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기 3년 투쟁과 장애 운동사를 돌아본다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서평
정권과 서울시의 집중 탄압과 혐오에 맞선 저항
계속 끌려 나가고 입 막히면서도 포기 안 한 투쟁
서울시장으로 돌아온 오세훈의 전장연 복수혈전
이준석은 어떻게 전장연 마녀사냥에 불을 붙였나
신간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공동대표가 말한 것을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가 정리하고 다듬어서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지난 3년간의 지하철 타기 투쟁뿐 아니라 장애인 운동의 역사와 쟁점들까지 모두 다채롭게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 장애인들은 이 나라의 헌법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당해 온 존재이다. “'장애'란 표현은 기껏해야 34조 5항에 꼴랑 한 개 담겨 있는데요. 거기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일단 '장애인'도 아니고, '장애자'란 표현 자체가 옛날 표현이잖아요….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보호'란 표현이에요.”
‘장애인’도 아니고 ‘장애자’로, 기껏 불쌍하고 ‘보호’할 대상으로만 언급된, “존재 자체가 생각도 안 되는 사람들, 아예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받아온 사람들”인 장애인들의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해 온 전장연은 지난 3년간의 투쟁으로 이제는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에서 민주노총 등과 함께 “3대 불법 폭력 시위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아서 혐오 당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우리를 배제하지 말고 함께 살고 함께 지하철도 타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투쟁을 통해서,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된 시간이었다. 전장연은 온라인에서뿐 아니라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혐오와 욕설에 직면했다. 지난 3년이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집권 시기였기에 그것은 더욱 가혹했다. 박경석 대표는 윤석열 검찰정권의 행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새 보면은 정말로 사시미 칼로 운동 단체들을 회를 치고 있는 거 같아. 망치로 단숨에 때려죽이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체 어느 부위를 사시미 칼로 도려내 버리고, 그래도 굴복을 안 하면 또 다른 부위도 회를 쳐서 먹어버리고.”
하지만, 전장연과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런 정권의 폭력과 탄압 앞에서도 결코 고개 숙이거나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정권에서도 항상 “완전 왕 중의 왕이야, 정부 부처 중에서도 갑 중의 갑”이라는 기획재정부에 맞서서, 장애인 권리 예산의 확대를 요구하며 끝없이 저항하고 투쟁했다.
과격하게 싸우지만 말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요구하고 제안하는 게 맞지 않냐고? “부자들이 예산 좀 더 받으려고 뭐 우리처럼 도로 막고, 지하철 막고, 바닥에서 기어대는 거 봤어요? 그냥 우아하게 앉아서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말 몇 마디 하거나,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다 끝나는 걸 가지고.”
그래서 전장연은 지난 3년간 지하철역에서 승차를 시도하고, 지하철 바닥을 기면서 요구를 알려 나가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은 이러한 전장연의 투쟁을 “컨베이어 벨트”의 “톱니바퀴”에 낀 “이쑤시개”처럼 취급했다. "1분만 늦어도 큰일이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오세훈 서울시장). 이들에게 소수자를 배제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며 돌아가는 이 ‘컨베이어 벨트’는 단 한 순간도 중단하지 않고 작동해야만 했다.
“컨베이어 벨트가 열심히 굴러가고 있는데, 그 톱니바퀴에 이쑤시개가 하나 끼어버린 거야. 아니, 고작 이딴 이쑤시개 하나 때문에 전체 벨트가 멈춰야 한다니 얼마나 기가 차겠어. 그럼 다른 거 신경 쓸 것도 없이 이쑤시개를 그냥 빨리 빼버리는 게 제일 중요할 거잖아요. 그래서 이쑤시개 억지로 빼버리기만 하면은 뭐, 이쑤시개가 거기 왜 떨어졌는지, 이쑤시개는 안 부서졌는지 열심히 고민할 필요가 있나.”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역에 등장하면 무조건 강제로 끌어내고 경찰서로 끌고 가는 짓을 3년 내내 반복했다. 장애인들의 휠체어가 망가지고, 팔다리가 꺾이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장애인들은 출근 시간 5분이 아니라 평생을 빼앗겨 왔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약자와의 동행”을 구호로 내건 오세훈 서울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책을 보면 2002년과 2009년이 장애인 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002년에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했고 당시에 박경석 공동대표가 38일 동안 단식농성을 해서 서울시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하는 일이 있었다.
2009년에는 나중에 ‘마로니에 8인’으로 불리게 된 장애인 활동가 8명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62일 동안 천막 노숙 농성을 하며 탈시설을 요구해 최초로 자립생활주택을 받아내게 됐다. 그런데 2002년에 서울시장은 이명박이었고, 2009년에 서울시장은 오세훈이었다. 따라서 지금 윤석열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장연을 지독하게 탄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02년과 2009년에 전장연과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보수우파 정치세력은 지금 다시 돌아와 자신들이 양보했던 것을 되돌리고 시곗바늘을 다시 과거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투쟁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또, 박경석 대표는 이 책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 대한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이준석 의원은 윤석열 정권 초기에 당시 국민의힘 대표로서 전장연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며 공격을 부추겼던 정치인이다. 당시 이준석은 전장연이 "시민을 볼모" 삼는 "비문명"이라고 매도했다. 그래 놓고 이준석은 박경석 교장과 토론 자리에서 "대표님은 나한테 고마워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 내 덕분에 유명해져서 좋은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렸다.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박경석 대표가 "비문명"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제가 여기 나가가지고 노상방뇨 해봐요. 그런 게 바로 비문명이에요”라면서 전장연의 활동을 극단적으로 모욕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탈시설 반대를 주장하는 이준석에게 박경석 대표가 “당신은 5명이랑 한방에서 살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야만적인 권력과 정치인들에 맞서 ‘불쌍한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불온한 장애인들의 권리’를 요구한 게 바로 전장연의 투쟁이었다. "나비가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듯이, 우리는 이 폭력적인 세상의 기준을 바꿔낼 수 있는 씨앗을 이 사회 곳곳에 조금씩 조금씩 흩뿌리고 있는 거죠."(박경석 대표) 이 투쟁과 연대의 ‘씨앗을 흩뿌리’기 위한 책을 많은 분이 사서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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