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소유재산’ 보다 ‘사회적 공유가치’ 지켜야
창원 율티마을의 자랑 한국 첫 어보 ‘우해어어보’
제주의 보물 마을공동목장, 곶자왈, 오름, 용천수
토건개발로 ‘공유지’ 해체…21C판 ‘인클로저 운동’
창원시 진전면 율티마을에 가면 실학자 김려 선생이 지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만날 수 있다. 1803년에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 어보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이나 앞선다.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어보는 방어·꽁치 같은 어류 53종(연체동물 포함)과 갑각류 8종, 패류 10여 종 등 수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각종 이명(異名), 형태, 습성, 맛 따위를 비롯해, 이용법, 어획법, 유통 같은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특히 풍류를 겸한 관찰이었던 만큼 말미에 ‘우산잡곡(牛山雜曲)’이라는 칠언절구의 자작시도 덧붙인 게 이채롭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어 오늘날 지역의 한학자나 국문학자들이 매력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담정(藫庭) 김려(1766~1821) 선생이다. 신유사옥에 휘말려 율티마을 안밤티에 유배됐다. 현재 율티공단 동국제강 공장 터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움막 ‘우소헌’에서 2년여 유배 생활을 하며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이제 마을에는 그 실학자의 후손도, 유배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오래전 그 자리에 율티공단이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럼에도 율티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는 자랑이 있다. 한국 최초의 어보가 율티마을에서 태어났고, 그 책의 저자가 그들의 고향에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두 번째 자산어보는 알지만, 최초인 우해이어보는 모르는 이유
율티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그 어보의 존재를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보다 늦게 지은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영화로도 제작되고, 저자의 흑산도 유배지는 문화유적지로까지 지정되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율티마을 사람들은 3년 전부터 이 특별한 마을의 역사적 자산이자 문화적 자원인 우해이어보를 기리는 축제를 열고 있다. 대대로 율티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율티마을 앞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고 있는 이상율 어촌계장은 이 물고기 도감이 마을과 지역의 자랑거리라며 자부심이 크다.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이 어보에 대한 율티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마침 한창 벌이고 있는 어촌마을 공동체사업을 계기로, 우해이어보를 주제로 한 교육, 문화, 관광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개발하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나아가 국내 최초의 어보 탄생지라는 가치와 위상에 걸맞게 관련 박물관 또는 기념관을 세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어보의 역사, 문화 가치와 의미를 함께 새겨 되살려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있다.
김려 선생의 후손인 연안 김씨 대종회 12만여 명의 회원들과, 율티마을 지척에서 있었던 천주교 박해를 추념하는 천주교 마산교구의 18만여 명의 신자들이 이에 함께하는 것도 고무적이다.
제주마을의 자산, 마을공동목장, 곶자왈, 오름, 용천수
예로부터 삼다도(三多島)라 불리는 제주도에는 돌, 바람, 여자 말고 공유재(Commons)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마을공동목장, 곶자왈, 오름, 용천수 등 육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주도 마을 고유의 자산이고 보물이다.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마을공동목장(조합)은 일제가 축우 수탈을 위해 만든 목축조직이다. 1933년에 읍면별로 목야지 정리계획을 수립해 실행했다. 주로 한라산 자락의 해발 200~600m 중산간 지대에 조성됐지만 2000년 이후 골프장, 리조트, 휴양단지 등으로 매각, 개발, 소멸되었다.
1943년 123곳에서 2022년 51곳으로 줄었고, 전체 면적도 같은 기간 2만 4432㏊에서 4분의 1 이하인 5062㏊로 감소했다. 그중 38개소는 마을회 산하 목장조합이 아직도 직영하고 있다. 조합의 역할은 목장 시설 유지 및 관리, 조사료 재배 등 노동력 제공을 통한 공동작업이다.
마을공동목장이 감소한 이유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제주연구원이 펴낸 '제주지역 마을공동목장 관리실태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4·3사건 이후인 1950년대에는 중산간 마을이 황폐화하고 목축방식도 바뀌면서 목장조합이 와해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골프장과 리조트, 테마공원 건설 등 중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진행된 대규모 관광개발로 팔려나갔다. 1995년부터 2018년까지 20여 년 동안 31곳의 목장조합이 해체됐다.
제주도 마을의 공유자산은 천혜의 자원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제주도민들은 마을공동목장을 제주도의 상징 공유자산으로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조합 중심의 목축 공동목장, 승마 체험, 경관 복원 등을 통한 관광체험농장 수익사업,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유치 등으로 전국 유일의 마을 공동목장을 보존하려는 지원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마을공동목장(조합)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축산제도이지만,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을 품은 목축전통이 오래 남아있는 상징적인 공유재라는 가치가 있다. 특히 조합설립 과정에서 주민들이 토지를 조합에 기부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마을공동목장 조합규약을 만드는 등 민주적 운영으로 명실공히 공동체 자산(community commons)으로 자리잡았다.
