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 이익에만 부합하는 자본거래

에너빌리티 지분 6.85% 보유한 국민연금

일반주주 손해 안건에 찬성할 이유 없어

총수 일가·들러리 이사회 빼고 모두 반대

내달 12일 두산에너빌리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행동주의펀드, 일반주주 모임 등 두산그룹만 빼고 거의 대부분이 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 분할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두 기업의 분할합병이 회사와 일반주주가 아닌 지배주주인 두산그룹 총수 일가에만 유리한 자본거래라는 이유에서다. 두산의 사업재편 방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에도 역행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2024.10.21. 연합뉴스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두산에너빌리티-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 건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정훈 두산로보틱스 대표,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2024.10.21. 연합뉴스

두산그룹 외에 모두가 반대하는 사업구조 재편

경제개혁연대는 29일 논평을 통해 국민연금이 두산에너빌리티 임시주총에서 반드시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두산그룹이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와의 분할합병 비율을 기존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재산정했으나 에너빌리티의 일반주주의 반발이 여전한 데다 분할합병에 찬성해야 할 마땅한 근거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에너빌리티 지분을 6.85% 보유 중인 주요 주주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도 분할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고 29일 연합뉴스가 금융투자업계 소식을 인용해 전했다. ISS는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 중 한 곳이다. ISS는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서 “에너빌리티와 로보틱스 간 자본거래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상충한다”며 “소수 주주를 희생시키면서 얻는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에 대한 박지원 에너빌리티 회장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경제적 유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ISS는 또 “외부 평가기관을 거쳤다고 하지만 이 같은 이해관계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며 해당 거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고 짚었다.

분할합병 비율 재조정했으나 땜질 처방일 뿐

두산그룹이 처음 제시한 사업구조 개편안은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주주들은 분할합병 비율과 포괄적 주식 교환 비율이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로보틱스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산정됐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금융감독원도 수차례에 걸쳐 증권신고서의 정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두산은 마지못해 로보틱스와 밥캣의 포괄적 주식 교환 계획을 철회하고, 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 비율도 지배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에너빌리티에 다소 유리하게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이는 땜질 처방일 뿐 근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ISS뿐 아니라 행동주의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의 운영사 컨두잇도 에너빌리티 주주들에게 의결권대리행사권유를 했다. 밥캣 주주인 얼라인파트너스는 에너빌리티 이사회가 핵심 종속회사이자 주요 자산인 밥캣의 지배지분 46%를 특수관계인 로보틱스에게 싼값에 이전하려 한다며 반대를 권유한 것이다. 컨두잇 역시 두산그룹이 사실상 시가에 기반한 합병비율 산정을 고수함에 따라 에너빌리티에 불리한 분할합병이 강요되고 있다며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방향. 연합뉴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 방향. 연합뉴스

부실기업 로보틱스 살리려 에너빌리티 주주 희생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에너빌리티가 지분 소유하고 있는 밥캣은 작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9조 7000억 원에 영업이익 1조 3800억 원을 달성한 우량기업이다. 이에 비해 로보틱스는 매출액 530억 원에 영업 적자가 191원 억 원에 달한다. 두산그룹 측은 로보틱스 성장성이 좋다고 하지만 희망사항이 섞인 예측일 뿐이다. 시장에서는 로보틱스의 자금 확보를 위해 밥캣을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구조 재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에너빌리티의 밥캣 매각 필요성보다 로보틱스의 밥캣 인수 필요성이 큰 상황이라는 게 상식에 가깝다. 로보틱스가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에 밥캣과의 포괄적 주식 교환 계획을 철회하고, 에너빌리티 신설 투자법인과의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면서까지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한 것은 이런 실익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로보틱스와 밥캣은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완전자회사 편입 계획을 철회했으나 두산그룹은 이는 어디까지나 현시점에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향후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로비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로비의 모습. 연합뉴스. 

에너빌리티 대주주 국민연금 반대표 행사해야

에너빌리티가 이번 분할합병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에너빌리티 이사회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분할합병에 따른 사업구조 개편이 대형원전과 소형원자로(SMR) 분야의 신기술 확보와 적시 생산설비 증설용 현금 확보, 추가 차입 여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만 반복한다.

경제개혁연대는 “두산의 사업구조 개편안은 자본거래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전형적인 사례로 현재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의 주요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현재 에너빌리티 지분 6.85%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다음 달 12일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분할합병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주주의 이익에 충실하게 추진되는 자본거래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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