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율 관세 부작용에 먼저 굴복한 것은 미국
블룸버그, 중국 승리 보도 “핵심 요구 다 들어줬다”
4월 2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상황으로 회귀
145%까지 간 관세율 115%p씩 깎아 30%대 10%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상 시작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뒤 급발진해 롤러코스트 타듯 출렁거린 미중 ‘관세전쟁’ 1차전은 싸움을 시작한 트럼프 정권의 ‘패배’로 일단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미국은 ‘종이 호랑이’였다. 호기롭게 추가에 추가로 관세율을 몇 배씩 높였으나 중국은 굴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권은 파산상태의 부동산 침체 속에 경제가 감속하면서 (과잉)수출에 매달리고 있는 중국에게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 미국이 관세공세를 펼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은 버텼고, 결과는 딴판이었다.
100%가 넘는 대중 관세율로 중국산 수입품에 크게 기대고 있던 미국 중소매업자들과 소비자들이 2배가 넘게 뛴 물가를 견디지 못해 신음소리를 내며 정부를 성토하고, 예외없이 미국의 고율 관세 공세에 놀란 세계가 비판의 소리를 높여 가자,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먼저 협상을 요청했다. 비현실적인 고율 관세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은 미국 자신이었다.
10~11일 제네바 미중 협상에서 트럼프 정권은 관세를 사실상 다시 상호관세 이전의 원점으로 되돌리면서 중국도 관세를 내렸다며 ‘승리’를 공언했으나, 애초 큰소리 치며 기대했던 중국의 굴복은커녕 양보도 제대로 얻아내지 못한 채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패배’했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국 모두 115%p씩 관세를 깎았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해 30%, 중국은 10%로 어긋나 있고, 90일간 발동이 유예된 부분, 자동차 철강 등 이번 협의에서 제외된 주요 품목들도 많다. 두 나라는 90일간의 추가관세 발동 유예기간에 ‘진짜 협상’을 벌여야 한다.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선전포고 뒤 십자포화 쏟아진 관세전쟁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중국에 대해 기본 일괄관세 10%에 24% 추가관세를 얹어 34%로 하겠다고 공표하자, 중국은 지지 않고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트럼프 정권은 미국의 조치에 대한 중국의 “존중 결여”를 탓하며 50%를 더 추가해 84%로 올렸다. 중국 역시 지지 않고 84%로 대미 관세율을 높이자 트럼프 정부는 다시 125% 인상으로 받아쳤다. 최종적으로 중국산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관세율은 지난 2~3월에 부과한 기존 20%에 125%를 추가한 145%가 됐다. 시진핑 정부도 질세라 125% 인상으로 맞받았다.
한달여 만에 115%p씩 내리며 원위치로
10~11일 제네바 협상에서 미국은 중국의 보복조치를 이유로 올린 추가관세 부분을 철회했다. 총 145%의 관세율에서 상호관세율 부분을 원래의 34%(4월 2일 발표)로 되돌리고, 그 중에서 추가된 부분인 24%를 앞으로 90일간 발동을 유예해서 당장의 기본세율을 10%로 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지난 2~3월 마약 펜타닐 밀수 대책 미비 등을 이유로 때린 20% 추가관세를 포함하면 30%가 된다.
말하자면 트럼프 정권은 145%까지 올렸던 대중 관세율을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10%까지로 내렸다. 여기에 지난 2~3월에 부과했던 20%를 합하면 30%가 된다. 결국 145%에서 115%p를 깎아 30%가 된 셈이다.
여기에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 제품 등에 부과한 25% 관세 등 분야별 관세는 이번 협상대상에서 빠졌다. 즉 그것은 그대로 유지된다.
중국도 125%에서 미국과 꼭같이 115%p를 깎아 10%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상 시작
따라서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세율은 상대방에 대해 각각 30% 대 10%로 미국이 3배나 높다. 90일간 발동 유예에 들어간 미국의 대중국 추가관세 24% 부분을 포함해서, 양국은 이제 90일간 전체 관세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는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상황은 4월 2일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당시로 되돌아갔다. 호기롭게 시작한 미국의 대중 관세전쟁은 당초 기대했던대로 중국의 기세를 꺾어 놓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경제의 혼란과 반발만 키운 채 서둘러 협상을 출발점으로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꿈꿨던 일방적 승리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제네바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어느쪽도 디커플링(분리)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치했다”고 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말대로 미국은 중국 없이는 지금의 자국 경제를 유지할 수 없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고율 관세 부작용에 먼저 굴복한 것은 미국
취임 100일 째를 맞아 실시된 미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보다 더 많았다. 트럼프 2기 정권 정책에 대한 질문항목들 중에서 이민 규제강화 정책을 빼고 거의 모든 항목에서 지지율이 내려갔다. 특히 145% 대중국 관세는 중국산에 크게 의존하던 미국 중소 소비제품 수입업자들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2배가 넘는 가격으로 그것을 사서 써야 할 처지가 된 소비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고, 최악의 경우 미국 전역의 소매점 진열대가 텅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퍼졌다.
