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서민·중산층…실제론 기업주 수혜
“최대 주주 할증 폐지는 실질 과세 위배”
“가업공제 확대하면 재벌 총수도 세 감면”
“기업 범죄 엄벌하는 게 자본시장 선진화”
“국회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 통과 막아야”
“기업주에게 상속세 혜택 주는 게 역동 경제인가?” (경제개혁연대)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확대할 게 아니라 횡령이나 주가조작 같은 기업 범죄를 엄벌해야 기업과 경제가 성장한다.” (경실련)
시민단체들이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역동 경제 로드맵’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자료를 내놨다. 요지는 저성장의 수렁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살리려면 상속세와 법인세 감면 같은 부자 감세가 아니라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와 범죄 척결 등 공정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이 먼저라는 것이다. 특히 역동 경제로 서민과 중산층 시대 구현’을 주창하며 실제로는 재벌기업 총수들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상속세 완화 방안을 내놓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개혁연대는 5일 발표한 논평에서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와 가업상속공제 대상·한도 확대 등 상당 부분은 기업주 개인에 대한 감세 정책으로 역동 경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먼저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는 시장에서 형성돼 거래되고 있는 지배권 프리미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업주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창민과 최한수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 기업 인수 사례에서 평균 45%의 지배권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이와 유사한 다른 연구분석들도 많다. 현행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평가 20%가 시장의 지배권 프리미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대 주주 할증을 폐지할 게 아니라 할인평가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게 경제개혁연대 주장이다. 미국과 독일 등 주요국에서도 대주주의 지배권에 대해 일정한 할증평가를 통해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과세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 대상과 공제 한도 확대도 상속세 완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중소기업의 가업상속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2007년 12월 이전까지는 공제 한도가 1억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9년 이후 공제 한도가 확대됐다. 지금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연간 매출액이 5000억 원 미만인 중견기업에 대해서도 최대 600억 원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상속인은 공제 후 일정 기간 자산과 고용을 포함해 가업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이 부분도 규제가 완화됐다. 현재는 공제 적용 후 5년간 가업을 유지하면 되고 올해 2월부터 표준산업분류표상 ‘세분류’ 내에서만 허용하던 업종 변경은 현재 ‘대분류’ 내에서도 가능하다.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해 기업의 장기적인 존속을 유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기업주의 상속세 완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중견기업에 적용되는 매출액 요건을 삭제하고 공제 한도를 최대 1200억 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중견기업법상의 중견기업은 공정거래법상 자산총액 10조 4000억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한 기업을 의미한다. 따라서 올해 기준으로 한국타이어와 태광, 금호석유화학, 동국제강 등 공시대상기업집단의 기업주에게도 조건이 충족되면 가업상속공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정기준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에서 국내 총생산(GDP)에 연동시키는 방안도 재벌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막는 것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주주 일가에 대한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 일반주주들의 부가 이전되는 문제가 발생해도 주주들이 책임추궁 소송을 제기하는 게 쉽지 않다. 대표소송을 제기해도 이사의 위법행위를 입증하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민사적 제도개선 방안과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규율 강화가 논의돼야 할 시점에 그와 정반대의 정책이 추진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제개혁연대는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일 발표한 ‘역동 경제 로드맵’에 대한 논평에서 “부를 대물림하기 위해 상속세를 깎아주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고 발생한 기업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게 자본시장 선진화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전 세계의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글로벌경제에서 우리나라 증시만 투자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상속세 때문이 아니라 투명하지 못한 기업경영과 배임과 횡령, 주가조작 등 기업 범죄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처벌이 없고, 보완책도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말로는 건전재정을 외치고, 실제로는 부유층의 세금만을 깎아주는 윤석열 정부의 모순적인 행태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상속세를 깎아주려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절대 허용해선 안 되고 기업의 세금 회피 제도로 전락한 가업상속공제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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