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봉지욱 등 사건 재판부, 두 번째 엉터리 수사 지적

"수사개시 권한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검사가 설명하라"

개정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 명예훼손 수사 직접 못해

사법부도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했다 보는 듯

재판부, 지난해 10월에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직격

법조인 "단기간에 두 차례나 석명준비명령…매우 이례적"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가 28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11.28. 연합뉴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를 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받는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가 28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11.28. 연합뉴스

윤석열이 검사 시절인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 과정에서 대장동 대출 브로커의 범죄를 눈 감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한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와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 송평수 변호사에 대해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긴 가운데(일명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부가 또다시 검찰에 대해 "수사개시권한이 있느냐"며 제동을 걸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10월에도 "피고인에 대해 처벌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특정하라"며, 검찰을 향해 공소장을 변경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정권의 하명을 받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에 문제가 제기된다. 

25일 <시민언론 민들레>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 백대현 부장판사(재판장)는 지난 17일 검사에게 "피고인들(허재현 기자, 봉지욱 기자, 송평수 변호사)은 검사에게 이 사건의 혐의(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에 관한 수사개시권한이 없으므로 공소제기는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검사는 피고인들의 각 혐의에 관한 수사개시권한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힌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석명준비명령을 내렸다. 석명준비명령은 재판부가 변론기일 전 소송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소송 관계인들에게 미흡한 부분을 증거나 답변서 제출 등으로 보완토록 내리는 명령이다.

법원의 이번 명령은 지난달 피고인들이 검찰의 수사권한에 대해 제기한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허 기자와 봉 기자, 송 변호사 등 피고인 쪽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면서, "검찰이 씌운 정보통신망법상 혐의는 검찰의 수사개시권한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개시 범위는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제한된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2023년 10월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윤석열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의 자택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을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 역시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고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한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 직원들이 14일 오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으로 압수수색 중인 서울 중구 뉴스타파 출입문 앞에 팻말을 붙이고 있다. 2023.9.14. 연합뉴스
뉴스타파 직원들이 14일 오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으로 압수수색 중인 서울 중구 뉴스타파 출입문 앞에 팻말을 붙이고 있다. 2023.9.14. 연합뉴스

재판부의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10월에도 검찰을 향해 "(피고인들의) 공모·가담 관계를 어떻게 보아 기소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라"며 "검사가 각 피고인에 대해 처벌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범행 시일, 장소, 방법으로 나누어 특정하라"고 석명준비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른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지적한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서류 외에 재판부에 예단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을 기재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상 규정으로, 위배됐다고 인정되면 공소기각 사유가 된다. 재판부도 피고인 쪽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장이 판사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불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고, 피의자들의 공모 관계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검찰이 작성한 67쪽 분량의 공소장에는 재판부에서 불필요한 예단을 내릴 만한 내용들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허 기자에 대해 "이재명 후보의 지지를 공표한 사람"이라며 재판부에 예단을 주도록 검찰의 주관적인 판단을 기술하고, 2항에서는 "대장동 개발사업 및 그와 관련된 개발비리 의혹의 제기 경과"라는 제목으로 사건과 관련된 없는 내용들까지 모두 적어놨다.

또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과 관련, "검사실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을 뿐 담당 부서장인 당시 윤석열 중수2과장실에서 조사를 받거나 윤석열 중수 2과장을 직접 대면한 사실이 없다"며,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은 배제하고 검찰의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적기도 했다.

특히 검찰은 민주당과 허재현 기자 등이 공모한 것으로 보고 강제수사를 했다. 검찰은 2023년 10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면서 민주당 김병욱 의원 보좌관 최현 씨와 민주당 국회정책연구위원인 김모 씨 등이 허 기자와 공모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공소제기 후 재판부가 "공모·가담 관계를 어떻게 보아 기소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라"고 석면준비명령을 내리자, 검찰은 의견서를 통해 허 기자의 "단독 범죄 행위"라고 말을 바꿨다. 공모관계를 뒤늦게 철회한 것이다. 애초 민주당과 공모를 수사 과정에서 밝히지 못했다면, 공소제기를 하지 않았어야 하는 데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이 정권의 하명을 받은 정치 수사를 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변호인단과 대화하고 있다. 2025.4.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변호인단과 대화하고 있다. 2025.4.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재판부가 두 차례나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 석명준비명령을 내리면서, 검찰이 자진해서 공소를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원래 석명준비명령이 민사에서는 나오지만 형사에서는 거의 없다. (형사 사건에서) 같은 재판부에서 검사들한테 6개월 정도의 단기간에 두 차례나 내린 경우는 더더욱 없다"면서 "사법부의 심증을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석명준비명령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장이 보기에도 검찰의 공소제기와 수사개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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