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문사 SK이노·E&S 합병찬성 속 "반대"

"양사 합병비율 SK이노 일반주주에게 불리”

상세한 설명도 안해 "최태원 회장 일가만 유리"

SK이노 이사회 합병 비율 근거에 '묵묵부답'

"총수 일가에 치우친 의사결정 방식이 문제"

경제개혁연대에 이어 국내 대표 의결권 자문기관 중 한 곳인 서스틴베스트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SK그룹이 합병비율을 산정하며 SK이노베이션 주식가치를 과도하게 저평가해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합병 결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고 일반 주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부 설명도 없었다고 서스틴베스트는 지적했다. 이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대체로 합병 찬성 권고를 한 것과 전혀 다른 시각이다. 서스틴베스트는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을 개척한 전문 기업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합병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2024.7.18.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합병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2024.7.18. 연합뉴스

SK이노·E&S 합병,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 상충

서스틴베스트는 오는 27일 개최 예정인 SK이노베이션 임시주주총회에 상정된 SK E&S와의 합병계약 체결 승인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다고 21일 밝혔다. 두 회사의 최대 주주가 같은 상황에서 상장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회사인 SK E&S 간 합병이 이해 상충 이슈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결정됐다는 점을 반대 근거로 제시했다. 양사간 합병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 주주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산정돼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스틴베스트는 최근 회원사들에게 제공한 SK이노베이션 임시주총 의안분석 보고서에서 △합병비율 △합병 시너지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 상충 관리 세 가지 측면을 살펴봤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정했기에 법적 문제는 없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역사적 최저점에서 합병가액이 산정됐다는 점과 합병가액 산정 방식에 따라 지배주주인 SK와 일반 주주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분율 차이가 8%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 이해 상충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도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합병을 결의하며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서스틴베스트가 안건 반대를 권고한 이유다.

 

 자료 : 경제개혁연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가액 산정 내역
 자료 : 경제개혁연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가액 산정 내역

SK이노 시가로 합병비율 산정하면 일반 주주에 불리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SK E&S와 합병을 결의했던 7월 16일은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6에 불과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기업의 순자산이 주가에 100% 반영되면 PBR은 1이 된다. PBR 0.36은 주가가 자산가치의 3분 1 정도라는 것으로 그만큼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의 과거 주가 흐름과 비교했을 때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아무리 계열사 간 사업 재편이 급하다고 해도 이런 시기에 시가로 합병가액을 산정한 건 SK이노베이션 주주라면 불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스틴베스트 류호정 책임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 PBR이 역사적 저점에 있고 상대가치 측면에서도 동종업체 PBR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준에서 합병가액이 산정된 건 회사의 주식 가치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합리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법적 규정과 합병과 연관된 이해관계자 등을 고려했을 때 합병비율 측면에서 분명 자산가치 적용이 회사에 유리하며 최선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시가 적용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회사 전체 주주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SK이노 이사회 합병비율 산정 근거 상세한 설명 없어

SK그룹 측은 합병 시너지 측면에서 미래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전제돼 있기는 하지만 중장기적 재무 구조 개선 효과와 두 계열사 간 사업 통합 시너지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합병비율을 산정할 때 기준시가 또는 자산가치 중 어느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지에 따라 지배주주인 SK와 일반 주주의 합병회사의 지분율 차이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그 격차도 8%포인트가 넘는다.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들 간 이해 상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시가로 합병가액을 결정한 근거와 이유를 명백하게 밝혀야 마땅했다. 그러나 서스틴베스트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류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합병 관련 이사회 논의 내용과 합병가액에 시가를 적용한 이유에 대한 설명 등을 살펴보았을 때 이번 거래의 이해 상충 문제로 SK이노베이션의 일반 주주가 받을 수 있는 영향이나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사회의 노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고려할 때 회사의 일반 주주 권익을 고려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자료 : 경제개혁연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비율 재산정시 주주의 지분율 변동 추정
 자료 : 경제개혁연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비율 재산정시 주주의 지분율 변동 추정

합병으로 최태원 SK 회장 일가 가장 큰 수혜

SK이노베이선과 SK E&S의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경제개혁연대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시가에 따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1.19(합병가액은 1주당 11만 2396원 대 13만 3947원)로 결정됐다. SK이노베이션의 회사 가치는 약 10조 8000억 원, SK E&S는 약 6조 2000억 원으로 각각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산가치만을 기준으로 보면 SK이노베이션은 약 23조 5000억 원(1주당 24만 5405원)으로 SK E&S의 약 3조 8000억 원(1주당 8만 2475원)보다 훨씬 높다.

SK이노베이션 주주 쪽에서 보면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당연히 시가가 아닌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게 유리하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이번 건처럼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상장사는 시가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면 자산가치로 정할 수도 있다.(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 제2호). 그런데도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자산가치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가를 적용해 합병가액을 정했다.

만약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했다면 SK이노베이션의 지주회사인 SK의 합병회사 지분율은 47.47%로 시가로 했을 때보다 8.44%포인트 낮아진다. SK의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지분율은 각각 36.2%와 90.0%다. 어떤 식으로든 두 회사를 합병하면 최대 주주인 SK 지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합병비율에 따라 SK이노베이션 최대 주주와 일반 주주들의 이해가 엇갈린다. 합병회사에 대한 SK의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최대 주주인 SK와 SK의 지배주주인 최태원 SK 회장 일가에는 이익이 되지만 SK이노베이션의 일반 주주의 지분가치는 그만큼 희석된다. 서스틴베스트가 이번 건의 합병비율이 이해 상충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SK그룹 지배구조 현황. 연합뉴스
 SK그룹 지배구조 현황. 연합뉴스

지배주주 이익만 챙기는 의사결정 방식이 밸류업 막아

서스틴베스트는 국내에서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등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가 이러한 이해 상충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충실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장기적인 주주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거 계열사 간 합병 등에서 일반 주주 이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 상장기업과 자본시장의 만성적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정책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 상충 관점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의 이런 지적은 SK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과도 연루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부터 최근 두산그룹의 계열사 간 복잡한 합병과 지분 교환에 이르기까지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 가치가 훼손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 원인은 모든 의사결정이 지배주주 총수 일가에 유리하게 결정될 수밖에 없는 재벌 구조에 있다. 서스틴베스트를 비롯한 전문 기관과 전문가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첫 과제로 재벌개혁을 꼽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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