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시장과 노중기 대구미술관장의 애틋한 관계

이를 풍자한 작품이 걸리자 전시실 폐쇄

대구 아니어도 지역에서 유독 검열이 심한 이유는?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행사 중인 대구문예회관 전시실 폐쇄한 대구시

2017년에 ‘청년미술프로젝트’에서 사드, 세월호, 박정희를 다룬 작품들이 대구시 공무원 등에게 검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대구시는 이 사건 이후 일말의 성찰도 없었던 모양이다. 최근 대구문화예술회관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10.31~12.14)에 참여한 안윤기 작가의 신작 <Un/natural Spectacle>이 설치된 4전시관을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작품이 검열된 핵심 이유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모습이 담긴 <초상 2023> 사진과 노중기 대구미술관장의 사진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초상화는 노중기 작가가 대구미술관장으로 임명되기 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2023 지역작가 조명전: 노중기’(2023.5~2023.8)의 ‘열정·사랑’ 섹션에 걸린 대형 추상화 중 하나를 <초상 2023>으로 갑자기 바꾸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노중기 작가는 <초상 2023>을 두고 한겨레 측에 “홍 시장과 고교 동기로서 90년대부터 왕성하게 정계에서 활동하는 친구 모습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인데 ‘열정·사랑’이란 섹션에 맞을 것 같아 뒤늦게 미술관 쪽에 작품 교체를 요청한 것”, “개막 때 바로 걸지 않은 건 실수”, “홍 시장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며 시쪽과 어떤 연관도 없다”고 말했다.

이 사안과 관련된 사진을 살펴보면 사실적으로 홍준표 시장을 묘사한 작은 크기의 <초상 2023>이 대형 추상회화들 사이에 어색하게 걸려서 전시의 흐름이 끊어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이런 무리수를 던진 노중기 작가는 몇 달 후 대구미술관 관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러자 지역사회와 미술계는 미술관장직을 수행할 역량의 부재는 물론이고 전시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지자체장과의 친분을 내세운 자에게 특혜를 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문예회관 4전시관에 설치된 안윤기 작가의 신작 이 보이는 광경, 사진출처: 안윤기 작가 제공
대구문예회관 4전시관에 설치된 안윤기 작가의 신작 이 보이는 광경, 사진출처: 안윤기 작가 제공

홍준표-노중기 간 복잡한 관계의 서사에 관한 애틋한 풍자

안윤기 작가의 <Un/natural Spectacle>은 바로 이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은 웃고 있는 노중기 대구미술관장의 사진 그리고 노중기 작가가 그린 홍준표 시장 초상화 사진이 빔 프로젝터를 통해 두 스크린으로 투사된다. 그리고 이 옆에는 안윤기 작가의 뒷모습과 관람자의 모습이 번갈아 나타날 수 있는 스크린이 배치되었다. <Un/natural Spectacle>에는 연혜원 기획자가 쓴 단편소설「열정과 사랑」도 포함된다.

이 소설은 노중기, 홍준표의 복잡한 관계와 그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홍준표는 정치인이 되고, 노중기는 화가가 되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홍준표의 정치적 행보와 대구퀴어문화 축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더욱 멀어진다. 그래서 노중기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열정·사랑’ 섹션에 있던 추상화 한 점을 홍준표의 초상화로 교체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런 서사를 가진 「열정과 사랑」은 ‘2023 지역작가 조명전: 노중기’에서 갑자기 홍준표 시장의 초상화가 등장한 후 노 작가가 대구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된 기이한 상황을 애틋하게 풍자한다.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 대구시 산하 기관인 대구문예회관 측은 4전시관에 <Un/natural Spectacle>이 설치되자 안윤기 작가에게 명예훼손 여지가 있는 홍준표 시장의 초상화, 노중기 관장의 모습이 나오는 사진에 대해 조치하지 않으면 전시장을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안윤기 작가는 이 같은 요구가 헌법과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 금지하는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대구시와 대구문예회관은 안윤기 작가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던 상금 500만 원 지급 철회 결정과 동시에 4전시장 폐쇄를 단행했다.

안윤기 작가에 대한 검열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참여한 다른 4명의 작가(김규호·박소라·우미란·이원기)에게도 번졌다. 대구시의 일방적 결정으로 전시 개막식 취소, 전시 홍보물 회수, 대구KBS 인터뷰 취소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 중에는 오히려 공공기관 전시회에 정치적 논란이 수반되는 인물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온 안윤기를 비판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작가도 주권자의 권력을 위임받은 행정권의 권위주의를 부지불식간에 내면화했다는 점에서 2차 가해자이기보다는 안타까운 피해자에 더 가깝다.

 

안윤기 작가의 전시가 열릴 예정이었던 4전시관은 대구문예진흥원에 의해 폐쇄되었다. 사진출처: 안윤기 작가
안윤기 작가의 전시가 열릴 예정이었던 4전시관은 대구문예진흥원에 의해 폐쇄되었다. 사진출처: 안윤기 작가

홍준표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구시대 정치인

대구시, 대구문예회관이 주로 명예훼손을 문제 삼아 <Un/natural Spectacle>을 검열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예술의 자유 및 예술가 보호를 명시한 헌법과 합리적 이유 없는 지원기관의 표현의 자유 침해, 예술지원 사업의 차별을 금지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위반했다. 첫째, 시장과 지자체 공공기관장은 사인(私人)이 아니라 공인(公人)이라는 점이다. 둘째, <Un/natural Spectacle>은 공익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표현이기에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어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노중기 관장 선임에 대한 특혜 논란은 인사권자인 홍준표 시장과 당사자인 노중기 관장에 의해 충분히 해명된 바 없다는 점에서 <Un/natural Spectacle>에 내재한 문제의식은 더욱 공익성을 가진다. 이처럼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을 행정권력으로 억누른 의사결정의 정점에는 홍준표 시장이 있다. 이 지점에서 2030 정치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으로 대변되는 그의 행보도 위선임이 증명된 셈이다.

 

지난 11월 12일에 대구시의 예술검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출처: 한상훈
지난 11월 12일에 대구시의 예술검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출처: 한상훈

지자체에서 더 극심한 예술검열

과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큰 파장을 낳아 예술인권리보장법까지 제정되었지만, 지자체 단위에서는 이에 대한 성찰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로 지자체에서 발생한 문화·예술 검열 사례를 대략 헤아려도 광주시립미술관 정유승 작가 전시배제 사건, 서귀포시 4·3 작품 검열 사건, 평택시 국제교류재단 사진전 검열, 종로구의 김용균 추모문화제 검열, 춘천시의 김건희 풍자시 포함 전시 중단, 인천시의 인천여성영화제 검열, 경산시의 유시민 작가 책 검열, 서울시의 서울시장애인인권영화제 취소, 성북동의 동네예술광부전 참여작가 및 협력단체 검열 등과 같이 무수히 열거할 수 있다.

·예술 현장이 대구시 측의 이번 검열에 당장 대응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행정권력 남용에 따른 예술검열을 막기 위한 법률 차원의 대응책 마련에도 관심을 높여야 할 상황이다. 만약 예술인권리보장법에 형사 처벌 근거가 있었다면 그리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법이 제정되어 정기적으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기억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면 안윤기 작가가 이 같은 행정폭력에 노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 사건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표현의 자유임을 널리 재확인하는 동시에 예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 보완이 더 가속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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