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영장, 알 수 없는 이유로 법원이 줄줄이 기각

공수처는 인력난, 안팎 수사 방해 겹쳐 한계 봉착

진상 규명 핵심 증거 하루하루 멸실, 다급한 상황

참여연대‧민변 등 공동성명 "마지막 보루 국회뿐"

"국정조사 착수로 증거부터 확보해 진실 지켜야"

'특검 제3자 추천' 한동훈안에 반대…"타협 안 돼"

임성근 명예전역 신청에 '범국민 반대 서명운동'

군인권센터 "위법‧특혜…돈 챙기고 징계 피하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2023.9.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만 1년 전인 2023년 7월 31일 오전,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격노'와 함께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수사 외압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은 두 차례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거부왕'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번번이 폐기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나름대로 애를 써왔지만 고질적인 인력난과 안팎에서의 수사 방해까지 겹쳐 속도를 내지 못하고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특히 공수처가 윤 대통령의 개인 휴대전화를 비롯해 사건 주요 관계자들에 대해 청구한 통신영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법원에 의해 줄줄이 기각돼 이제 하루하루 통화 기록이 멸실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게 됐다. 통신사들의 통화 기록 보존 시한은 1년이다.

 

윤석열 대통령 '격노' 당일인 2023년 7월 31일 시작해 8월 2일 발생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의 시간대별 기록. 더불어민주당 자료
윤석열 대통령 '격노' 당일인 2023년 7월 31일 시작해 8월 2일 발생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의 시간대별 기록. 더불어민주당 자료

이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군인권센터는 31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가 즉시 국정조사에 착수해 증거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주장하는 '특검 제3자 추천'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 3개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에서 "한 사람의 격노가 1년째 온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 대통령의 격노는 즉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지켜내기 위한 온갖 무리수로 이어졌다"며 그 사례를 열거했다.

수사 외압, 이첩 기록 무단 회수, 박정훈 대령 항명죄 수사, 보직 해임, 구속영장 청구, 혐의자에서 임성근을 제외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이첩, 출국 금지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경북경찰청의 임성근 무혐의 처분, 임성근 구명 로비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 연루설 제기에 이르기까지 무리한 수중수색을 압박한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실로부터 국방부, 국방부 검찰단, 국방부 조사본부, 해군, 해병대 사령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상북도경찰청, 대구광역시경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외교부,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기관이 쑥대밭이 됐거나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격노'의 실체를 두고 정부‧여당이 벌인 끝도 없는 거짓말 릴레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군 고위 관계자들과 대통령실 참모, 국민의힘 의원들은 "격노는 사실무근"이라고 입을 모아 부인해왔다. 그러다 2024년 5월 공수처가 김계환 사령관 핸드폰에서 VIP 격노 관련 녹취를 확보하자 태도를 돌변해 "대통령 격노가 뭐가 잘못이냐?"는 식의 적반하장을 보였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다시 "대통령 격노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드러난 사실들까지 덮어놓고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채상병 사건 조사 결과 회수 전후 이종섭-대통령실 통화 기록. 연합뉴스
채상병 사건 조사 결과 회수 전후 이종섭-대통령실 통화 기록. 연합뉴스

이들 3개 단체는 "고위공직자들의 거짓말 릴레이로 장식된 뉴스 첫머리가 날마다 국민의 하루를 한숨과 분노로 채운 지 오래"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한마음으로 진상 규명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채 상병 특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거부권 남발과 국민의힘의 '묻지마 부결'로 두 번이나 좌초됐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힘겹게 수사를 이어오던 공수처 역시 적은 수사 인력과 무더기 통신영장 기각,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과 연결된 내부 인사 등으로 인해 수사팀이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수사 결과에 대해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면서 "국방부 검찰단의 무리한 박정훈 대령 항명 수사를 수사 중인 국방부 조사본부의 담당 수사관도 최근 알 수 없는 이유로 교체됐다. 그 사이 경찰은 임성근 사단장에게 무혐의를 처분했고,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이 전면에 드러나자 국민의힘이 정치 공세를 벌이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진실을 고사시키기 위한 권력집단의 노력이 치밀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제 진실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국회뿐이다. 외압으로부터 1년, 오늘을 기준으로 아직 확보하지 못한 외압 관계자들의 통화기록이 매일매일 소멸될 것이다. 날마다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며 "국회는 즉시 국정조사에 착수하고 증거부터 확보해야 한다. 특검법 역시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수사를 담보하고 충분한 수사 인력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나 대표성이 결여된 직역 단체에 특검 추천권을 넘기자는 일각의 주장에 흔들려선 안 된다"면서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이들과의 타협으로는 진실을 지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 7월 23일, 채 상병 유가족이 경북경찰청에 임성근 무혐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이런 일'이 '없던 일'이 될 수 없다"며 "해야 할 일을 제때 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격노로부터 1주년, 지나온 모든 시간이 힘겹지만 진실에 가닿는 시간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비뚤어진 격노가 망가뜨린 세상을 시민의 힘으로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19. 연합뉴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19. 연합뉴스

