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단위 달러 쌍둥이 적자에 흔들리는 달러방위
40년 전 쌍둥이 적자 때 ‘플라자 합의’ 강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그때 시작됐다
주기적으로 위기 맞는 달러의 ‘트리핀 딜레마’
미 국채 100년 만기 무이자 채권으로 교환요구?
고율관세 면제를 교환조건으로 빅딜 압박 예상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단위 달러 쌍둥이 적자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총액은 36조 달러다. 이 가운데 지난해 11월 기준 국채 발행액만 약 26조 7천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5%나 늘었다. 20년 전의 4배다. 증가세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부채에 대한 이자 지불액만 연간 1조 달러나 된다. 지난해 미국 군사비가 9970억 달러였는데(<민들레> 5월 18일 ‘한국 실질 군사비 세계 9위…일본 영국 프랑스 추월’), 그보다 많은 돈을 정부부채 이자로 지불한다. 2024년에 만기가 도래한 미국 국채 규모만 약 3조 달러로 추산됐다. 갚든지 또 다른 국채발행 등으로 빚을 내서 빚을 막아야 한다.
이자와 배당 등의 제1차 소득수지도 지난해에 적자로 돌아섰다. 금융투자로 외국에서 받아오는 돈보다 내 줘야 하는 돈이 더 많아졌다.
그리하여 연방정부 연간 재정적자 규모가 1.8조 달러나 된다. 지난해 무역적자도 1.21조 달러로, 지난 10년간 1.6배로 늘었다. 조단위 달러의 쌍둥이 적자다.
40년 전에도 쌍둥이 적자로 ‘플라자 합의’ 강요
40년 전인 1985년에도 미국은 심각한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그해 9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을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불러 모아, 달러에 대한 그 나라들의 통화시세를 강제로 끌어올리게 했다.(환율 저하) 그렇게 해서 미국 달러 시세가 상대적으로 내려가야(환율 상승) 미국 수출이 늘고 고용과 소비도 늘어나 무역 및 재정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 특히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던 일본 엔화 시세를 끌어올리라(평가절상)고 압박했고, 일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엔 시세는 그 다음해에 2배로 뛰었다. 1달러=240엔대였던 엔 시세는 1달러=150엔대로 뛰었고, 1990년대 이후 최고조기엔 1달러=80엔대까지 올라갔다. 플라자 합의를 주도했던 로널드 레이건 정부 재무장관(나중에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그때 엔화 가치 절상의 애초 목표치는 10%였으나 뜻밖에 25%가 됐고, 그 뒤 손을 쓸 수도 없이 올라갔다고 회고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거기서 시작됐다
어쨌거나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을 듣게 된 일본 장기불황의 시작이었다. 그 여파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정부의 대응정책 실패 탓이 적지 않겠지만, 그때 무너진 일본은 재기하지 못했다.
플라자 합의로 엔 시세가 급등하면서 수출이 타격을 받고 경제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일본정부는 금리를 대폭 인하했다. 그렇게 해서 풀린 엄청난 돈이 부동산 투기로 쏠리면서 거대한 거품이 형성됐다.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가계와 투기꾼들, 그들에게 저리로 막대한 자금을 대출했던 금융기관들이 연쇄도산하거나 부실화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세월’이 시작됐다.
일본경제가 망가지는 대신 미국 경제는 궁지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그것은 영원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지금 미국경제는 40년 전의 플라자 합의 때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
1985년 당시 1200억 달러였던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난해에 1.21조 달러로 10배가 됐고, 재정적자도 당시 2100억 달러에서 지금 1.8조 달러로 9배로 늘었다.
주기적으로 위기 맞는 달러의 ‘트리핀 딜레마’
미국경제가 이런 주기적 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기축통화 달러의 모순적인 자체 존립구조 때문이다. 미국이 값싼 제품을 외국에서 수입하면 그 대금으로 달러가 유출된다. 수출 대금으로 달러를 벌어들인 수출국은 그 돈을 미국 국채 매입 등을 통해 가장 안전한 자산인 기축통화 보유국에 다시 투자한다. 결국 수입대금으로 미국 바깥에 나간 달러는 (부채의 형태로) 다시 미국으로 환류한다. 2024년의 경우 미국의 무역적자는 1.21조 달러였으나 금융수지는 유출보다 유입이 1.27조 달러 더 많았다.
