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발간 교사용 자료에 체험학습 장소로 소개
'군 부대 주변 인권' 주제로 체험활동지 등 제시해
전문가들 "민주주의와 인권 교육 활용가치 높아"
"직접 건물서 체험하는 것보다 좋은 학습은 없어"
교육 가치 높다는데 공론화도 없이 막무가내 철거
철거 중단시키고 공론조사 통해 시민이 결정해야
민주 박수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 임시지정하라"
지방자치단체의 일방적인 철거 시도로 논란을 빚고 있는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가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한 교사용 역사교육 자료에 '역사체험 학습장'으로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
경기 동두천시 옛 성병 관리소는 군사독재 시절 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가 폭력의 상징으로 역사 보존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시 당국이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시도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교육청에서도 학생들의 역사체험 장소로 지정한 건물에 대해 숙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철거를 시도한 시 당국의 비민주적인 행정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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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서도 역사체험장으로 소개
군 부대 주변 인권 실태 교육장소
11일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경기도교육청 '평화통일 체험학습 자료집'에 따르면 교육청은 지난 2019년 10월 교사용으로 만든 해당 자료집에서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평화통일 현장체험학습 답사 지역으로 제시했다.
204쪽 분량의 자료집은 일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역사와 비무장지대(DMZ)의 특징들, 접경지역 주민의 삶 등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학습 내용과 학습 과제들을 세부적으로 담고 있다. 해당 자료집은 현재도 일부 교사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자료집은 마지막 5장 '평화통일 현장체험학습 답사지역 소개'에서 전쟁 이후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경기 북부의 민간인 피해가 있던 지역들을 언급하며 △스토리사격장 △로드리게스 훈련장 △미선·효선추모비 등과 함께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체험학습장으로 소개했다.
자료집은 '군부대 주변의 인권'이라는 단원에서 2002년 미선·효순이 사건과 함께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며 "미군을 상대로 하는 여성들의 경우 매우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미군들에 의해 맞아죽는 경우도 있었고, 술집 사장의 강압에 의해 마약과 술로 인해 죽기도 했다. 이런 사고가 수많이 일어났지만 당시 언론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또 성병 관리소 건물 사진과 함께 "1960년대 대한민국 경제규모가 1억 불 정도였는데 미군을 상대로 한 여성들의 외화수입이 970만 불로 대한민국 전체 경제의 약 10%를 차지하는 높은 수입원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 여성들에게 외화벌이 일꾼이라며 몰래 정부가 미군 상대 성매매를 강요하도록 했던 어두운 시절이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정부가) 보건검사라는 명분으로 이런 여성분들을 보건소에서 검진하고 몸에 문제가 생기면 일명 '몽키 하우스'란 집단 수용소에 가두고 폭력과 폭행, 욕설 등과 강제 노동을 시켰다고 한다. 대표적인 지역인 경기도 동두천과 경기도 송탄, 전라북도 군산 등 미군부대 주변에 설치됐다"며,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등에서 벌어진 여성 인권 유린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다.
아울러 해당 단원 뒤에 제시한 예시용 '체험활동지'에는 "미군 관련 시설에서 일어났던 환경오염 사건 및 인권침해 사건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자"라거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전쟁 이후 여성과 어린이들의 피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해보자" 등 군부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에 대해 학생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료집 집필진은 "해당 자료집은 현장에서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현직 교사와 시민들이 모여서 1년 가까이 집필했다. 경기 북부뿐 아니라 남부에 있는 교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는 국가가 여성 인권을 유린한 상징 장소로 학생들에게 알리고 교육할 가치가 있어서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전문가 "민주주의·인권 교육 활용가치 높아"
"직접 건물서 체험하는 것보다 큰 교육 없어"
전문가들도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부지와 건물을 보존하고 방안이 역사 교육과 건축 측면에서 모두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교 교수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역사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우리가 피해자가 된 역사도 있고, 가해자가 된 역사도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거나, 반대로 위치가 바뀌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역사도 있다"며 "학생들은 그런 역사들을 다양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죄와 반성, 배상, 진상규명, 기림 등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역사를 통해 반성, 성찰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며 "더불어 이러한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역사들도 직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문제는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전쟁, 군국주의, 독제체제, 가부장제 문화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서 어떤 특정한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놓고, 이를 정당화했던 역사"라며 "단순히 역사뿐 아니라 다면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미군 기지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던 데에서 미군이 한국 여성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볼 수 있다"며 "특히 권력관계에 의해 국가 폭력이 행사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 교육의 장소로도 필요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정이삭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공간 디자인)는 통화에서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의 교육 공간으로서 가치와 관련, "역사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실체를 직접 접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간접 체험하는 것보다 몸이 