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반대 시민들, 경찰서에 수사 요청서 제출
동두천시 공무원 동원해 '철거 찬성' 집회 준비
SNS 쪽지서 "동두천시 철거 찬성 집회 계획 중"
"동별 철거 집회 참가자 명단 긴급 파악해달라"
전공노 "여론조작 위한 공권력 남용 중단해야"
공대위 "민-민 갈등 조장하는 가장 치졸한 짓"
미군 위안부 피해자(기지촌 여성)에 대한 국가 폭력의 산 증거인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두고 관광 목적의 임시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철거하려는 동두천 시 당국과 역사를 보존해 여성인권평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자는 시민단체가 갈등을 빚는 가운데, 동두천시가 '철거 찬성' 단체를 동원해 '관제 데모'를 사주한 정황이 드러나 시민단체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6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동두천 옛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21일 동두천경찰서에 동두천시 공무원의 중립유지 의무 위반,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를 요구하는 '수사요청서'를 접수했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지난 14일 공대위는 시가 공청회 개최 등 숙의 공론화 절차도 없이 일요일 새벽 4시에 대형 굴삭기로 강제 철거를 시도한 데 대해 항의하는 한편, 박형덕 동두천시장(국민의힘 소속)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관련기사) 이에 공대위와 시는 일주일 뒤인 21일 동두천시장과의 간담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일각에서는 시장이 대화에 나서면서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시 공무원들이 '철거 찬성'을 주장하는 단체들을 모아 대규모 관제 데모를 준비하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대화는 중단됐다. 공대위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박 시장과 대화하는 것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고 판단, 간담회 연기를 결정 발표하고 시에 '철거 찬성 집회'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보냈다. 동두천경찰서에도 수사요청서를 접수했다.
"시에서 집회 계획…동사무소에 명단 알려야"
그동안 철거 주장을 굽히지 않은 동두천시가 '관변 단체' 성격의 사회단체들을 통해 관제 데모를 기획한 의도는 뚜렷하다. 한쪽에서는 대화를 하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철거를 위한 물리적 압박을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대위가 확보한 철거 찬성 단체 회원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에는 그러한 정황이 고스란히 나온다. 관제 데모에 참석한 철거 찬성 단체들이 소속 회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는 "철거를 반대하는 민간단체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시에서는 철거 찬성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며 "참여자 명단을 월요일까지 행정복지센터에 알려드려야 하니 참석하실 분은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관제 데모를 위해 시가 동별 행정복지센터 공무원까지 동원해 참여자 명단까지 세세하게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또 철거 찬성 단체 쪽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성병관리소 철거시위 대항 방문자 명단파악'이라는 SNS 쪽지에서는 "(행정복지센터) 동장님 차담회 회의내용 일부를 전달합니다"라며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는 단체 시위에 대항하기 위해 22일 오후 2시 소요산에 방문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울러 쪽지에는 "동별로 명단제출이 오늘까지 긴급하게 필요하니 담당 단체별 공지 및 참석 명단 파악하여 17시까지 회신 부탁드린다" "최대한 많은 참석이 필요하오니 독려 부탁드린다"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문자 뿐만 아니다. 그에 앞서 지난 17일엔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주무국장인 이덕만 경제문화국장이 본인 명의로 '동두천시민들은 성병관리소를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대량 배포했고, <뉴스1> <데일리안> <국제뉴스> <대한경제> <매일일보> <시민일보> <중앙신문> 등 다수의 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시의 갈등을 중재하고 시민 의견을 객관적으로 반영해야 할 공무원이 한쪽의 입장에서 편파적이고 왜곡된 내용을 유포하고 언론이 확성기 역할을 한 셈이다.
이후 '성병관리소 철거 추진 시민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예고한대로 지난 21일 동두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체 발족을 알린 뒤, 단 하루 만인 22일 동두천 소요산 주차장에서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대책위와 동두천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등 철거 찬성 단체 회원 150여 명이 모였다. 관제 데모에 나온 일부 시민은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욕설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의 개입으로 양쪽의 충돌은 없었지만, 주민 간의 갈등을 해결할 공무원들은 또다시 뒤로 숨었다.
이에 공무원 단체에서도 강한 논조의 비판 성명을 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22일 성명을 내고 관제 데모 시도에 대해 비판하며 "시 공보실이 찬성 측 집회 홍보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노는 그러면서 "공무원들에게 지시한 사람은 누구인가? 동두천 시장인가?"라면서 "동두천 시장과 시 당국은 여론 조작을 위한 공권력 남용을 즉각 중단하고 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론장 마련에 즉각 나서라"고 했다.
철거 반대를 주장해 온 시민사회단체들도 시의 관제데모 추진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시가 주민들끼리 반목하게 만들고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이다.
김대용 공대위 공동대표는 통화에서 "시는 1000명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관제 데모 당일) 날씨가 안 좋아서 150여 명 정도만 모인 것 같다. 그렇게 모여서 반대하는 시민을 고립시키고 (철거) 장비를 집어넣을 생각도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과의 간담회도 반대 쪽과 만났다는 명분만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시의 철거 의지는 관제 데모를 통해서 볼 수 있다"며 "민-민 갈등만 조장하는 가장 치졸한 짓을 시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관제 데모 의혹에 대해 동두천시에 전화로 거듭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주지 않았다.
동두천시가 철거를 밀어붙이는 옛 성병 관리소는 군사독재 시절인 1973년 지어진 이른바 '낙검자(성병 검사 탈락자) 수용소'다. 박정희 정권은 전국의 미군 부대 인근에 성병 관리소를 짓고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달러 벌이를 하는 기지촌 여성이 '애국자'라며 '술 사주세요' 따위의 영어 교육까지 시켰다. 다만 국가가 성병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인권 유린도 만연했다. 성병에 걸리지 않은 여성을 가두고, 강제로 페니실린을 투약해 죽이기도 했다. 도망치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기도 했다.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는 미군 부대 인근의 국가 폭력과 여성 인권 침해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2022년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대법원으로부터 국가 폭력을 인정받을 때에도 당시 피해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러나 지난해 시가 이곳을 임시 주차장으로 만들기 위해 철거하겠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시민사회단체는 여성 평화인권 박물관 등으로 활용해 역사 유산을 보존하자는 입장이지만, 시와 철거 찬성 단체는 무조건 철거만을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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