제주도는 마을공동숲도 특별하다. 마을숲이란 산림조합법에 의해 산림 소유자와 현지 주민이 협동하여 구역 내의 산림을 보호하고 개발하는 공간이다. 1951년부터 비영리사단법인인 산림계를 대개 리(里)·동(洞)을 구역으로 설정했다. 주로 하는 사업은 산림보호, 조립사업, 임업 관련 공동시설과 임산물 공동이용 등이다.
제주도의 마을공동숲은 곶자왈의 모습으로 흔히 나타난다. ‘곶자왈’이란 황무지(자갈)를 뜻하는 ‘자왈’과 나무숲을 의미하는 ‘곶’이 결합된 제주도 특유의 용어이다. 한라산 동부와 서부, 북부 사면지역에는 곶자왈이라는 지대가 널리 분포한다. 곶자왈은 점성(粘性)이 비교적 큰 아아(aa) 용암류가 다양한 크기의 암괴로 부서지면서 만든 미기복(微起伏)이 많은 암괴지대를 말한다.
용천수(湧泉水)도 제주도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공유자산이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大水層)을 따라 흐르다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뜻한다. 제주도의 여러 마을들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용천수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점 역할을 하며 솟아나는 물의 양과 용천수의 말은 그 마을의 인구수를 결정하는 근간이 되었다. 1999년 조사 때는 제주도의 용천수가 911개나 됐으나, 산간지역 개발, 도로 개설 등으로 인해 수량이 감소하면서 용천수 자체가 파괴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저수지, 어장, 창고, 주택까지 주민이 공동조성, 공동관리를
육지에서는 주로 마을의 수리계가 관리하는 마을공동 보·저수지가 마을을 이루는 중심적 역할이며, 농업의 규모를 결정한다. 개별 농가가 개별적으로 보나 저수지를 축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한 마을 또는 몇 개 마을의 농민집단이 수리계를 결성해 공동으로 축조하고 관리하려는 목적이다.
수리공동조직은 농업 용수 확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한 영속적인 상호결속 아래 운영되었다. 자연스레 농촌마을 주민들 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고, 몇 개의 마을이 하나의 수리공동조직을 형성하였을 경우, 농민들의 연대가 한 촌락을 넘어 지역에까지 확대되는 고리로 발전하기도 했다.
어촌에서는 어촌계가 관리하는 마을공동어장이 가장 중요한 마을의 공유자산이다. 어촌계는 어촌 마을 공동체의 성격과 어민의 경제적 조직의 성격을 모두 가진다.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지구별 수협의 마을별 하위 조직으로 어촌계가 조직되었다.
현실에서는 자연 마을의 구성원과 어촌계의 계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2개 이상의 자연 마을을 포괄하는 어촌계도 있다. 따라서 어촌계가 가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성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와서 양식어업이 전개되고 어촌계 계원의 관심이 어장의 분배, 이용방식, 생산, 수입의 분배 등에 점점 더 쏠리게 됨으로써 합리적·타산적 경제조직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마을공동창고, 마을공동주택도 의미있는 마을의 공유자산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있다. 마을공동창고는 주로 작목반 단위의 공동선과장, 저장고 등으로 활용된다. 요즘에는 농어촌지역개발사업을 통해 유휴시설화된 마을공동창고를 개조해 마을카페, 마을학교, 마을극장, 마을구판장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학생 감소로 폐교 위기에 내몰린 농어촌마을 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마을공동주택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유치하려고 지자체 공모지원 사업비, 마을주민 공동기금 등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다가구주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의해 소유되는 ‘공유지’는 봉건제의 영국에서 영주의 장원에 있는 '황무지', 즉 미개간지를 소작인들이 방목지나 땔감 채취지로 이용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 사회 구성원은 공유소유권자이자 공동활용자로서 권리와 지위를 누렸다.
이처럼 들이나 숲이 포함된 땅들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공유지였다. 근세 초기의 영국에서 영주나 대지주가 목양업이나 대규모 농업을 하기 위하여 미개간지나 공동 방목장과 같은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든 인클로저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15~16세기의 제1차 인클로저, 18~19세기의 제2차 인클로저로 인해 중소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나 공업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런데, 인클로저 운동이 19세기를 끝으로 종료되기는 한 것인지 자꾸 불안하고 의문이 든다.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의 관광지 개발, 농어촌 마을까지 침투한 이른바 토건개발사업은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안녕과 평화를 위해하는 21세기판 인클로저 운동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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