주가 하락, 국채가격 하락, 달러 시세 하락의 ‘트리플 약세’ 속에 금융계도 위기에 직면했다.
제네바 회의가 끝난 하루 뒤인 12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주가는 급상승했다. 백악관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강변했으나, 시장은 “관세 부작용에 트럼프가 굴복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애초에 그런 비정상적인 고율 관세 조치가 없었다면, 이번 제네바 회의 합의로 급등할 만큼 주가가 폭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2일의 뉴욕 증권시장에서 다우존스 평군주가는 지난 주 말에 비해 1100달러 오른 값에 마감해, 4월 2일 트럼프의 대규모 상호관세 발표 이후 1개월여 만에 4만 2000달러대를 회복했다. 이로써 “미중 양국간의 무역이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관세율이) 내려갔다”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전직 고위관리 웬디 커틀러는 말했다.
‘미국 승리’ 주장한 트럼프와 백악관
트럼프는 이날 “우리는 중국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며 “그들은 공장 폐쇄 등으로 이미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면서 115%p의 관세 인하가 마치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타격을 입은 중국 쪽 사정 때문인 듯 주장했다. 백악관 홈페이지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역사적인 승리를 확보”한 것이라는 제목을 달아 제네바 협의 합의내용을 게시했다.
트럼프는 13일 시작된 중동순방 전에 미중 제네바 협상을 ‘미국 승리’로 못박아 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미국의 ‘승리’로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트럼프는 이번 협의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SNS를 통해 관세율을 80% 정도로 내리겠다고 시사했으나 결과는 30%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중국보다 20%p나 더 높은 관세율은 미국 수입업자들이 그로 인한 비용 증가를 소매가격에 전가하게 만들어, 그만큼 더 비싸게 중국산을 사서 써야 하는 미국 소비자들 불만을 키울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관세율 인하 조건으로 내세웠던 중국의 미국제품 구입 확대 요구는 이번 합의사항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트럼프 1기 정권 무역협상 때 트럼프는 중국에게 2000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 추가 구입 약속을 관철시켰으나, 중국은 그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탓도 있었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번 제네바 회의에서 그 부분까지 따져서 미국산 구입 확대를 요구할 만했으나, 합의사항에 넣지도 못한 것이다.
블룸버그, 중국 승리 보도 “핵심 요구 다 들어줬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가 나왔다며 “중국은 (향후)교섭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퍼졌다. <블룸버그 통신>도 “이번 합의는 베이징의 핵심적인 요구를 거의 모두 만족시켜 준 결과가 됐다”며 중국 ‘승리’를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12일 미국이 이상하리만치 중국에 유리한 협상("America has given China a strangely good tariff deal")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1기 정권 때의 미중 무역협상은 타결까지 18개월이 걸렸다. 그때보다 더 복잡해진 양국간 무역분쟁을 90일, 3개월만에 끝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건대 2기 트럼프 정권은 1기 트럼프 정권 때보다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일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능 탓일 수도 있고, 미국의 국가적 퇴락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다.
관련기사
- 트럼프, 중동 순방서 이스라엘 '패싱'…곳곳서 '이상 신호'
- "트럼프 관세, 독인가 약인가" 미 연준-백악관 격돌
- 불량국가 미국의 관세만능주의 대통령
- 기축통화 달러로 ‘네덜란드 쇠퇴병’에 걸린 미국
- 미 재무장관 “한국, 최선의 제안”…뭘 주려고 했기에?
- 트럼프 관세 피하려다…국내 산업 기반 무너질라
- '트럼프 관세 반대 선언'…미국 경제학자들도 일어섰다
- "트럼프 ‘관세전쟁’은 미국 산업재건을 위한 혁명과정"
- 트럼프가 상호관세 발동 유예로 급선회한 까닭
- 트럼프가 전 세계에 던진 관세폭탄, 미국서 먼저 터져
- 장난하나? 트럼프 "한국 상호관세 25%" 문서엔 26%
- 2일 발동 미국 ‘상호관세’로 세계 GDP 0.6% 감소
- 트럼프 고율관세 제조업 부활론 “제 무덤 파는 것”
- 트럼프 관세전쟁은 ‘제2 플라자 합의’ 전초전?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