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벌어지는 전시회 검열
작년 12월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이학영, 민형배, 윤미향 의원이 주최한 전시 《바람, 불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이 열렸다. 이 전시에는 신학철 작가가 1987년에 제작한 <모내기>를 재해석한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국회 사무처 측의 사전검열로 전시될 수 없었다. ‘국회 의원회관 전시회 허가 자문위원회’(이하 국회 전시 허가 자문위)가 신학철 작가의 출품작이 사회윤리 침해 우려가 있어 전시 부적합 판단을 내린 것을 국회 사무총장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철 작가는 결국 텅 빈 화포를 전시장에 걸 수밖에 없었다.
사전 검열 근거까지 추가한 국회 사무처의 내규
신학철에 대한 국회 사무처의 검열은 작년 4월에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이하 국회 전시 내규)에 추가된 두 가지 내용이 적용되며 작동했다. 그 두 가지는 전시 주최 측이 2달 전에 전시할 작품 도판들을 사무처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과 ‘국회 전시 허가 자문위’가 기존 내규 제6조(허가의 제한)에 따라 전시 허가 여부를 국회 사무총장에게 제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 개정 내용은 시기를 고려했을 때 2023년 1월에 김건희, 윤석열 부부를 풍자한 작품들이 포함된 《2023 굿바이전 인 서울》을 국회 사무처가 강제 철거한 후 추가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 국회 사무처는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강제 철거 직전에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내규에 따라 정해진 날까지 전시를 자진 철거하라는 모순적 입장을 냈다. 조국 전 교수의 「정치권력자 대상 풍자·조롱행위의 과잉범죄화 비판」(2015)에서도 언급되듯이 대통령 부부 같은 공인 중의 공인은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풍자는 물론이고 조롱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사무처는 국제법, 헌법은 물론이고 법률까지 무시한 내규를 근거로 내세우며 사후 검열을 한 것이다.
2020년에 제정된 국회 전시 내규 제6조에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될 경우” 국회 회의실 및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음이 명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내규는 앞서 언급한 전시의 사례와 같이 사후검열의 가능성만을 열어둔다. 그래서 필자는 국회 사무처가 《2023 굿바이전 인 서울》이 열린 직후인 작년 4월에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전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전 검열을 골자로 한 내규 개정을 했다고 본 것이다.
회의록조차 내놓지 못하는 ‘자문위’의 사전검열 의혹
앞선 내규 개정으로 ‘국회 전시 허가 자문위’가 설치됨에 따라서 사전검열이 이뤄진 첫 사례가 바로 《바람, 불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도대체 ‘국회 전시 허가 자문위’가 어떤 근거로 신학철의 작품에 전시 불가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전시 허가 자문위’의 논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커녕 자문위원이 누구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전검열과 관련하여 정보공개 청구를 해보니 실명과 직책을 밝히지 않은 자문위원 명단 정도는 알 수 있었으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바탕으로 <모내기> 원작도 아닌 재해석 작품을 사회윤리 침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회의록은 살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회 사무처가 회의록의 공개가 업무의 공정성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황당한 이유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헌법은 물론이고 이제는 법률로도 보장되는 예술 표현의 자유를 초월한 사전검열 행정을 했음에도 어떤 근거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국회 사무처의 태도를 마주하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 전시 내규, 헌법과 법률 테두리 안으로 돌아가야
제헌 헌법에서부터 명시되었던 예술의 자유와 예술인의 권리 보장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이 2022년 9월부터 시행됨에 따라서 비로소 법률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르면 “예술 표현의 자유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예술 활동의 조건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보호”되어야 하며 “국가기관 등은 예술을 검열하여서는 아니 되며, 예술인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의 결정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도록” 함을 명시한다.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바람, 불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은 명백히 예술인권리보장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예술인들의 활동 자체다. 그리고 국회 사무처는 국가기관에 해당하기에 국회에서 열리는 전시를 함부로 검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필자는 기존 국회 전시 내규를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으로 되돌리는 개정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6조(허가의 제한) 5항에서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 침해” 부분은 분명 고려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크기에 예술표현의 자유를 과잉 위축시킬 여지가 많다. 따라서 제6조 5항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 침해”의 해석 및 적용이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과, 확대 해석으로 예술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제6조의 2(전시회를 위한 로비 사용허가)에서 전시할 작품의 사진을 2달~30일 전까지 제출할 것을 명시한 부분은 국회 사무처가 사전검열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예술 표현의 자유를 과잉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전시 계획서만 사전 제출토록 조정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제6조의 2에 명시된 현재의 ‘전시회 허가 자문위’는 미리 제출된 전시 계획서와 전시될 작품들을 자의적 기준에 따라서 사전검열을 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물론 전시를 허가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예술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국회 사무처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도 문제이기에 ‘전시회 허가 자문위’를 두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현재와 같이 사전검열을 위한 자문위가 아니라 국회에서 열린 전시에 대한 외부의 이의가 접수되었을 때 그 내용을 신속히 검토하는 자문위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예술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에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회 허가 자문위’ 위원과 자문위에서 내린 의사결정 내용을 국회 사무처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투명성,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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