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①]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 추진

수차례 면담 요청했지만 냉담…일방적 용역 투입

"불안한 나날, 자기 발로 나갈 수 있게만 해달라"

노인복지시설에서 부당해고, 공장 노동 중 부상

각자 절박했던 사연…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려

수많은 단어가 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성을 거래하는 범죄자였다가, 업주에게 이용당하는 피해자였다가, 자립해야 할 불완전한 여성이었다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존재였다. 경찰은 그들을 '그 사람들'이라 부르곤 했다. 파주시와 몇몇 여성단체는 '성매매피해여성들'이라 불렀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폐쇄 반대를 외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성노동자들'이라고, 용주골에서 일하는 이들은 '아가씨들'이라 불렀다. 헷갈리고, 고민스러웠다. 그들에게 어떻게 지칭하기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이 일도 우리에게는 직업이니 성노동자로 불리고 싶다"는 답변이 왔다. '성노동자'라는 단어는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해 성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운동의 의미로, 또는 성산업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착취의 문제를 가리려는 악의적 의도로. 여러 해석을 제쳐두고, 이 기사는 당사자들 의사를 존중해 '성노동자'를 사용한다. [박나혜‧김세원]

 

​6월 8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에 참여한 성노동자의 뒷모습. ©곽예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월 8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에 참여한 성노동자의 뒷모습. ©곽예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개월 전 여름은 추웠다. 여름뿐인가, 용주골 성노동자 H(40) 씨에게 올해는 하루하루가 불안에 떠는 나날이었다. 지난 2월 27일, 파주시는 <김경일 표 여성친화도시, 사회 안전망으로 거듭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여성친화도시'를 위해 파주시가 내세운 카드는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폐쇄'였다.

그 후 H의 일터에 공무원, 용역, 경찰, 시민단체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파주시는 집결지 폐쇄를 위해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 걷기 행사를 기획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보라색 풍선을 든 '여행길' 참가자들이 집결지를 활보했다. 여기서 보라색은 여성인권을 상징하는 색이다.

성노동자들은 지난 6월 8일과 13일, '강제 폐쇄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보라색 리본을 팔목에 묶고 피켓을 들었다. 그 후 시장에게 여러 번 면담을 요청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지난 11월 22일에는 용역이 들어왔다. 불안했다. 그는 자신의 불안감을 "숨통이 조여온다"고 표현했다. 숨통이 조여오는 고통은 지금도 그대로다.

 

6월 8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모습. 이 날 집회에는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각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 집결지 내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상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월 8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강제 폐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모습. 이 날 집회에는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각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 집결지 내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상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결지 내 유리벽에 '여행길' 행사를 멈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붙어있다. ©나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결지 내 유리벽에 '여행길' 행사를 멈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붙어있다. ©나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 이야기 : 숨통을 너무 조이지 마세요

"숨통을 너무 조이잖아요. 사람 숨통을 너무 조이면 어디로 삐져나갈지 몰라. 각자의 상황이 있는데, 너무 몰아붙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아가씨들 상처받잖아요. 자기 발로 나갈 수 있게끔만.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이 생활을 관두게끔. 불안한 마음에서 일하는 것보다 1년이든 3개월이든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어떤 일이든."

과거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는 국가사업 현장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성산업을 사실상 조장했다. 수많은 여성이 각자의 이유로 용주골에 모였고, 상당수가 정착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용주골에는 80명의 성노동자가 삶을 이어가고 있다.

파주시가 폐쇄 분위기를 만들수록 H의 불안감은 커졌다. H에게 폐쇄는, 약 7년간 지켜 온 삶이 붕괴될 것 같은 위협이었다.

"파주시에서 돈을 준다, 뭐 한다, 이런 건 필요 없고, 우리 일할 수 있게만.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원할 때 이 생활을 관두게끔, 그걸 원해요. 여기는 매해 버는 수입이 달라요. 오늘은 많이 벌 수도 있고, 내일은 또 적게 벌 수도 있어요. 불안해요. 불안한데, 저는 여기 폐쇄돼도 있을 거예요. 왜냐면 우선 파주시가 우리랑 이야기다운 이야기한 게 하나도 없어요. 버틸 거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일대를 낮에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일대를 낮에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 : 신종플루, 해고, 돈

"일주일이 지나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리고 나서 아침에 전화했어요. 오늘 출근 못 한다고. 그때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전화 끄고 집에서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이제 어쩌지,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7년 전, 용주골에서 일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사장에게 "오늘은 쉬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핸드폰을 껐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일을 하기로 했다.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일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교통비가 없어 허덕이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이 전보다 많았다. 원하는 것도 살 수 있었다.

용주골에 오기 전 H는 노인복지시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평소처럼 출근 카드를 찍었는데 퇴사한 사람이라고 떴다.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였다. 그가 담당하던 노인 한 명이 신종플루에 걸렸다. 보호자로서 함께 병원에 갔다. 그는 병원의 지시대로 1주일간 격리했다. 그 사이 회사는 그를 해고했다. 고용부에 이 사실을 알리려 하자, 회사가 그를 불렀다. 회사가 꺼낸 첫마디는 '인원 감축'이었다.

