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 ④]

다양한 가사노동자와 상인들 1년간 면담 요청

"집회 매일 나가는데 우린 안중에 없어…언론도"

"목소리 내면 업주로 오해 받고 '난동' 기사 나와"

주홍빛연대 차차 "폐쇄는 대안 못 돼…존중 필요"

빈곤 직결된 문제…복지체제와 노동권 개선돼야

정편의점 내부 모습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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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째 정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꽃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고. 나이는 67세.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랐다고."

과거 용주골은 대추나무가 많다 하여 대추골이라 불렸다. 정편의점을 운영하는 K(67)씨는 대추골에서 나고 자랐다. 잠시 파주를 떠난 적이 있었는데, 군대 때문이었다. 초‧중‧고를 모두 이곳에서 다녔고, 이곳에서 가정을 꾸렸다. 개인택시를 운영했었다.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에 다른 일을 고민하던 중, 마침 동네에 슈퍼 자리가 났다. 슈퍼를 하면 삶이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어 용주골 골목에 작은 슈퍼를 차렸다. 그렇게 23년이 흘렀다.

"이거 아니면 죽는데, 목숨 걸고 지켜야죠. 여기 뭐 "대집행하십쇼" 하고 비켜줄 사람이 어딨나. 포크레인 들어오면 포크레인 밑에서 누워야죠. 나 죽으면 보상금이라도 나올 테니까 그걸로 식구라도 먹고살 거 아니에요. 그 마음으로 지켜야지. 그 대신 돌은 안 던지죠. 돌 막을 준비는 해야죠."

그는 용주골에 성노동자와 업주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용주골에는 상인들은 물론 성매매집결지에서 청소와 빨래, 식사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까지 약 30명이 있다.

"여기 망가지면 우리도 밥숟갈 놓는 거 똑같아요. 그런데 파주시는 주방 이모나, 빨래 이모나, 주변 상인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기자들 여기 와서 인터뷰할 때도 우리 이야기는 묻지도 않아요. 여기는 나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곳이고, 점점 소멸단계로 가고 있고, 우리도 파주시 유권자인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렇게 밀어붙이는 게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일은 아니잖아요. 여기 업주들, 아가씨들, 상인들, 주민들도 다 어울려서 사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런 대책 없다. 그거 꼭 좀 실어주세요."

 

정편의점 외부 모습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편의점 외부 모습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업주 아니고 빨래방 이모입니다.

D씨(60대)는 오랜 시간 용주골에서 일하며 '빨래방 이모'라 불렸다. 이곳에는 빨래방 이모, 청소 이모, 주방 이모 등 '이모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노동자들의 옷 등을 세탁하거나 식사와 청소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다. 모두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다.

"집회 갈 때도 나보고 업주라고, 다 찍혔어, 업주로. 어느 날은 사람들이 (집결지) 안에 골목으로 걸어 들어와. 내가 그 골목에 있었거든. 가만히 잘 들어봤어, 무슨 말 하나. 그 사람들 중에 강사 같은 사람이 설명을 해. 여기 아가씨들 감금당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여기서 있었잖아요. 그런 일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사한테 소리를 쳤어. 그런데 또 무슨 업주 난동인가 그렇게 기사가 나와."

나이 많은 여자가 성매매집결지에 있으니,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업주였다. 그는 "아무도 나보고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억울하지만 이곳을 지켜야 하니 매번 집회에 나갔다.

 

세탁물이 건조대 위에 널려있다. ©원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홀복집하며 잘 살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하면 '왜 너네는 가만히 있냐'고 물어봐요. 가만히 있긴요. 집회도 나가고 다 하는데. 우리한테 아무도 관심 없어요. 보도는 우리 얘기 하나도 안 나오고. 그나마 나온 것들 보면 우리 보고 업주래요."

집결지에서 일하는 상인들은 폐쇄 반대 집회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파주시와 여러 언론은 그들을 모두 업주라 불렀다. 지난 4월 18일, MBC는 '지난 11일 시청 앞 집회에서 집결지 업주들이 정해진 집회 장소를 벗어나 시청사에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경기 파주시, '시청사 무단점거' 성매매집결지 업주 고발') 김경일 시장은 지난 4월 12일, 자신의 SNS에 '업주들이 파주시청에 난입하여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글을 게시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업주와 용주골 성노동자를 비롯해 여러 노동자가 있었다.

