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반대 단체들과만 '비공개 합동' 간담회 결정

'시민들과 갈라치기' 이어 '장애인들끼리 갈라치기'

'탈시설' 의제도 아닌데 핑계 삼아 단독 면담 거절

실무협상하자더니 뒤로는 6억 원대 손배소 청구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경북 상주시청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특별시-경상북도 교류 강화 업무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북과 서울은 이날 체결로 관광·문화교류,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강화 등 4개 분야의 업무 협력에 손을 잡았다. 2023.1.18.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경북 상주시청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특별시-경상북도 교류 강화 업무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북과 서울은 이날 체결로 관광·문화교류, 고향사랑 기부제 홍보 강화 등 4개 분야의 업무 협력에 손을 잡았다. 2023.1.18.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단독 면담'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단체들과의 '합동 면담'을 최후 통첩했다.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겉으로는 대화를 선전하면서, 뒤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워 면담 회피 명분을 쌓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시, 교통공사가 지하철 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장연과의 면담에 나선다"며 "설 명절 전인 19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과 장애인 단체 비공개 합동 면담을 마지막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탈시설 논의는 전체 장애인을 위한 요구사항이므로, 특정 단체만의 의견 수렴으로는 애로사항 청취와 실효적인 정책 적용에 한계가 있고, 타 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합동 면담 형식을 재차 강조했다.

오 시장과 서울시의 제안은 표면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간의 과정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오 시장이 그동안 밝혀온 '무관용' 원칙을 다른 방식으로 재확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당초 면담 제안은 지난 4일 전장연이 먼저 했다. 전장연은 오 시장에게 △리프트 추락 참사로 사망한 장애인에 대한 사과 표명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을 미이행한 것에 대한 사과 표명 △법원의 조정안 수용 등에 대한 의제로 면담을 제안했고, 오 시장이 이를 받아들였다.

 

오세훈 페이스북 갈무리. 2023.1.8.
오세훈 페이스북 갈무리. 2023.1.8.

오 시장은 전장연의 제안이 있던 날 페이스북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하루 만인 지난 5일에는 "만남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어야 한다"며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선전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용인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전장연 측은 "서울시장님 취임식 같은 축하하는 자리에 조건 없이 눈도장 찍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원하는 만남과 대화의 구체적인 방식과 일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측은 면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가졌다.

5차례 가진 실무협상에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비공개 합동 면담'을, 전장연은 '공개 단독 면담'을 주장했지만 양측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비공개 합동 면담'을 최후 통첩하기에 이른다.

특히 서울시는 "실효적인 정책 적용에 한계가 있고, 타 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며 다른 장애인 단체들과 함께 합동 면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오 시장의 최근 행적들에 비춰봤을 때 앞뒤가 맞지 않은 변명이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지난해 6월 27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 서울시 탈시설 조례안 무효 입장을 전달했다. 2023.1.1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지난해 6월 27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 서울시 탈시설 조례안 무효 입장을 전달했다. 2023.1.1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오 시장은 지난해에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탈시설 예산 증액 등을 위해 시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같은 해 6월 27일 탈시설을 반대하는 장애인거주시설협회와 단독 면담을 가졌다. 실효성과 형평성을 언급하면서 탈시설 반대 단체 이야기만 들은 것이다.

오 시장은 전장연과 대화를 추진하던 지난 9일에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장애인 단체장들만 초청해 면담을 가졌다. 서울시는 공공기관임에도 이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오늘 간담회(면담)는 시작부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면서 노골적으로 특정 단체를 겨냥했다.

또 서울시는 같은 보도자료에서 "전장연 시위 이후에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비장애인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장애인들이 전장연 시위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 등 반대 단체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실었고 언론은 이를 받아썼다.(1월 11일자 <오세훈의 두 얼굴…'장애인 갈라치기'에 6억대 손배소까지> 기사 참고)

오 시장의 9일 면담에 대해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시민과 장애인 갈라치기'에 이어 '장애인과 장애인 갈라치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17일 보도자료에 "2023년 1월 9일 9개 장애인 단체와 공동면담을 진행하며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장애인 단체와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18일 오전 서울 혜화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혜화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아울러 서울시는 "탈시설 논의는 전체 장애인을 위한 요구사항이므로, 특정 단체 의견 수렴으로는 애로사항 청취에 한계가 있다"며 합동 면담을 밀어붙이지만, 탈시설은 애초에 전장연 면담 의제도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탈시설 찬반을 명분으로 합동 면담을 하자는 것은 취지를 벗어난 주장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1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탈시설 문제는 합의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우리 측에서 그 의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며 서울시에 탈시설 의제를 빼고 단독으로 면담을 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장연도 "서울시가 탈시설 의제를 두고 장애인단체 간의 찬반양론을 핑계로 합동면담을 제안한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자세"라며 "탈시설은 전장연이 주장한 장애인 정책이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에게 2014년 1차, 2022년 2, 3차 권고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는 '냉각기'를 갖자면서 전장연 측에 6억 145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또 기존 소송 청구액도 3000만 원에서 5145만 원으로 늘렸다. 대화하자고 하고 뒤로는 장애인을 갈라치기하고 소송을 통해 경제적, 정신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1박 2일 선전전 당시 경찰 및 서울교통공사 대응 영상. 2023.1.9.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또 오 시장은 지난해 12월 전장연 측에 '휴전'을 제안해놓고 새해 첫 선전전을 강경 대응해 중증 지체 장애인, 뇌병변 장애인 등이 다쳤다(1월 9일자 <"휠체어에 들이받혔다고?" 장애인들의 말은 달랐다>기사 참고).

당시 전장연은 법원 조정안에 따라 5분 내 탑승 선전전을 시도했으나 경찰과 서울교통공사가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막으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 방패를 막다가 손가락이 부러진 비장애인 활동가도 있다.

전장연은 새해 첫 선전전이 끝난 지 보름 만인 18일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를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전장연은 진정서에서 "서울교통공사는 해당일에 서울경찰청과 함께 600여 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탑승과 이동을 물리력으로 제지하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휠체어의 전원을 끄거나 휠체어를 강압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교통공사가) 무단으로 엘리베이터와 출입구를 폐쇄해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통약자 다수의 이동을 제한했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약 20여 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부상을 입고 휠체어의 파손 또한 다수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1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1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장연은 이에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서울시에 '비공개' 단독 면담을 요청했다. 전장연 입장에서도 서울시에 보내는 최후 통첩인 셈이다.

전장연은 면담하기로 한 19일 오후 4시까지 오 시장과 서울시의 답변을 기다린다는 입장이지만, 오 시장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장연 관계자는 기자에게 "면담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면담이 불발되면 오는 20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전장연은 20일 오이도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 지하철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또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삼각지역에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 장애인권리입법 예산 쟁취를 위한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