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전자기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의 충돌

영화 '아임 낫 데어'는 딜런의 다층적 자아 표현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에서 풍겨오는 색채의 합

변화는 배신 아니니 우리 시대도 혁신으로 가야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의 내면적 갈등이 형상화되어 그의 고독과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의 내면적 갈등이 형상화되어 그의 고독과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965년 미국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포크 음악가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맨 순간, 무대 아래의 관객들은 경악했다. 야유가 쏟아지고, 분노한 이들은 "유다!" 라고 외쳤다. 그러나 딜런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바로 이 순간을 잡아, 음악적 혁신과 개인적 갈등이 교차하는 밥 딜런의 가장 격렬했던 4년을 기록했다. 그리고 한 예술가가 자신을 정의하는 결정적 순간을 담아냈다.

밥 딜런은 늘 그랬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되, 그에 순응하지 않았다. 1961년 미네소타에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로 흘러 들어온 그는 포크 음악에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움은 기존 질서를 위협했고, 그 순간 그에 대한 기대는 곧 거부로 바뀌었다. 영화는 이런 역설적인 관계를 조명한다. 혁신의 순간이 곧 배신으로 낙인찍히고, 자신의 상징인 음악이 동시에 그의 족쇄가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특정 인물의 전기가 아니라,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숙명을 탐구한 작품이다.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한 인간의 초상을 세밀하게 그렸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예술가의 정체성과 변화의 과정을 표현했다. 영화는 밥 딜런의 내면적 갈등과 외부 세계와의 충돌, 혁신과 정체성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단지 예술가의 전기를 재현하는게 아니라, 사회와 충돌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중심축은 밥 딜런의 음악 이야기다. ‘Blowin' in the Wind’ ‘The Times They Are A-Changin’ 등 그의 포크 음악은 당시 미국 사회의 불안과 격변을 담고 있다. 딜런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인권운동, 베트남 전쟁 등의 시대적 파동을 가사에 담아 노래했고, 그가 부르는 곡은 그 자체로 한 세대의 선언문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이 진정으로 깊이 파고드는 지점은 ‘변화’다. 그는 왜 포크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들었는가? 그 이유를 영화는 답한다. 변화는 상업적 선택이 아니라, 예술적 정체성을 향한 불가피한 도약이라고. 그리고 이 변화는 장르 이동이 아닌, 사회적·철학적 갈등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의미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이 미국 포크 음악의 선구자 피트 시거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밥 딜런이 미국 포크 음악의 선구자 피트 시거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뉴포트, 딜런 혁명의 서막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장면이 영화의 정점이다. 이전까지의 포크 음악과는 달리 과격한 전자 사운드가 뿜어나오는 순간,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카메라는 밥 딜런의 표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그가 흔들리지 않고 무대를 지배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 장면은 틀에 짜인 공연만을 재현하는 게 아닌, 예술가가 기존 질서를 깨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는 창조를 위한 파괴의 순간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배우의 연기다. 주연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단순한 흉내가 아닌 철저한 내면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딜런의 목소리와 창법을 연구하고,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습득하며, 말투와 몸짓까지 세세하게 분석했다. 심지어 제작진은 립싱크 방식을 고려했지만 그는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며 딜런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본질을 스크린 위에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로써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기존 팬층과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변곡점을 치밀하게 조명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변절이 아닌, 한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의 신호탄이 되어 스크린을 지배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본질적인 긴장감은 바로 이 순간에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아임 낫 데어' 스틸컷. 밥 딜런을 연기한 6명 중, 배우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이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에서부터다.
영화 '아임 낫 데어' 스틸컷. 밥 딜런을 연기한 6명 중, 배우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이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에서부터다.

영화 ‘아임 낫 데어’, 또 다른 초상화

이와 같은 딜런의 다층적인 자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담아낸 영화가 바로 ‘아임 낫 데어’(2008)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6명의 배우를 통해 밥 딜런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구현했다. 딜런의 삶이 단선적인 서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흐름임을 보여 준다. 시인, 무법자, 선지자, 로큰롤 순교자 등으로 변모하는 그의 모습은 ‘컴플리트 언노운’이 그려낸 딜런의 혁신과 고뇌와도 맞닿는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퀸은 뉴포트 페스티벌 당시의 딜런을 연상시키며, 그가 겪었던 저항과 충돌을 실감나게 드러낸다.

두 영화가 공통으로 담아내는 것은 결국 한 예술가가 세상과 불화하며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아임 낫 데어’가 상징과 다층적 내러티브를 통해 이를 해석한다면, ‘컴플리트 언노운’은 보다 직접적인 접근법으로 딜런의 여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두 작품이 강조하는 핵심은 동일하다. 딜런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으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오해받고, 저항을 받고, 때로는 외면당하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영화 스틸컷 중 밥 딜런의 단독 컷에서는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에서 볼 수 있는 압도적인 색상이 풍겨 나온다. 말레비치는 기존 미술의 문법을 완전히 거부하고 단 하나의 검은 사각형만을 남겼다. 이 작품은 단순미의 형태 속에서도 예술이 지닌 본질적 가치를 극대화한 실험이었다. 기존의 모든 재현 방식을 거부하고 순수한 감각과 경험만을 남기고자 했던 그의 태도는 밥 딜런이 음악적 질서를 뒤흔들며 자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과정과 비슷하다.

‘아임 낫 데어’가 밥 딜런의 정체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담아냈듯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예술의 기존 개념을 부수고 전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익숙한 질서와의 단절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예술적 도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도전은 변덕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본질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의 필연적인 숨결이었음을 증명한다.

밥 딜런, 시대를 향한 메시지

영화의 제목이자 그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단어는 ‘Complete Unknown’(완전한 미지수)이겠다. 물론 밥 딜런 개인에 한정되지 않는, 변화와 혁신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른다. 영화는 시대의 혼란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배경 속에서 딜런이 맞닥뜨렸던 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미소 냉전의 격화, 매카시즘의 광기, 베트남전과 민권 운동, 그리고 정치적 암살이 연달아 벌어졌던 시기. 딜런은 이러한 시대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거듭한 존재였다.

밥 딜런 등이 시도했던 예술적 변화는 늘 시대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지금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지금 혼란과 안정이라는 하나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변화란 기존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직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예술과 사회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깊은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밥 딜런이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 기타를 든 순간은 배신이 아니라 혁신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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