홀복집 사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용주골에서 홀복집을 운영하는 S씨(40대)는 "파주시에서 하도 우리 말을 안 들어주길래 시청에 갔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파주시로부터 고소당한 상태다.

 

홀복집 외관 모습 ©나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는 두 살 때부터 용주골에서 살았다. 홀복집을 운영하기 전에는 옷 장사를 했다. 돈이 잘 벌리지 않았다. 그때 홀복 장사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 학원비를 벌어보겠다며 덥석 시작했고, 그렇게 9년이 흘렀다.

"처음 여기 와서 2년 동안은 버는 게 없었어요. 한 2년 버티고 버텼더니 조금씩 괜찮아지더라고요. 근데 갑자기 코로나가 오고, 이번에는 또 파주시가 폐쇄를 하겠다는 거예요. 친구한테 제가 그랬어요. 돈이 없어서 못 버틸 것 같다고.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정말 힘들어요. 파주가 나를 쫓아낸다는 게. 우리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알아서 나가겠다는 거예요. 우리들 이야기 듣고 판단해 줬으면 좋겠어요. 용주골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달라고요. 앞만 보지 말고, 옆만 보지도 말고, 뒤도 한번 보고, 내가 놓치고 있는 파주시민은 없나, 한 번만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 가시적 성취보다 당사자 목소리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성노동자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이하 차차)의 대표 여름은 집결지 폐쇄는 가시적인 성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한 사람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노동자들은 불법적인 노동을 하기 때문에 다른 노동환경보다 취약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합니다. 자신이 원치 않아도, 자신의 성(서비스)를 판매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 또한 부당합니다. 그렇다 해서,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의 정체성만 갖는 건 아닙니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일 수 있고, 여성이거나, 한 아이의 엄마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은 다양합니다. 현재 용주골 성노동자들은 업주들에게 포섭되어 용주골을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용주골을 주거 공간이자 일터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용주골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대표 여름과의 인터뷰 중
성노동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대표 여름과의 인터뷰 중

여름의 말에 따르면, 성노동자를 집결지에서 쫓아내는 방식은 성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산업에 유입되는 성노동자들은 빈곤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전 폐지된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임금, 기본소득, 장애인 사회돌봄, 미혼모 지원 등의 복지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연결된 복지체제를 마련해 빈곤을 줄여나가며, 성산업이 최선의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여름은 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해,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착취로부터 성노동자가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노동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조사하고, 개개인에게 알맞는 복지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원받는 과정에서 성노동자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성노동자들이 성매매 집결지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을 떠나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아 취업하기 어렵고, 병이 있어 고강도 노동이 어려우며, 아픈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해 장시간 노동이 어렵습니다. 결국 사회 전반적인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의 문제가 개선되는 게 필요합니다."

# 여성친화도시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여성친화도시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09년 2개 도시로 시작한 여성친화도시는 2015년 66개, 2018년 87개, 2021년 95개, 2022년 101개로 증가 추세다. 이러한 흐름을 타 파주시도 20년 12월,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파주시에서 발간한 '파주시 여성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2021-2025) 수립 연구'는 서론에서 여성친화도시 정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친화도시 정책은 결과적으로 모든 시민의 일상생활의 안전과 편의를 증진하고 성평등한 참여를 확대, 시민 삶의 질을 제고하는데 목표를 둠.'

'모든 시민'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안전한 삶은 어떤 사람에게 허락되며, 어떤 목소리가 존중 받고, 어떤 목소리가 거짓말이 되는 걸까. 여성친화도시 사업이 한창인 파주시에서 용주골 성노동자 C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시장이 이곳은 불법업소라 합니다. 그럼, 저희는 법을 어기고 사는 사람들이니 범법자가 되는 건지요? 감금 강탈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가 되는 건지요? 아니면 대한민국 여성이자 한 사람인 건지요?"

 

경기 파주시가 2023년 11월 22일 업주와 종사자들의 반발에도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파주읍 연풍리 이른바 '용주골'의 법규 위반 건축물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선 가운데,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이 통유리를 철거하고 '위험' 글자가 새겨진 테이프를 치고 있다. 2023.11.22. 연합뉴스
경기 파주시가 2023년 11월 22일 업주와 종사자들의 반발에도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파주읍 연풍리 이른바 '용주골'의 법규 위반 건축물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선 가운데,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이 통유리를 철거하고 '위험' 글자가 새겨진 테이프를 치고 있다. 2023.11.22. 연합뉴스

['여성친화도시'에서 쫓겨나는 여성들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 청년기획 프로젝트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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