체감하는 것이 교육 효과가 크다"며 "그런 차원에서 성병 관리소를 보존하는 것은 교육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성인들의 인권 및 역사 교육 측면에서도 공간의 가치가 있다고 역설했다. "학기 중에 해당 건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리모델링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 학생들이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질뿐 아니라 한국전쟁과 미군의 관계 등을 공부하며 역사 의식을 가지게 됐다"며 "오히려 성인들이 공간에서 충분한 의식을 갖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건물의 안정성과 관련해서도 "일부는 공간 자체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관심이 너무 없어서 방치되어서 더러운 것이지, 더러운 것을 위험하다고 할 수 없다"며 "평가를 직접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건물이 오래 방치되면 콘크리트의 구조체 강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몇천 년 된 유적도 구조 보강을 하는 만큼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보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건축물 자체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건축적으로 건물의 정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파사드(Facad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는 정면이 일반적인 관공서의 생김새와 매우 다르다. 시대적인 특징과 독특한 건물의 외향을 갖고 있다"며 "건축적으로도 시대적인 교훈 차원에서도 다방면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숙의 공론화 과정도 없는 막무가내 철거
"국가유산청서 문화유산 임시 지정해야"
경기도교육청에서도 교사들의 교육용 자료집에서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인권 교육을 위한 체험 학습장으로 소개하고 있고, 관련 전문가들도 건물과 부지의 역사 가치와 건축 가치를 언급하는 만큼 건물 활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동두천시 당국이 이러한 고려나 공론 절차 없이 일방적인 철거를 추진하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동안 시장과 제대로된 면담도 가지지 못했다며, 먼저 대화를 하자는 입장이지만 시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일단 철거를 하고 관광객을 위한 임시주차장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6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전날인 10일 동두천시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동두천시에서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여 계획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며 "가을 한 철의 소요산 단풍축제 주차장으로 개발하겠다는 일방의 논리 앞에, 시민이 참여할 기회는 애초부터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내용도 시민과 동두천시의 소통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해 들은 내용일 뿐, 동두천 시장과 지난해 10월 한 차례 처음으로 30분 동안 대화한 뒤로는 지금까지 말 한번 나눠볼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면서 "이러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철거하겠다는 동두천시의 행위에 몸으로 맞설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공대위는 지난 8일 오전에도 동두천시 관계자들에게 △박형덕 동두천시장과 공개 면담 △공론조사 실시 등을 요구하고, 현재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된 긴급 진정과 국회 국민동의청원 답변, 경기도청원 답변 등이 올 때까지 철거를 유예하자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이날 오전까지 시에서는 별다른 응답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공대위는 또다시 시의 강제 철거 시도가 가능한 만큼 오는 14일과 15일을 '철거저지 비상행동' 기간으로 정하고 총력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성병 관리소 앞에는 철거를 막겠다고 나선 시민 '지킴이'들이 밤을 새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8일엔 굴삭기를 동원한 철거 시도를 막는 과정에서 한 시민이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다만 각계에서 철거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시 당국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공대위에 따르면 시는 당초 지난 10일과 이날 오전 철거 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시민사회와 종교계, 야당 등에서 철거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과장급 이상 회의를 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철거업체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밀어내고 철거하라는 시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차원에서도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전날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철거를 중단시키고 시민들이 숙의 공론화 절차를 거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야당의 요구가 있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관련한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철거를 중단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당국에 촉구했다.
나아가 철거가 임박한 만큼 근현대문화유산으로 임시 지정해 철거를 막고, 공론조사 등을 통해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근현대문화유산법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은 근현대문화유산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긴급한 예방 조치가 필요하거나 위원회 심의를 거칠 여유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임시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수 있다. 임시등록이 되면 6개월간 효력을 갖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동두천시의 일방적인 철거 시도에 대해 "시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며 개발 논리를 앞세우다보니 주민들만 찬반으로 갈라져 갈등하게 만들었다"며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는 군사주의가 빚어낸 여성 인권 침해의 상징적 공간으로, 역사의 피해자가 요구하는 피해 현장 보전은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굴삭기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철거를 하는 것이 아닌, 시민들과 소통을 통해 보존해야 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해야 한다"며 "철거를 하면 근현대 유산을 되돌릴 수 없으니, 국가유산청장이 즉시 직권으로 임시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동두천시는 적극적으로 시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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