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역 역장, 본인도 장애인이라면서 그리 했나"
현장에 있던 장애인들 인터뷰 "다친 사람은 우리다"
"깔린 우리를 짐짝 마냥 들어내…몸도 마음도 상처"
1박 2일 선전전 당시 경찰 및 서울교통공사 대응 영상. 2023.1.9.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 2~3일 삼각지역에서 새해 첫 지하철 선전전에 나섰다. 전장연은 5분 초과 선전전을 금지한 서울중앙지법의 조정안에 따라 '5분 내 탑승'을 원칙으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단 "1분도 허용 못한다"는 무관용 원칙을 들이밀었다. 결국 5분 시위는 14시간 벼랑 끝 대치로 이어졌고, 역사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지난 3일 삼각지역에서는 전장연 바로 앞에서 경고방송을 하던 삼각지역 역장 구기정(52) 씨가 휠체어에 살짝 몸이 닿자마자 쓰러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구씨는 "일어나라"는 전장연 회원들의 요구에 몇분 누워 있다가 119 휠체어가 오자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6일 뒤 <조선일보>에 구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구씨는 9일자 인터뷰에서 "저도 6급 지체장애인이다. 똑같이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서 전장연분들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하지만 휠체어로 사람을 들이받고, 보안관 머리채를 잡고… 이건 정말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구씨가 지난 5일 인터뷰에 응하면서 한쪽 자리를 쩔뚝이며 나왔다고 전했다.
청년시절 운동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 '6급 장애인'(현재 경증으로 분류)이라는 구씨는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니 '연기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던데, 같은 날 다친 곳을 (휠체어에) 또 부딪혀 정말 아팠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구씨의 일방적인 주장만 전했다. 전장연의 선전전은 폭력 시위로 비쳤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장애인들의 말을 듣기 위해 9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는 삼각지역에서 다친 장애인 활동가, 구씨와 부딪친 휠체어에 앉아 있던 장애인 당사자가 응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으며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경우 익명으로 처리했다.
"경찰 진압에 휠체어 조종장치 고장났었다"
A씨는 뇌 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지난 3일 구씨가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경고방송을 할 때 A씨는 구씨의 바로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승강장이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 언어 장애가 있는 A씨를 대신해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이 전한 상황은 이랬다.
김 실장은 당시 현장 기자들에게 "휠체어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긴 했지만 직접 부딪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역장 방향으로 이동한 게 아니라 옷에 (조종 장치가) 걸려서 휠체어가 앞으로 나갔다. 돌진한 게 아니다. 돌진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A씨가 '돌진'할 당시 휠체어 조종장치는 망가져 임시로 팔걸이에 묶인 상태였다. A씨는 <민들레> 인터뷰에서 "경찰이 지하철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 전동 휠체어가 강한 충격을 받아 컨트롤러(조종장치)가 부서졌다"며 "컨트롤러는 휠체어 전원, 속도, 방향 등 일체를 조작하는 핵심적인 장치인데 이게 부서져 끈으로 묶은 채로 돌아와 수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구씨는 자신이 다쳤다고 주장했지만, 더 많은 장애인들이 다쳤다. A씨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3번이나 수동 휠체어를 탄 채로 뒤로 넘어져 어깨와 등의 통증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한 비장애인 여성 활동가는 경찰에게 입고 있던 패딩을 뜯겨 솜털이 다 삐져나올 정도였다. 그는 '삼각지 역장의 장애 사실을 알았거나 평소 다리를 절뚝이는 것을 본 적 있냐'는 질문에는 "알지 못했고, 본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장연 측이 '연기한다'고 비판했다는 구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당일 (구씨에게) '연기한다'고 한 사람은 전장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유튜브 촬영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A씨는 구씨의 <조선일보> 인터뷰에 대해 "시위대와 시위를 막는 사람들 간에 싸움을 붙이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본질이 흐려질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A씨는 "자유롭게 이동하고, 존엄하게 살고 싶어 전장연 선전전에 참여했다"면서 "모든 교통 장벽은 장애인의 존재를 지운다. 저는 제 모습 그대로, 지워지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가 지워지고 시설이나 집안에서 고립된 삶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갈라치기 하는 나쁜 정치, 나쁜 언론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장애인을 고려한 정책을 적극 펼쳐 변화를 이뤄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군사정권에나 있을 폭력…악몽을 꾸고 있어"
이번 선전전에 참여한 전장연 활동가 문애린(43) 씨도 선천적인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어 전동 휠체어에 의지한다. 그는 "오랫동안 전장연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역사회를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1박 2일 선전전 당시 삼각지역에서 폭행을 당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다.
문씨는 "서울시, 교통공사 직원, 경찰이 합심해 비장애인은 물론 장애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면서 "밑에 깔린 저를 짐짝 마냥 들어 올린 채 구둣발로 짓밟았다. 군사정권에서나 있었을 법한 폭력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다리 쪽에 멍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고 손목이 아파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은 장애인에게 신체의 일부와 같은 전동 휠체어까지 망가뜨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씨의 휠체어는 손잡이가 비틀리고 등받이가 고장 나 펴지지 않는다.
문씨는 구씨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고 구씨 역시 경증이긴 하지만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지하철 한 번 타자고 온몸으로 절규하는 장애인을 강압적으로 막는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본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문씨에 따르면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오래된 문제였다. 그는 "1월 2일 선전전뿐이 아니라 사실상 20년 넘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대상으로 한 투쟁 및 선전전 과정에서 (공권력으로부터) '병신새끼' '집에나 있어라'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팔다리를 비틀거나 장애인을 휠체어에서 떼내는 등의 완력이 서슴없이 자행됐다"고 증언했다. 또 "그러한 폭언과 폭력을 온몸으로 당했을 때 인간으로서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다. 마음에도 큰 생채기가 생겨 악몽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 한 해 서울시와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로 인해 장애인들을 불편을 끼치는 존재, 혐오의 존재로 여겨왔다"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저는 장애인으로 40년 넘게 이 사회에서 부정 당한 존재다. 장애가 있다고 이동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살아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더이상 있어도 없는 존재가 아닌,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받고자 길바닥에서 이야기해왔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경찰과 권력을 동원해 무참히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문씨는 "그들은 약속한 것마저 지키지 않은 채 장애인을 향해 시설과 집구석에서 살아가라고 한다"라면서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고 싶어서 내는 목소리가 흩어지지 않게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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