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르면 8일 가림막 설치…이번 주 부술 듯
시민들 "온몸으로 막겠다" 밤샘 농성 예정
피해자 "이 건물 철거하면 인권 유린 증거 사라져"
역사 보존 가치 높은데 주차장 만든다며 막무가내
"대화하자고 요구했지만 시장 대화도 하지 않아"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의 '슬픈 역사'인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두고 관광 개발을 위해 철거해야 한다는 동두천시와 역사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시가 이르면 오는 8일 철거 절차에 돌입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시민들은 성병 관리소 앞에서 밤샘 텐트·노숙 농성을 하며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와 참여연대, 정의기억연대 등 6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7일 오전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소형주차장(성병 관리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두천시가 성병 관리소 철거집행을 위해 결국 지난 9월 21일에 철거공사 입찰공고를 냈고, 10월 2일에 모 업체가 공사 업체로 낙찰되어 성병관리소의 철거가 임박한 상황"이라며 "오는 8일에서 10일 사이에 철거집행 전 가림막 설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공사 용역업체가 철거를 시작한다면 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라면서 "시민이 다치거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박형덕 동두천시장(국민의힘)은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댄 채 갈등 해결을 위한 현명하고 타당한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박 시장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여성 인권 유린의 현장 '몽키 하우스'
소요산 입구에 있는 옛 성병 관리소는 이른바 '낙검자 수용소'로 불리던 곳으로, 국가가 나서서 여성 인권을 유린한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장소다.
6·25 전쟁 이후인 1957년 미군의 외출·외박이 허용되면서 미군 부대 인근을 중심으로 '생존형 성매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인신매매에 끌려오거나 극심한 가난에 성매매의 수렁에 빠져든 여성들이 점점 늘게 됐다. 1960~70년대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은 2000~3000명으로 추정되며, 비공식적으로는 7000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가는 이들을 '요보호여성'으로 규정짓고 관리에 들어갔다. 이른바 '기지촌 정화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박정희 정권은 성병 검진을 정부 주도로 하면서 '성병 관리소'라는 이름의 '낙검자 수용소'를 전국의 미군 부대 인근에 세웠다. 정부가 개입하면서부터 사실상 성매매가 공창 성격을 띠고 산업화 됐으며, 심지어는 공무원들은 이들을 국가경제를 이끄는 애국자라 추켜세우고 미군의 달러를 벌어오도록 독려했다. 읍사무소에 모아 놓고 보건, 영어 교육 등을 했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두천 성병 관리소 건물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73년 지어졌다. 6766제곱미터(㎡) 부지에 지어진 2층 건물에는 방 7개에 14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내부는 여성의 신체를 검사하는 장소와 식당, 화장실 등으로 구분돼 있다. 여성들이 지낸 방은 과거 군대 내무반과 비슷한 구조로, 지금도 당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관물함이 남아있으며,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 건물도 그대로 남아있다. 열악한 수용시설에 갇힌 여성이 동물원 원숭이 같다고 해서 '몽키 하우스'라 불렸으며, 인권 유린이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관변단체들은 성병 검사에 나오지 않은 여성들을 잡으러 '토벌'을 나갔고, 미군 간부나 병사가 성병에 걸리면 미군 헌병은 여성의 얼굴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 여성을 잡아갔다. 이렇게 잡혀온 여성들은 수용소의 비좁은 공간에 갇혀 강제로 투약한 페니실린 부작용으로 죽거나, 도망치려고 2층 또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기도 했다. 이들 중 무연고 망자가 된 이들은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증언도 있으나, 관리가 전혀되지 않아 봉분조차 찾기 어렵다.
