한 표결로 투표자체가 불성립된 것이다. 결국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12월 14일은 여의도 인근에 20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기어이 탄핵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미얀마 출신 이본아 씨도 그곳에서 감격의 현장을 함께했다.
이본아 씨는 미얀마에서 사업하는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 연애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경찰관이 되고 싶어 미얀마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난 후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만큼 남편에 대한 사랑과 한국에 대한 동경이 크기도 했다.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 그리고 k-pop을 미얀마에서도 즐겨왔던 터라 평소 한국에 대한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이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TV에서 본 한국의 촛불집회는 굉장히 이색적이지만 한편으론 충격이었다. 당시 한국의 촛불집회는 미얀마에서 탑 뉴스로 연일 다루어지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인기 있는 한국문화와 한국의 집회문화를 비교한 기사들도 제법 흘러나왔다. 2018년 초 한국에 입국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귀화시험을 준비했다. 간이귀화의 경우 결혼 3년 이상이 경과하면 소정의 귀화시험을 거쳐 한국국적을 취득할 자격이 부여되는데, 그가 귀화시험(일종의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미얀마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하던 날, 미얀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202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이 거대 의석을 갖게 되자 이에 반발한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귀화 시험에 합격한 다음날 벌어진 일이었다. 조만간 한국국적으로 고향을 방문하려던 꿈이 산산이 부서진 날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미얀마 임시정부격인 민족통합정부 한국대표부에서 홍보담당을 맡고 있다. 미얀마 출신 한국거주자들과 함께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는 중이다. 한편 한국의 쿠데타 상황을 지켜보며 한국 민주주의의 허술함을 목격했다. 겉으로는 고도의 산업화와 민주주의가 가동되는 듯 보이지만 미얀마의 군부가 득세하는 것처럼 한국의 기득권층도 이에 못지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약속의 땅인 줄로만 알았던 한국에서 고향 미얀마와 오버랩되는 쿠데타 상황 때문에 윤석열 탄핵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니 한국에서 두 나라의 내란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셈이다.
입국 초기엔 마냥 좋기만 하던 한국의 모습은 경험과 적응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것도 늘어갔다. 다문화 가족 관련 활동을 병행하면서 그는 한국을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270만 모든 외국인에게 친절해 보이기만 하던 모습은, 익숙해질수록 친절과 배려 속에 가득한 차별을 마주하곤 했다. 백인을 향해선 부러움과 경외심이 가득하고 동남아인들을 향해선 무시와 냉대의 시선이 보이기도 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도움을 주던 어떤 활동가의 눈빛에서 심한 모멸감마저 느낀 적도 있었다. 물론 이번 내란사태는 또 다른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민중의 힘을 새롭게 경험한 계기도 되었다.
이본아 씨는 미얀마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가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다고 말한다. 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에 시달렸으며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이 독립이후 정부 수립 기간 중 암살을 당하고 만다. 마치 한국의 미군정 치하 시절 김구 선생처럼 독립에 헌신했던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비슷한 궤를 갖고 있다. 전체 국민의 70%에 달하는 버마족과 135개에 이르는 소수민족의 갈등을 봉합할 유일한 인물로 여겨졌던 아웅산 장군의 죽음과 남북 단일 정부를 이루고자 했던 백범의 죽음이 매우 흡사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를 경험한 것처럼 미얀마 역시 군부가 몇 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2년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네윈의 계속된 폭정에 반발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 있었는데 8888 항쟁이라고 불린다. 이 민주화 운동은 1988년 8월 8일부터 9월 16일까지 양곤에서 시작해 미얀마 전역에서 전개된 민중항쟁이었다. 이 항쟁 당시 미얀마에서는 약 3000여 명의 시민이 군부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는데 군부에서는 350여 명이 사망 또는 부상이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시기와 성격상 우리의 광주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이 떠오르는 사건이기도 하다.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은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군부가 국방과 경찰권을 쥐고 문민정부가 내치와 외교를 담당하면서 불안한 동거가 계속되던 상황이었다. 부정부패와 반인권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군부에 대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고조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군부 몫의 25%를 제외한 전체 의석 75%중 62.4%를 확보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에 따라 민족민주연맹은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생겼고 미얀마 정부는 이 힘을 바탕으로 1월 5일, 군부에게 25%의 의회 의석을 할당해주는 헌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군부는 이를 거부하고 또 다시 불법적인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의 명분은 부정선거였으며 문민통치와 선거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고 따라서 군부가 다시 집권을 하겠다며 아웅산 수지를 비롯해 명망 있는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감금하기에 이르렀다. 이 쿠데타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현재까지 희생자 수는 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저항운동을 이어가는 임시정부 소속으로 현재 다수의 한국거주 미얀마인들이 군부독재타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미얀마의 부정선거 프레임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 중이다. 12.3 계엄령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정선거였으며, 민경욱과 황교안으로부터 시작된 극우들의 부정선거 주장은 윤석열에 이르러 정점을 찍으며 내란으로 치닫고 말았다.
