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역 추락 참사 22주기, 장애인 지하철 행동
코레일, 30분 추모도 불허…"퇴거하라" 경고방송
전장연 "함께 살고싶어"…권리예산·이동권 주장
장애인에게 쓸쓸한 명절…버스 탑승도 거절 당해
2001년 1월 22일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오이도역에서 지하철을 타려 했던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할머니는 숨졌고, 할아버지는 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고,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오이도역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한 지 22년, 장애인들은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서울로 가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이른 아침부터 오이도역에 모였지만 공권력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30분 추모도 허용하지 않은 경찰과 코레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8시 경기 시흥시 오이도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에 나섰다. 시민 10여명도 참여했다. '근조'라고 적힌 상복 모자를 착용한 장애인도 있었다.
이들은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를 맞아 30분 간 추모한 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4호선 지하철을 타려 했으나 경찰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저지당했다.
경찰은 30여 명의 장애인과 시민들의 지하철 탑승을 막기 위해 기동대 5개 중대, 35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노주영 시흥경찰서장도 직접 지휘 차량을 타고 현장에 왔다.
장애인과 시민들은 개방형 승강장에서 "장애인도 지하철 타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탑승을 호소했지만, 경찰과 코레일 측은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승객이 이들에게 장애인 혐오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태현 경기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국장은 마이크를 잡고 "이동권은 교육 받기 위해서도, 노동을 하기 위해서도, 또 지역 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울먹였다.
이어 "우리가 이렇게 추운 날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우리 중증 장애인도 대한민국 국민, 서울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라고 외쳤다.
그는 "정치인들은 시민을 볼모로 세우고 장애인과 장애인도 갈라치기 하면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어느 하나 저버리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인의 참된 책임"이라고 했다.
장애인들의 외침이 계속 이어졌지만, 오이도역 역장은 확성기를 통해 "역 시설에서 소란행위 및 연설행위를 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에 의해 금지돼 있다"고 수차례 경고 방송을 하면서 시위를 막았다.
전장연과 시민들은 30분 정도 승강장에서 추모를 한 뒤 지하철에 탑승하겠다고 했지만, 역장은 약 20분만 경고 방송을 한 뒤 "열차 탑승을 거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전장연 측과 시민들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13차례 탑승을 시도했지만 경찰과 코레일에 의해 막혔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영하 5도의 날씨에 몸을 떠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대치가 길어지자 시민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자유발언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한 활동가가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버스부터 전철까지"라며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반영해 개사한 유행가를 부르자 지하철 입구를 막고 있던 일부 경찰들의 눈에 웃음기가 내비치기도 했다.
이들은 2시간 40분 대치 끝에 △선전 문구가 써진 조끼를 입지 않고 △마이크나 확성기 등을 사용하지 않으며 △타고 내리기(승하차)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당고개행 4호선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었다.
코레일 측은 지하철 내에서 조건을 위반하거나 고성방가 등이 있을 경우 열차를 회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방패를 든 경찰, 코레일 직원들도 이들을 막기 위해 같은 차량을 탔다.
이날 지하철 행동은 오이도역 외에도 서울역과 신용산역 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서울역에서는 30여 명 전장연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려 했으나 오전 10시 17분부터 1시간 13분 가량 16차례 탑승 거부를 당했다. 신용산역에서 내린 활동가들은 삼각지역까지 휠체어로 이동했다.
장애인은 왜 지하철 승강장 바닥을 기었나
오이도역과 서울역, 신용산역 등에서 산발적으로 모인 전장연 회원들은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오후 2시부터 '장애인권리입법·예산 쟁취를 위한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었다.
전장연이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 권리예산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에 따른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비롯해 탈시설, 평생교육시설, 활동지원 예산 등을 담고 있다.
지난해 전장연은 이동권·활동 지원 등을 위한 장애인 권리예산 1조 3044억 원 증액을 국회에 요구했고, 이 가운데 약 51%인 6653억 900만 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정작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23년도 예산은 106억 원 증액에 그쳤다. 이는 전장연 요구안과 비교했을 때 0.8% 밖에 안되는 액수다.
전장연은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도 강조하고 있다. 전장연에 따르면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를 포함해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수도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관련 사고는 17건에 달한다.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전임 이명박 시장과 박원순 시장은 재임 당시 이러한 리프트 사고 문제와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 등을 받아들여 모든 서울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강제조정을 결정하고, 서울 지하철 전체 275개 역사 중 엘리베이터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19개 역사의 엘리베이터를 2024년까지 설치하도록 했지만 오 시장은 법원 결정을 거부했다.
이에 전장연은 이번 결의대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의 면담을 재차 요청했지만, 실제로 면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앞서 전장연은 오 시장과 면담을 갖기로 했으나, 전장연의 단독 면담 및 기재부 배석 요구에도 오 시장이 다른 단체들과 비공개 합동 면담을 해야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불발된 바 있다.(1월 19일자 <오세훈의 이중성…전장연만 차별하는 시장 면담 '문턱'> 기사 참고)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가) 22년이 지났지만 우리들은 지하철조차 타지 못하고 있다"며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냥 장애인이라서 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하철뿐이 아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버스가 없다"며 "우리가 원하는 권리예산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기본적인 이동권만 확보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보통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이야기할 뿐인데 장애인이 이야기하면 특권인 양 무조건 배제한다"며 "윤석열 정부는 그 누구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권리예산을 보장해 달라"며 "예산없는 정책은 의미도 없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외쳤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일반 시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도 함께 했다. 시민들은 행사 시작 전 한 손에 하얀 장미를 들고 나타나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희생자를 위해 헌화했다.
또 '장애인 권리 예산을 확보하라' '시민은 전장연을 지지합니다' '모두 존엄한 사람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 분홍색 종이를 각각 손에 들고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삼각지역 4호선, 6호선 역장들이 거의 1~2분 간격으로 경고방송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랑' '아침이슬' 등 노래를 불렀다. 오히려 반복해서 경고방송을 하는 역장들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의대회를 마치고 전장연 회원들과 시민들은 삼각지역 4호선 지하철(동대문방면) 탑승을 시도했으나, 경찰 6개 중대(여경 1중대 포함) 병력과 서울교통공사 소속 지하철 보안관들이 저지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계속되는 지하철 탑승 거부에 맞서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서 승차를 시도했지만 이내 끌려나왔다.
박 대표는 "우리 동료들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며 "인간에 대한 존엄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22년을 외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법치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배제하고 감금하고 격리하면서 그것을 복지라고 하고 인권으로 둔갑했다"며 "시민 여러분, 함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전장연 회원들과 시민들은 3시간가량 탑승을 시도한 뒤 결국 자진 해산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며 장애인들의 탑승 시도를 막고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켰다.
전장연 관계자는 기자에게 "무관용뿐만 아니라 무정차도 장애인들에게는 폭력"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에겐 쓸쓸한 명절…버스가 없다
한편 장애인들은 명절에도 고향에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설움을 토해냈다.
지난 19일 서울남부터미널에서는 시외버스를 타려는 장애인들과 이를 막는 경찰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곳에도 장애인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250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전장연 회원들은 오후 5시 20분에 출발하는 충북 음성행 버스표 5장을 예매했으나, 경찰과 터미널 측에서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막아 결국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전장연 측은 이에 굽히지 않고 같은 날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하는 충북 진천행 버스표를 다시 예매했지만 끝내 탑승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지 못한 이들은 중외제약 본사까지 행진을 하며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박 대표는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고속버스는 서울과 당진을 오가는 2대뿐이고, 시외버스는 한 대도 없다"며 "설날을 앞두고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방관하는 한국 사회를 또 보고 있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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