한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지난 23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명예전역'을 신청했고, 김 사령관은 이를 받아들여 해군본부 명예전역 심사위원회에 회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전역은 군인사법에 따라 20년 이상 근속한 군인이 정년 전에 '스스로 명예롭게 전역'하고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만큼의 월급의 절반을 일시불로 받는 제도다. 해병대 사령관에게 신청서가 제출되면 해군본부 심사위원회(3~7인 이내의 대령급 이상 장교로 구성)의 심사를 거쳐 명예전역 여부가 결정된다.

이에 군인권센터는 '임성근 명예전역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해군 및 해병대가 임성근 사단장의 명예전역을 심사하는 행위는 명백한 위법행위이자 '맞춤형 특혜'라는 것이다. 심사 후 명예전역의 최종 승인권자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다. 군인권센터가 그 부당함을 조목조목 짚은 사유는 다음과 같다.

1. 군인사법 35조의2는 중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비위 행위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있을 때 전역을 지원한 사람은 '전역시켜선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수사 중인 피의자는 전역 심사의 대상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임성근은 현재 검찰과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는 피의자다. 김계환 사령관은 법률에 따라 절대 전역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전역지원서를 받아들여 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직권남용을 저질렀다.

2. 군인사법뿐 아니라 해군 전역 규정 16조 2항 4호 역시 명예전역 수혜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수사기관에서 비위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을 명시하고 있다. 김계환 사령관은 규정 상 신청 요건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심사에 회부해줬다.

3. 군인사법 35조의2 2항에 따르면 해병대 사령관은 전역지원서를 받은 경우 전역 제한 대상에 해당하는지 수사기관 등에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김계환 사령관이 검찰, 공수처에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는 직무유기다.

4. 해군 전역 규정 16조 4항에 따르면 명예전역은 매년 2회(5~6월, 12~1월 중)의 공고 기간 내에 제출하게 돼 있다. 임성근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한 7월 23일이 공고 기간 내에 속하지 않는다면 이는 맞춤형 특혜다.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7.22. 연합뉴스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7.22. 연합뉴스

군인권센터는 "임성근이 명예로운 전역을 신청한 날은 고(故) 채 상병 유가족이 경북경찰청의 임성근 무혐의 처분에 반발해 이의신청을 제기한 날이기도 하다.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임성근은 자동으로 검찰에 송치된다"면서 "뿐만 아니라 임성근은 생존 장병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기 때문에 공수처에서도 수사를 받는 처지다. 김계환 사령관은 채 상병 1주기를 맞아 임성근 단죄를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뒤로는 임성근에게 명예와 전역수당을 챙겨주며 유가족의 뒤통수를 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건 발생 이후 1년 동안 용퇴하지 않고 '황제 연수' 특혜를 누리며 무보직 상태로 9개월을 버틴 임성근이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세력의 로비 연루 의혹이 터지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이 들통나기 시작하자 군복을 벗고 돈을 챙겨 군 밖으로 도망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징계 처분도 피해 보려는 속셈"이라며 "이는 임성근 개인의 판단일 수 없고, 장군 임용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개연성이 높다. 직권남용, 직무유기의 위법을 감수하면서까지 김계환 사령관이 임성근에게 특혜 전역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상황 역시 상부의 압박을 받았을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군인권센터는 '임성근 명예전역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해 8월 4일 정오까지 온라인 서명을 받아 신원식 국방부 장관에게 제출하기로 했다. 신 장관마저 직권남용의 공범이 돼 위법한 전역을 승인한다면 이후 가용한 모든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군인권센터는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뻔뻔히 자리를 지키다 로비 의혹이 들통나자 국민 혈세를 챙겨 도망가려는 임성근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에 많은 시민이 동참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임성근 명예전역 반대 온라인 서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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