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과-인하-유예-부과-유예-인하의 대혼돈
중국을 핵심 타겟으로 8년 넘게 이어지는 관세전쟁
국가 적자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관세로
국가 분열, 국격 추락, 세계의 혼란 업적(?) 쌓아
부과-유예-인하-부과-유예-인하. 관세 대혼돈. 요동치는 시장(예: 국채 금융시장)과 기업(예: IT의 애플, 유통의 월마트, 자동차의 지엠 등)의 반발로 혼란에 빠진 트럼프 관세정책. 그런데 중국 수입품에는 무려 145% 인상. 그러다 4월 하순, 대통령과 재무장관이 중국 관세를 대폭 인하할 수 있다고 발언(관련 기사 사진 1 참조).
부과든 유예든 관세폭탄은 트럼프가 전 세계, 특히 중국을 상대로 펼치는 경제전쟁의 핵심 전술(바이든 4년도 마찬가지). 목표는 1. 제조업 부활, 2. 일자리 증가, 3. 무역적자 축소 등.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특히 중국을 겨냥한 관세전쟁의 결과는 어떨까? 1기 트럼프와 그 뒤의 바이든, 합계 8년 동안 미국의 관세공습은 계속됐지만 그들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이뤄내지 못했다.
1차 관세폭탄 돌아보기-미국의 빈곤한 정책 역량
먼저 관련 기사를 모은 사진 2를 보자.
왼쪽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지엠, 판매 부진하자 공장 놀리고 직원 해고(뉴욕타임스 2018년 11월 26일), 2, 트럼프 관세, 오히려 미국 철강산업에 철퇴(미국외교협회, 2019년 1월 18), 3. 관세, 수십 년 만에 사실상 가장 큰 증세(CNBC, 2019년 5월 16일). 4. 미국 45개 분야별 산업협회, 트럼프 대중국 관세 철회 요구(2019년 3월 19일), 5. 대중국 관세수입의 1.3배를 피해 농촌 지원금으로 쏟아부어야(미국외교협회, 2019년 5월 31일).
관세는 물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 부담하는 세금과 마찬가지. 물품 판매가 부진한 건 당연지사. 정부는 보복관세로 수출길 막힌 피해자들에게 보상. 일종의 악순환이다. 관세폭탄이 제조업 부활, 일자리 증가, 무역적자 축소 같은 목표 달성의 방도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이런 문제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미국의 빈곤한 정책 역량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훨씬 더 큰 공세를 벌이는 이번의 관세전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연구자나 전문가들의 예측은 거의 예외 없이 부정적.
부정적 결과만 빚은 중국 잡기 노력
관련 기사들을 모은 사진 3을 보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무역, 기술, 국채 등 관세전쟁 카드는 모두 중국에(4월 15일, Financial Times). 2. 미국이 방관하는 사이, 레거시 칩 시장, 중국이 지배(24년 7월 5일, 포춘), 3. 중국 AI 발전, 미국 반도체 규제에도 거침없어(1월 8일, Time), 4. 중국 차세대 컴퓨터 칩 연구 성과, 미국보다 두 배 높아(3월 3일, Nature), 5. 중국, 미국의 관세폭탄에 보잉 비행기 주문 취소로 맞대응(4월 15일, 로이터 통신).
이들 자료는 교역과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AI, 반도체(레거시+차세대) 같은 오늘날 경제 및 군사 분야 핵심 기술. 이에 대해 미국은 쇄국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은 독자적으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한 발 앞서가고 있다. 군사력에서도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지금 트럼프 정부의 국방장관 P. 헤그세스도 인정한 바다.
당연히 다른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대부분이 동의하는 판단이다. 이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트럼프 행정부도, 미 군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을 표적으로 대통령은 관세전쟁을 밀고 나가고, 국방장관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호통치고(?) 있다.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이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무역적자, 예산적자, 국가채무 같은 삼중고를 어떻게든 풀려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1. 대통령 트럼프의 굳센 신념, 그리고 2. 불량한 패권국가 미국의 본성.
19세기 말 대통령에게서 배운 관세만능 교리
트럼프에게 관세는 교리다. 거의 40여 년 가까이 이어지는 굳건한 신조다. 관세만능 교리의 첫 항목에는 일본이 들어있다. 그는 1987년 9월, CNN의 래리킹 쇼에 출연, 지금 중국에 퍼붓는 것과 똑같은 주장을 일본을 대상으로 내뱉었었다(사진 5 왼쪽 참조). “일본과 우리가 자유무역 중이라고요? 아닙니다. 일본은 싸구려 제품을 덤핑하고, 우리 일자리를 훔치면서 뒤로는 미국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자유무역입니까?”