"우리는 페니실린을 맞았어요. 그거 맞고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요. 맞으면 걸음을 못 걸어요. 엉덩이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그걸 이틀에 한번 맞아요. 괴로운 언니들은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반병신 되고 그랬어요. 저는 하얀 집에 (1982년께) 2주 동안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김정자 씨 증언, 2013년 6월 30일 김정자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2014년 7월 4일 허재현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한겨레21』)
"(공무원들이)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미군한테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바이 미 드링크(Buy me drink. 술 사주세요) 하세요. 그래야 동두천에 미군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나라도 부자로 한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수는 저희더러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야 되나 보다 하는 거예요."(김정자 씨의 증언, 위와 같은 책, 같은 기사)
이들이 국가 피해자라는 사실이 인정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지난 2014년 6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미군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고, 그 뒤 8년 만인 2022년 9월 대법원은 성병 관리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위안부 여성들이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판결을 내렸다. 성병 관리소는 국가가 여성 인권을 유린했다는 중요한 증거였다. 이에 피해자들도 옛 성병 관리소를 역사 기록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몽키 하우스'에 끌려갔던 미군 위안부 피해자 A 씨는 지난 1일 소요산 주차장에서 열린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에 반대하는 동두천평화 문화제'에서 당시 피해를 증언하며, 피해자들은 온갖 질병을 얻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울먹였다. A씨는 "성병 치료소는 우리를 억지로 가둬놓고 강제 주사를 놨던 증거"라며 "이 건물을 철거하면 그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건물을 바라볼 때 가슴이 아프지만 후손들에게 남겨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숙의 과정도 없는 동두천시의 철거 계획
동두천을 비롯한 경기도 미군 주둔지역에 존재하던 성병관리소 6곳은 1990년대 이후 운영이 중단됐고, 동두천 성병 관리소도 1996년 폐쇄된 뒤 28년째 방치됐다. 시민들이 잠시 잊고 지냈던 성병 관리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건 지난 2023년 2월 29일 동두천시가 호텔과 테마형 상가 등을 짓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개발사업' 추진하겠다며 S학원 재단의 사유지였던 옛 성병관리소 건물과 부지를 29억 원에 매입한 뒤부터였다.
시는 관내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철거 60.4% 보존 39.6%였다는 점을 내세우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발을 해야한다고 밀어붙였다. 주변 상인들도 사업에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건물과 부지가 역사 보존 가치가 높고 철거 반대 여론이 있는 만큼 숙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런 절차는 없었다. 시가 내세우는 여론조사 역시 신뢰도가 떨어졌다. 과거 혐오시설로 분류된 '성병 관리소 철거'에 대한 단순 설문조사인데다, 애초 철거에 무게를 두고 조사했기 때문이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김대용 공동대표는 지난 6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만나 "보존해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게 합당하다"며 "우리도 시민의 일부로서 우리의 주장이 다 관철돼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록관 설립 등을 포함해 시민들이 참여할 폭넓은 대화의 장을 만들어서 대화하자는 게 그동안의 요구였다. 그러나 박형덕 동두천시장에게 계속 요청했는데도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 철거 시점도 의문이다. 국회청원동의 게시판에 올라온 '미군 위안부 기지촌에 대한 국가의 사과 촉구와 경기 동두천시 기지촌 성병관리소 철거반대에 관한 청원'은 지난달 2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 달간 5만 2000여 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 상임위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로 넘어갔다. 이달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또 경기도청에는 성병 관리소를 '도문화유산'으로 '임시 지정'하는 청원도 올라가 있다. 국회나 도청에 청원이 올라왔음에도 철거가 강제로 이뤄지는 셈이다.
아울러 공대위는 "시가 성병 관리소을 철거한 뒤 10월 말 소요산 단풍 축제에서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임시주차장 계획은 내년도 사업"이라며 이에 대해 부정했지만, 철거가 이뤄지고 폐기물 처리 등이 완료되면 비포장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시적인 주차장 활용을 위해 숙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역사 현장을 철거하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다.
시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번 주 철거 가림막 설치가 시작될 예정"이라며 "관광지 확대개발사업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시가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공대위 "기필코 철거 집행 막아낼 것"
공대위는 기자회견에서 "철거를 시작한다면 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라면서, 국회와 도청 등에 적극 조사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공대위는 국회 여가위를 향해 "청원접수가 이뤄졌어도 국회가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상으로 동두천시의 철거 강행에 국회의 대응은 속수무책"이라며 "여가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하루빨리 성병관리소를 현장답사하고, 상임위에서 신속하게 안건 심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대해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성병관리소 건물의 철거가 중단될 수 있도록 적극 행정을 펼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41일째 천막 농성 중인 공대위는 오는 20일까지 2주간 집중행동 기간으로 정하고 평일 저녁마다 촛불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성병 관리소 철거를 총력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이날도 오후 6시 30분부터 소요산 소형주차장(옛 성병 관리소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열고, 이르면 8일 새벽 예상되는 철거 가림막 설치에 맞서기 위해 밤샘 텐트·노숙 농성을 할 계획이다.
공대위는 "이 건물은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성병 관리소' 건물"이라며 "성병 관리소는 미군 위안부(기지촌 여성)들의 몸을 관리하던 시설이며 전쟁, 분단, 기지촌의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적 공간"이라고 했다. "이 건물의 유일성과 역사성, 미래가치는 소중하다"면서 "동두천시의 철거집행을 기필코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공대위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여성 인권과 역사 인식을 무시하고 오직 개발과 업적을 우선하는 동두천시와 시의회의 전횡을 끝낼 때"라며 "평화와 인권을 향한 옛 성병 관리소의 활용에 발걸음을 내딛자"고 외쳤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