그렇게 해서 달러가 다시 미국에 쏠리면 달러는 강세가 되고, 달러 강세는 미국 수출산업에 불리하다. 그렇게 해서 무역적자가 쌓이고 제조업이 죽고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재정적자도 부풀어 오른다. 이는 모순관계다. 결제 수단이자 투자와 (지불)준비자산인 달러가 미국 바깥으로 유출돼야(유동성 공급) 세계경제가 돌아간다. 그렇게 해서 달러 수요가 많아지면 달러 시세가 올라가고, 그것은 미국으로 환류된다. 그럴수록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수입은 늘어나고 수출은 줄어 미국 제조업은 무너지고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늘어난다. 이는 결국 결제와 투자, 준비통화로서의 달러의 신뢰성도 흔들게 된다.
트럼프 ‘관세전쟁’은 제2의 플라자 합의 위한 방책
이처럼 기축통화의 유동성 공급과 그 통화에 대한 신뢰성 유지가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한다. 1960년대에 벨기에의 경제학자 로베르 트리핀이 제창했다. 이런 모순구조 때문에 미국 달러와 미국 경제는 주기적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트리핀 딜레마를 피하는 한 가지 유력한 방안은 독일처럼 자국 통화 마르크를 기축통화로 내세우지 않고 '유로' 같은 공동통화를 기축통화로 세우는 것이다. 1944년에 2차대전 이후의 국제금융질서를 새롭게 짠 브레턴우즈 회의 때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가상의 국제공용통화인 '방코르'를 기축통화로 세우자는 안을 냈으나, 미국은 거부하고 달러를 내세웠다. 기축통화국이 갖는 경제 및 안보군사상의 막대한 '특혜' 때문이었다.
지금 트럼프 2.0 정부는 기축통화 유지에 따르는 딜레마를 고율의 관세를 교역상대국에 부과하는 난폭한 ‘관세전쟁’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관세전쟁’의 궁극적 목표가 제2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플라자 합의 2.0)를 도출해 내는 것이라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 그 1차적 목표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즉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달러 시세(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금 그 일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의 스티븐 미런 위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트리핀 딜레마’를 자주 입에 올리던 그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해서 유명해진 논문이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다. 달러가치 절하를 통한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 문제 해결이 그 핵심 주장이다.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에 통화가치를 높이도록(환율 저하) 압박해 달러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미런의 주장은 40년 전의 플라자 합의 때의 미국 재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가 미런을 지난 3월 CEA 위원장직에 기용한 것은 그의 그런 주장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무이자 채권으로 교환?
<일본경제신문> 5월 19일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달러 가치절하 외에 외국에 대한 막대한 국채 이자 지불을 줄이기 위해 지금 각국이 보유중인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무이자 채권으로 교체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열심히 생산해서 수출한 대금을 기축통화인 달러로 받아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는 것은 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매각이익,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바라고 하는 일인데, 그 것을 사실상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교역국이 있을까?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바로 그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비법으로 고안됐다는 얘기들이 있다. 고율 관세가 무역적자를 줄이고 재정수입을 늘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100년 만기 무이자 국채로의 교환을 수락하게 만들 인센티브 내지 압박수단으로도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무이자 국채로의 교환을 받아들이면 고율관세를 면하게 해 주겠다는 ‘딜’(협상)이다.
100년 만기 무이자 국채로의 교환만 ‘딜’ 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예컨대 미국산 무기나 농산물, 에너지를 얼마치 이상 사라거나, 몇백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투자하라거나, ‘방위비 분담’ 명목의 미군 주둔비를 대폭 올리라거나, 일본과의 협력을 동맹으로 격상하고 남북통합을 포기하라거나, 반도체와 배터리, AI 등 첨단기술을 공유하고,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참여를 확약하라는 등의 요구를 고율관세 부과 면제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플라자 합의 2.0 '마러라고 합의'
뉴욕 플라자호텔이 아니라 플로리다의 트럼프 사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플라자 합의 2.0’을 그 사저의 이름을 붙여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고 하는 모양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플라자 합의 한 해 전인 1984년에 투자 전문가이자 경제사가이기도 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스승격인 유명한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가 막대한 무역 및 재정적자로 연명하는 미국 달러의 ‘제국주의적 순환’ 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경고를 했고, 그 다음해에 플라자 합의가 강행됐다.
미런의 구상이 나온 지금의 미국의 상황이 40여년 전의 그때와 닮았다.
