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시행 코앞인데 유예·개정 논의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 상향 법안도 발의

‘부자 감세 반대’ 원칙 깨면 정체성 흔들

"0.5% 투자자 위한 법이 민생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이 중도층 외연을 넓히겠다며 상속세 일괄공제 기준을 완화하고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줄기차게 폐지를 주장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정부가 지방세 감소 등을 이유로 세제 개편안에서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당내에서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중도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선 감세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대표도 민주당 전당대회 대표 경선 과정에서 여기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상속세와 금투세, 종부세 완화는 명백한 ‘부자 감세’이며 개편 논의 자체가 정부와 여당의 프레임에 갇히는 패착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민주당으로서는 전략과 명분을 모두 잃을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서민 정당'이라는 정체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8.2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8.21. 연합뉴스 

지금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부자 감세' 논의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로 2년 연속 하락한 국민의 실질소득을 복원해야 하고 생사 고비에 처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살릴 대책이 시급하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저리의 정책 자금 방출로 급등한 서울과 수도권 집값도 잡아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민생 경제 회복에 민주당의 역량을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최근 상속세 일괄공제액과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 금액을 높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 한도금액을 현행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리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행법은 상속인에게 2억 원의 기초공제와 인적공제(자녀 1인당 5000만 원 등)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기초공제와 인적공제를 합친 금액이 5억 원 미만이면 5억 원을 일괄 공제한다.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주도하는 의원은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의원과 기획재정부 2차관 출신인 안도걸 의원이다. 이들은 법 개정 근거로 상속세 과세 기준이 1997년에 만들어져 중산층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27년 동안 주택 가격이 몇 배 올랐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 의원은 “노부부 중 한 분이 사망해 남겨진 배우자의 주거와 생활 안정을 보호할 필요가 늘었다는 점에서 공제액 기준을 높였고, 특히 배우자의 공제 폭을 더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 가격과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상속세 공제액을 상향한 것은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각종 공제로 실효세율이 낮은 상황에서 추가 공제로 혜택을 볼 대상이 얼마나 될지는 따져봐야 한다. 자녀 공제를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올리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춘 데 더해 대주주 할증까지 없애자는 국민의힘이 이 방안을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상속세는 어떤 식으로 개편하든 중산층이 아닌 ‘부자’가 혜택을 보게 돼 있다. 부의 대물림을 줄이려는 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뜻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가액 대비 실효세율은 23.1%에 불과했다. 납세액이 많은 최상위 1% 구간은 상속세 과세 가액 대비 실효세율이 13.9%로 더 낮았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정부와 여당, 재계 주장이 무색해진다. 나라살림연구소는 “현재 존재하는 각종 상속세 공제제도는 납세자의 실제 상속세 부담을 큰 폭으로 낮추는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서 전세 상속세 납부액의 60%를 극 최상위 100명(0.03% 이내)이 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최상위 납세자 범위를 1%로 넓히면 3600명이 상속세의 90%를 부담했다. 이런 수치는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라는 논리를 무너뜨린다. 결국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속세 개정안은 수혜자가 극소수이고, 만약 정부와 국민의힘이 밀어붙이는 상속세 개편안을 일부라도 받아들인다면 초부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데 동조하는 셈이 된다. 상속세 개편을 논의하면 할수록 스텝이 꼬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료 : 나라살림연구소. 과세 가액 대비 실효세율. 
 자료 : 나라살림연구소. 과세 가액 대비 상속세 실효세율. 

금투세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금투세 폐지를 빨리 결정하라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내부에서) 여러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년 1월 1일에 금투세가 시행되는 일은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리 서로 합의하고 그 결정을 공표하는 것이 국민, 투자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투세 폐지는 청년 이슈이기도 하다. 청년들의 자산증식이 과거와 달리 대부분 자본시장 투자로 이뤄지지 않나? 그래서 찬성 여론이 이렇게 높은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금투세 폐지를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도 했다.

금투세는 주식과 채권 등 금융상품 투자 수익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식으로 5000만 원 이상, 기타 금융상품은 25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렸을 때 지방소득세까지 합쳐 22%를 부과한다. 3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27.5%의 세율이 적용된다. 한 해에 주식 투자로 500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투자자는 전체 1400만 명의 극히 일부다.

더욱이 금투세 도입은 증권 거래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도입됐다. 거래세는 일정대로 줄이고 금투세마저 폐지하면 세수 부족이 발생한다. 그 혜택은 고스란히 거액의 금융상품을 보유한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국민의힘은 금투세가 시행되면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고 그 영향으로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백한 가짜뉴스이고 부자 감세를 위한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유예 의견을 내놓은 이후 당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대다수 의원은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상속세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임광현 의원 등은 부과 대상자를 소득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높이고 투자 손실을 보전하는 요건을 확대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일단 시행한 뒤 보완할 필요가 있으면 하면 된다. 시행하기도 전에 법을 개정하려는 건 정부와 국민의힘의 폐지론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금투세 관련 주요 일지. 연합뉴스
 금투세 관련 주요 일지. 연합뉴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출신인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금투세 폐지와 완화를 주장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체 투자자의 0.5%에 해당되는 초부자들을 위해 여야가 합의한 법까지 폐지하는 게 민생을 위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22일 한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금투세법을 민생 관련 법안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 하겠다. 금융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투자하는 거 아니겠느냐. 실질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챙겨주느냐가 민생이다. 이재명 대표가 기본 사회니 기본 소득이니 이런 걸 주장을 하면서 금투세를 (완화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금투세는 먹고사는 일과는 관련이 없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정치 행보가 마음에 들지는 않을지라도 금투세에 대한 그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특히 중산층 외연 확장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부자 감세 논의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민주당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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