관세교리의 두 번째 항목에는 25대 맥킨리 대통령(1897-1901년 재임)이 들어있다(사진 4. 오른쪽 참조). 지난 1월 취임사에서 그는 “관세로 미국을 부자로 만든 맥킨리는 위대한 대통령”이라며, 자신의 우상으로 칭송했다. 맥킨리 스스로도 자신을 ’관세맨(tariff man)’이라고 불렀다. 소득세 제도가 아예 없었던 당시 관세수입만으로도 충분히 연방정부 예산을 짜고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트럼프가 내세우는 관세만능 이데올로기의 핵심 논리 중 하나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서유럽과 일본의 경제부흥에 막대한 지원(예: 마셜 플랜)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으로 이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경쟁국가(rival capitalists)’로 성장했다. 특히 1980년대 막강한 경제성장으로 일본의 국민소득은 미국을 넘어섰다. 일본 자본은 미국 산업과 부동산 등 곳곳에 진출했다. 일본 경계령이 퍼졌다. 당시 무역과 재정적자—소위 쌍둥이 적자—에 빠져 있던 미국은 일본 등을 압박, 달러 가치 하락-엔화 절상을 핵심으로 하는 플라자 합의를 강요했다. 그 후 미국경제는 살아났고, 일본은 잃어버린 10년—20년, 30년—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런 판이었는데 관세가 웬 말?
19세기 말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산업대국으로 올라선다. 전기, 화학,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엄청난 경제-산업 성장을 이뤘다. 2차 산업혁명을 넘어 제2의 미국혁명이라고도 불렸다. 그 토대 중 하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어온 대량의 이주민들. 그들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자유방임 정부, 규제 없는 자본의 천국, 기업의 천국이라는 사업환경이었다. 그 시절 연방정부는 규모도 작았고, 군대도 작았고, 복지제도도 없었고, 지출은 GDP의 3% 수준. 그래서 관세만으로도 충분했고 흑자 재정은 어렵지 않았다. 또 그즈음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은 무역 흑자국이었다. 이것이 관세로 가능했다고?
불량한 강대국, 미국 “조공을 바치라”
S. 마이런을 트럼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올 3월 임명됐다. 소위 ‘마라라고 협약(Mar-a-Lago accord)’이라 불리는 트럼프 관세전쟁 작전의 핵심 기획자다. 본래 금융기업 간부 출신. 협약의 핵심은 미국이 세계 각국에 내리는 다섯 가지 명령(?)이다.
1. 내라는 대로 관세를 내라.
2.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 제품을 더 많이 사라.
3. 국방비 지출 늘리고 미제 무기를 사라.
4. 미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지어라.
5. 이도 저도 싫거든 미국에 돈을 내라.
다섯 가지 명령을 한 마디로 줄이면 ‘미국에 조공을 바쳐라’다. 조공을 요구하는 논리는? 1. 미국은 전 세계에 안보(지정학적)와 경제(금융) 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2. 그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 불공정하다. 3. 그러니 세계 각국은 그 비용을 미국에 내야 한다. 안보우산이란 800여 개가 넘는 세계 곳곳의 미군 기지를, 경제우산이란 달러라는 현재의 기축통화와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지칭한다.
황당하다. 세계 도처에 군 기지를 세운 것도, 달러를 기축통화로 구축한 것도,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 된 것도, 모두 스스로가 택한 거대전략인데 그걸 다른 나라가 원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를 위해 미국이 자선을 베푼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마이런은 그것을 ‘공공재(public good)’라고 부른다. 모두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왜곡이자 현재의 왜곡이다. 패권국의 관성으로 다른 나라를 압도하려 만들어낸 억지 논리다. 이런 미국을 정치학자 M. 베클리는 ‘불량배 강대국(rogue superpower)’(포린어페어즈 저널, 2020년 10월, 2025년 4월)이라고 불렀다.
분열하는 국가, 추락하는 국격
주도면밀한 계산에 근거한 무역정책, 신의성실에 기초한 경제외교가 아니라, 지도자의 맹목적 신조와 제국의 조공 요구에 따른 관세전쟁. 그러니 미국은 물론 세계가 경기침체와 교역혼돈에 빠지는 건 당연한 결과.
미국 내에선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뉴욕, 일리노이, 오레곤, 아리조나 등 12개 주는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 판단해 달라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했다(사진 6 왼쪽). 관세는 물론 모든 종류의 세금은 의회의 법 제정으로 이뤄져야지,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관세는 트럼프 정부의 내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베센트 재무장관의 견해가 서로 다른 건 물론, 심지어 머스크와 재무장관이 대통령 면전에서 욕설 섞인 언쟁을 벌였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국제적으로도 중국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 또 유럽 국가들도 공개적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미국이 던지는 어떤 형태의 강압에도 맞설 태세를 갖췄다고 공언했다. 미국과 똑같은 방식의 관세조처를 취하는 한편, 트럼프 정부의 기본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 인하 가능성 발언이 나오자, 중국의 소셜미디어에는 ‘겁먹은 미국이 꼬리를 내렸다’는(chicken out) 식의 조롱이 넘쳐난다고 한다(사진 6 오른쪽 참조).
수입은커녕, 관세 대혼돈으로 미국 내부는 분열됐고, 국격은 떨어졌으며, 동맹관계는 훼손됐다. 취임한 지 100일여 만에 이룬 트럼프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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