보름이 넘도록 회사와 대립하며 갈등했지만 출근할 수 없었다. 감염병 발생 후 부당해고를 당한 사건은 H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낮은 여성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감염병 상황에 빠르게 해고당한다. 김소진의 논문 <재난 불평등과 젠더, 그리고 팬데믹 이후의 과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정규직 요양보호사, 간병인, 가정관리사들은 방역 장비 없이 환자를 돌봄으로써 감염 위험에 노출되거나 쉽게 해고당했다.

H는 부당해고를 당한 후, 일이 구해지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매일 친구에게 일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친구가 자신이 일하는 곳을 소개해 줬는데, 그곳이 용주골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이 일이 괜찮아요. 내가 지금까지 벌어오고 살아왔던 거, 나는 후회 안 해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한텐 되게 고마운 곳이거든요. 제가 있었던 곳인데. 지금 여기를 떠나서 다시 시작하려니 나이도 있잖아요. 많이 불안하고 힘들긴 한데 어쩌겠어요, 지켜야죠. 벌써 나이가 4자인데 언제 또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시작해요. 나는 한 번도 쉬었던 적 없어요. 일이 가장 첫 번째예요. 지금 이 일이 나한테 우선인 거예요. 그래서 여기가 없어지면 안 돼. 끝까지 지킬 거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 생긴 단속초소 ©나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 생긴 단속초소 ©나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 이야기 : 더 위험한 곳으로

파주시는 폐쇄 발표 후 성매매 집결지 감시와 단속에 속도를 높이며 바짝 몰아붙였다. 파주경찰서는 집결지에 단속초소를 설치했다. 해가 지면 공무원과 시민단체가 '성구매자 차단 야간 캠페인'을 하겠다며 집결지 내부에 들이닥쳤다. 입구마다 경광등과 LED 바닥광고가 설치됐다. 공무원과 용역이 불시에 들어와 집결지 내부에 CCTV를 설치했다.

"용역 들어와서 돌고, 초소 설치하고. 여기 오지 말라고. 손님이 아무래도 떨어졌는데, 저런 거 보고도 들어오는 손님은 아무래도 성격이 장난 아닌 거잖아요. 잃을 게 없다, 이런 사람들이니까. 그전에는 존댓말 하는 손님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일단 반말이에요. '손님 나밖에 없지? 좀 깎아' 이러기도 하고. 예전보다 하대하는 손님들이 생겼죠."

파주시의 의도대로 성 구매자 수는 줄었지만, J(20) 씨는 이전보다 위험한 유형의 고객을 마주하고 있다. 수입은 줄고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그럼에도 "용주골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라고 말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옆집과 앞집에는 성노동자들이, 거리에는 업주가 상주해 있다. 성노동자가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고객을 받는 것 또한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한다. 폭력적인 고객으로부터 몸을 지킬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쇄되면 다른 데 가야죠. 티켓 다방 같은 곳에 갈 것 같아요. 손님이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손님이 있는 데로 가야 해. 손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뭐가 있을지도 몰라요. 약 타 놓고 음료수 먹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예전에 오피(오피스텔 성매매업소) 실장을 일 년인가 했거든요? 몇 개월에 한 번씩 와요. 칼 들고 와서 돈 내놓으라고 하는 애들이. 그런 데는 지켜주는 사람도 없고, 신고하면 나도 잡혀가니까 신고도 못 해. 그런 애들은 시스템을 아는 거예요. 실장이나 친구한테 전화한다 해도 오기 전에 이미 상황이 끝나버리지."

용주골에 오기 전 그는 공장에서 일했다. 무거운 것을 반복적으로 드는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그래도 계속 일을 한 탓에 현재는 수술받아도 나을 수 없는 상태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으로 우울증이 심하다. 그러나 사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그에게 "부자병이라고, 바쁘게 살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장 다닐 때 다쳐서 그래. 다쳤는데 계속 무거운 거 들고 그러니까 뼈가 닳은 거예요. 세 시간 이상 못 앉아 있어. 허리가 아파서. 그런데 여기는 아무래도 유도리(융통성)가 있으니까 그게 좋아서 있는 거예요. 아프면 조금 늦게 나오고, 많이 아프면 다음에 오고. 일반 직장에서 그러면 잘리잖아요."

 

집결지 내 유리벽에 붙어있는 피켓 ©곽예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결지 내 유리벽에 붙어있는 피켓 ©곽예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 : 다른 직업 갖거나 공부할 수 있게 조건 없이 지원을

"1년 동안 폐쇄, 폐쇄, 폐쇄 하는데 뭐 진행된 게 없어요. 면담도. 면담을 받아줬으면 교류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의견 조율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너네 나가라, 지원 조례 있잖아? 항상 그런 식이야."

파주시가 내놓은 '파주시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에는 지원을 받던 중 '성매매를 하는 등 지원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시' 지원금 전부나 일부를 반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J는 "이곳을 떠나길 원한다면 파주시는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매매를 안 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하는 건, 지원이 아니라 계약이지. 만약 여기서 우리가 진짜 떠나길 바라면 조건 없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거나, 병원비, 아니면 야간 대학 같은 거 있잖아요. 대부분 사회에서는 대졸자를 뽑으니까. 여기 언니들이 거의 고등학교까지 나오긴 했는데, 가끔 중학교를 못 간 언니들이 있어요. 그럼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게.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기회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한 언니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➁]로 이어집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 청년기획 프로젝트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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