현재 미얀마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중이다. 미얀마인들이 좋아하는 한그릇 500원(한화 기준)하던 전통국수가 현재 약 3500원 정도로 치솟았다. 2021년 쿠데타 이후 4년 동안 생활물가가 무려 5 ~ 7배 정도가 폭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기와 통신도 하루 4시간만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날은 새벽에, 어느 날은 낮 시간으로, 정해진 시간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서 맞벌이나 출타 등의 이유로 집을 비울 때 전기가 공급되면 그 4시간을 놓치게 되고 다시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한다. 또한 미얀마 현지 가족과의 전화연결도 그 시간 동안만 가능한 상황이다. 인터넷도 당연히 그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다. 4시간도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2시간 먼저 공급하고 얼마 후 2시간, 또는 3+1 시간 등으로 예고 없이 제각각이다. 작년 그의 모친이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방문을 추진했을 때, 하루 1시간만 가동되는 관공서 업무 때문에 여권 발급을 위해 무려 3일을 줄을 서서 기다렸던 일화도 들려주었다. 한편,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학생들은 군부에게 끌려가 아직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소극적으로 참여했던 학생들도 학교 등록이 거부된 상태다.
우리나라의 예로 옮겨 본다면 계엄령 선포 당시 주요 언론사에 대한 전기공급 차단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 바 있는데, 만일 내란이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도 전기와 통신 그리고 수도까지 제한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물론 다수의 시민운동가들이 끌려가 생사를 모르고 있을 것이며,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들마저 학교 출입 또는 등록이 제한되었을 것이다. 이 기사를 내보내는 시민언론 민들레는 물론 현 정부가 좌파언론이라고 낙인찍은 일부 언론사도 이미 폐쇄되었을 것이다. 참혹하지만 상상 가능한 시나리오이기에 더욱 끔찍하다.
현재 미얀마 군부는 해외 거주자들에게 2025년까지 강제 귀국명령을 내렸다. 미얀마는 건국 이래 직업군인제를 유지해왔지만, 2011년에 발표한 징병제를 쿠데타 이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18세에서 35세의 남성과 18세에서 27세의 여성을 대상으로 군 복무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징병을 회피하는 사람은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까지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연령대에 해당되는 해외 거주자들이 귀국을 거부할 경우 해당가족이 이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 규정도 새로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부가 국민들을 통제하고 국민저항을 막기 위해 징병제를 무기로 해외유학생과 이주 노동자마저 옥죄는 상황이다.
한국 입국 후 영상연출을 공부했던 그는 현재 중앙대에서 공연영상 관련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고 때때로 윤석열 탄핵집회에 참가하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언젠가 미얀마가 민주화 되면 고국의 대학 강단에 서고 싶은 소망도 품고 있다. 두 나라의 내란이 모두 진압되고 지금보다 더욱 성숙한 민주 국가가 되면 지금 그의 선한 의지가 반드시 보상받을 것이고 언젠가 그의 꿈도 현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는 그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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