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진화를 역설하는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꼭 포크음악의 문외한이 아니더라도 많은 대중들조차 ‘일개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이 웬 말이냐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건 밥 딜런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그간 제대로 듣지 않았던 탓일 수 있다. 예컨대 그의 노래 ‘시대가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 changin)’가 대표적이다. 길지만 필요하다. 인용하겠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어디를 떠돌든 이리로 모여요, 사람들 / 당신 주변의 물이 불어난 걸 인정해요 / 곧 뼛속까지 젖게 될 걸 받아들여요 / 당신의 시간이 소중하다면 / 헤엄치기 시작하는 게 좋아요.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을 테니까요 / 왜냐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어요 /

펜으로 예언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이여 /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에요. / 너무 빨리 말하지 말아요. 바퀴가 아직 돌고 있어요 / 그 바퀴가 누구를 가리킬 지는 아무도 몰라요 / 지금의 패자가 나중에 승자가 될지 몰라요 / 왜냐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어요 /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이여 이 부름에 귀를 기울여요 / 문간에 서 있지 말고 복도를 막지 말아요 / 지금 다치는 사람은 멈춰 있는 사람일 거에요 / 밖에서는 전투가 맹렬히 벌어지고 있어요 / 곧 당신의 창문을 흔들고 벽을 울릴 거에요 / 왜냐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요 /

전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비판하려 하지 마세요 / 당신의 아들과 딸들은 당신의 명령을 벗어났어요 / 당신의 오래 된 길은 빠르게 낡아 가고 있어요 / 도와줄 수 없다면 길에서 물러나세요 / 왜냐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요 /

선이 그어졌고 저주가 내려졌어요 / 지금 느린 자가 나중에는 빠를 거에요 / 지금의 현재는 나중에 과거가 되니까요 / 질서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 지금의 첫 번째가 나중에는 마지막이 될 거에요 / 왜냐하면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요

혁명의 도화선 같은 시를 노래한 노벨문학상 가수의 20대 시절

이쯤 되면 단순한 노래 가사가 아니다. 이건 혁명의 도화선 같은 시구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고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정치인들, 부모들, 구세대들은 걸리적거리지 말고 길을 비키라는 저항의 포효이다. 대중들을 폭발시키는 선동의 문학이다.

1963년의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존 바에즈에 뒤이어 발 딜런은 이 노래로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뉴포트는 로드 아일랜드의 항구도시이다. 밥 딜런은 1965년에 같은 포크 페스티벌에서 또 한번 바람을 일으킨다. 보수적인 포크 음악계에 전자기타와 올갠을 들고 나와 새로운 포크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청중들은 경악했지만 이후 음악계는 그의 포크 록을 받아들이고 곧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때의 밥 딜런 대표곡이 바로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제임스 맨골드의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1960년대 초중반 밥 딜런의 20대 시절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일종의 전기영화이지만 특정 시기만을 픽(pick)해 밥 딜런 음악의 기원, 정신세계, 세계관을 찾아보려 시도한 작품이다. 특정 시기이긴 하지만 밥 딜런 전 인생을 조망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예술가를 규정하는 시기는 어쩌면 단 몇 년의 활동일 수 있다.

밥 딜런도 이 시기에 우디 거스리(스콧 맥네이리)를 만나고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의 도움을 받았으며 수지 로톨로(영화 속에서는 실비 루소, 엘르 패닝 역)를 만나 동거했고 마침내 존 바에즈(모니카 바바로)를 만나 격렬한 관계를 가졌다. 수지와는 좋게 헤어졌지만 바에즈와는 끝이 좋지 않았다.

영화는 밥 딜런이 활동 초기에 만난 이들과 함께 자신의 음악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냈는지를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밥 딜런의 정신세계를 똑같이 구현할 요량으로, 주연인 티모시 살라메를 완벽하게 밥 딜런으로 빙의시켰다는 것이다. 똑같은 말투, 똑같은 어조, 똑같은 창법, 똑같은 제스쳐를 구사하게 한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보는 내내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1960년대 밥 딜런이 추구했던 변화는 지금껏 정체 상태

영화는 의도적으로 밥 딜런이 살았던 시대의 혼돈과 혼란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를 보인다. 미소 냉전이 심각했고 매카시즘이 난동을 부렸으며 베트남전이 시작됐고 케네디와 말콤 X 등 민권 정치가, 사회운동가들이 살해 당했던 시대이다. 영화 속 밥 딜런이 사는 동네는 그리니치인데 당시 여기는 존 리드(미국의 노동운동가)의 사회주의 선전물이 넘쳐나던 곳이었다. 밥 딜런 역시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고 사회개혁 운동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1963년 워싱턴 D.C.에서 마틴 루터 킹이 주도한 반전평화시위에 참여해 25만 명 시위대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었지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의식적으로 그런 백 그라운드는 보여 주지 않으려 애쓴다. 그같은 백 브리핑이 영화를 자칫 사회선전물처럼 느껴지게 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할까 우려했을 것이다. 밥 딜런이 이때 부른 곡을 쓰기 위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책을 읽고 쿠르트 바일의 음악 ‘해적 제니’를 들었다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그의 시적 감수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가 집중했던 것은 밥 딜런이 어떻게 포크 음악계를 변화시켰고 그것을 통해 자신 또한 어떻게 변화의 길에 들어섰으며 결국 그 모든 의미의 총합을 통해 세상과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밥 딜런 전기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궁극적으로 변화에 대한 얘기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얘기를 하는 영화이다. 시대의 변화에 앞장섰던 밥 딜런의 1960년대 세상은 2020년대 중반인 지금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진화하지 못했음을 질타하는 내용이다.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밥 딜런의 음악정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 changin)’의 가사처럼 오래된 아버지 어머니 부모 세대가 복도를 가로막고 있는 탓이다.

늘 부르던 노래를 부를 것인가, 새 가사의 새 노래를 부를 것인가

미국의 포크 음악은, 특히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까지 전통성이 매우 강한 장르의 음악이었는데 일종의 노동가요로서의 정체성을 흔들면 안 된다는 기조가 강했다. 포크송(피트 시거 역을 맡은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속에서도 밴조 연주 전문가로 박수를 받는다)은 노동에 대한 진정성을 노래하면서도 뒤로 갈수록 하나의 스타일만을 강요함으로써 스스로 보수화 하고 말았다.

그 분위기를 일격에 깬 것이 밥 딜런이었다. 밥 딜런이 점차 매너리즘화 되어 가고 있던 미국의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과도 결별하게 된 것 역시 그들이 결코 새롭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기존 포크업계와 충돌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을 과연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스틸컷

1960년대 한 전설적인 포크 가수의 삶을 통해 제임스 맨골드는 지금 시대가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의 디렉션’을 강행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념의 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혹시 밥 딜런의 전자기타인가. 그게 아니면 늘 들어왔던 노래나 부르라는 청중들의 요구에 아랑곳없이 새로 작곡한 노래, 새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부르려 했던 밥 딜런의 새로운 것에 대한 고집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건 60년 전의 밥 딜런도 알았던 얘기이다. 다만 지금 시대의 사람만이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얘기이다. 그것이야 말로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이 60년대의 밥 딜런을 소환한 이유이다. 영화는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라고 뺨을 한 대 치는 느낌을 준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시대적 각성제와 같은 영화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포스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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