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동원으로 농촌 토목공사 획책한 것

일본의 '무라'(村)와 한국의 '마을'의 차이

일본열도는 해양성 기후여서 강수량이 대륙보다 많은 편이다. 높은 산이 많은데다 경사도 급한 편이어서 여름철에 수해를 입기 쉬운 구조다. 농사를 망치지 않으려면 물관리를 잘해야 하고 그러자면 제방 수로 저수지 등 토목공사를 잘해야 한다. 이런 공사는 개인단위로 하기 어렵다. 무라(村)단위에서 촌장(村長, 손쬬)지휘 아래 조직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랜 기간 동안 수직적 분업활동이 생존의 조건이었던 것. 일본사회의 기저에 해당한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이지메도 당하지 않고 조직적 분업도 원활해질 수 있다. 과거 일본 제조업 성장의 비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언급했던 '축소지향'의 원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마을은 이와 다르다. 홍수피해도 있지만 가뭄의 피해가 더 크다. 모내기철에 비가 잠깐 오거나 물을 잠깐 댈 수 있을 때 '빨리 빨리' 모를 심어야 한다. 이때 제대로 모를 심기만 하면 그해 농사의 팔할은 해낸 것이다. 동네 사람 모두 동시에 힘을 모으는 '두레'가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힘없고 모자란 사람이라도 농번기에는 귀한 손이 되기 마련이다. 반상의 차이도 있고, 천민계급도 있었지만 마을에는 함께 굶을지언정 외따로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생존의 조건이 키워 준 것이다.

 

새마을이라는 말은 '우리'의 강점인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을 당시 정권이 자신의 업적으로 치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다. 본질은 토건공사 위주의 수직적인 상명하달과 관계 있다. 만주에서 일본의 방식을 배운 일제 만주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독재정권이, '10월유신이 곧 새마을운동'이라고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적인 동원을 통해 농촌의 토목공사를 획책하는 그 과정은 일본의 무라(村)와 가깝다. '새마을정신'은 '우리'라는 공동체 정신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지구촌이 한국을 모델로 삼으려는 흐름이 도처에서 생기고 있는데, 새마을운동도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지구촌에서 본받을 만한 것인가에 의문이 있는 것이다. 우리끼리 문제점이 있을 때는 언젠가 바로잡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덮어두고 있는 편인데, 이게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면 얘기가 다르다. 집안 체면이 있지,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없는 음식을 대접할 수는 없다.

새마을운동은 정부의 지원을 기초로 하면서도 농민들의 노동력과 자금을 반강제로 동원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1971~78년 새마을운동에 투하된 총투자액(1971년 불변가격 기준)은 8400억 원이었는데, 그 중 정부투자는 전체의 27.5%인데 비해 주민부담은 71.4%나 차지하였다. 결국 새마을운동은 소득증대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겉치장에 주력함으로써 과중한 농민부담과 소비성 조장으로 농가수지가 악화되고 농가부채가 급증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황연수 동아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지적한다. "1978년 이후 급진적인 ‘개방농정’으로의 전환에 따른 가격파동과 자연재해 등으로 발생한 농민피해 때문에 정부와 농협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농민운동이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기 이전부터 새마을운동은 급속도로 농민적 지지기반을 잃고 추동력을 상실했다. 실제로 당시 조사에 의하면, 새마을운동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가 5.7%, ‘다소 성과가 있었다’가 21.7%, ‘전혀 성과가 없었다’가 46.7%, ‘모르겠다’가 25.9%였다는 것이다."

원래의 우리의 마을공동체 의식은 보편가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구성원 누구나 기본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것은 자치적 민주주의의 함양과도 이어진다. 하지만 일본의 무라와 같은 수직적 분업구조는 그렇지 못하다. 민주체제와는 거리가 있다. 지금의 일본과 같은 ‘가라(가짜)민주주의’가 판을 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자본세력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K마을'이라는 K자를 붙이기에는 함량미달이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촌에 전파된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류’라는 이름의 마을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마을'이란 용어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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