사정은 그때보다 더 어렵고 다급해졌다. 지금처럼 쌍둥이 적자가 계속되면 달러의 유출도 계속될 것이다. 이미 달러는 너무 많이 풀렸다. 세계의 GDP는 지난 20년간 2.7배가 됐으나, 달러 공급총량은 5.4배로 늘었다. 달러 과잉공급이 전 세계적인 자산 거품과 달러 신뢰도를 떨어뜨릴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에 4월 2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동 뒤 미국은 주가 폭락, 달러 약세, 국채가격 하락이라는 ‘트리플 약세’ 사태를 맞았다. 통화와 채권 전문가인 베선트 재무장관이 조지 소로스처럼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런던 금융시장 유행어가 ‘탈달러’라고 한다. 기축통화 달러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6일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트리플 A(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더블 A(Aa1)로 내린 것도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무디스는 평가절하 이유로 “역대 미국 정권과 연방의회는 매년 거액의 재정적자와 금리 부담 증가를 반전시킬 수 있는 조치에 합의하지 못했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예산안도 재정적자의 대폭 삭감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향후 10년간 정부 세입이 대체로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보장 지출이 늘고 재정적자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거액의 재정적자로 정부 채무 및 금리 부담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무디스와 함께 이른바 3대 평가기관에 들어가는 S&P와 피치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 국가평가 등급을 낮췄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나흘 전인 12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의회 하원 지도부가 제시한 감세법안은 25~34회계연도의 10년간 약 4조 달러 감세 내용을 담았다. 감세 대상 대부분이 기존 상태의 단순연장이어서 감세효과로 경기가 좋아지고 그것이 세수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 재정적자만 더 키울 감세다. 이 혼돈 중에 정부와 의회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말 미런 위원장이 헤지펀드 시타델 등 10여개의 유력 금융기관 수장들을 소집해 비공식 회의를 열었을 때 이미 그가 불확실한 전망 때문에 흔들리는 금융시장에 대한 위기의식을 토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마러라고 합의의 핵심 ‘딜’ 상대는 중국
트럼프가 상호관세 발동 90일 유예를 선언하고, 중국과 145%까지 갔던 관세율을 115% 깎기로 서둘러 합의한 배경에 베선트와 미런의 그런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베선트가 강조하는 ‘리밸런스’(rebalance, 재균형)는 쌍둥이 적자를 줄여 달러 과잉유동성도 줄임으로써 달러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달러 방위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국채의 100년 만기 무이자 채권으로의 교환 얘기까지 나온 ‘마러라고 합의’(플라자 합의 2.0)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이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1조 1천억 달러)이긴 하나, 그 핵심 협상상대는 중국이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 뒤에는 중국이 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해 온 중국 자금의 미국 환류는 주택대출 채권 등의 형태로 미국 부동산 거품 조성에도 일조했다. 그 거품이 터진 것이 2008년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프라임 모기지) 거품 붕괴(리먼 브러더스 쇼크)였다.
미국은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보유 중인 미국 국채 대량 매도도 막으려 할 것이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과 제조장비 수출규제 완화를 위안화 평가절상과의 교환조건으로 제시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제조업이 GDP(국내총생산)의 25%를 차지하고 있어서, 미국 요구대로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면 수출길이 막히고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부동산경제 붕괴로 소비가 얼어붙어 심각한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중국이 그것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공업생산액은 이미 세계 전체의 30%를 차지해 미국의 2배다. 전기자동차 등 많은 전략(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불황 중의 ‘세계의 공장’에게 생산을 줄이고 수출을 줄이라는 요구가 먹혀들까. 2008년 ‘리먼 쇼크’ 때 대미 투자 손실을 경험한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량을 최대로 보유(1조 3천여 억 달러)했을 때의 절반 수준(약 7600억 달러)으로 이미 줄였다. 대미 수출로 확보한 달러를 지금은 ‘일대일로’ 관련국/지역에 대한 투자로 돌리고 있다. 중국 수출의 46%가 이들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지역과의 교역으로 얻는 흑자의 GDP 대비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무역의 미국의존은 착실히 줄여가고 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40년 전의 9~10배나 되는 미국의 ‘마러라고 합의’ 협상상대는 만만한 동맹국 일본이 아니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다. 게다가 중국은 플라자 합의에 동의해 준 일본이 그 뒤 어떻게 됐는지도 잘 알고 있다.
‘관세전쟁’ 압박이 그런 중국에게 통할까.
달러 자멸을 앞당길 달러 방위 관세전쟁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고집할 경우 미국의 수입액은 향후 10년간 7조 달러가 줄어들 것이라는 추산도 나와 있다.(펜실베이니아 대학) 그렇게 되면 그만큼 외국 자본의 유입과 축적도 줄어들어, 이제까지 외국 자본이 매입했던 국채도 미국 국내에서 소화해야 한다. 달러 시세 하락으로 일부 제조업이 혜택을 받겠지만, 30년 뒤 미국의 임금과 경제규모도 7~8%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달러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관세전쟁이 오히려 달러 자멸을 앞당길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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