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전국 확대 시행 앞두고 지자체 자율로 전환

대상 가맹점 수 3.2만→700개로 쪼그라들어

바코드 인쇄·배송업체들, 조폐공사에 75억 손배소

재판부 제시 60% 조정안도 공사 끝내 거부

"정부 믿고 미리 큰돈 투자했는데 어쩌란 거냐"

일회용 컵 보증금에 사용된 바코드 라벨. 연합뉴스
일회용 컵 보증금에 사용된 바코드 라벨. 연합뉴스

정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사실상 포기해 수십억 원 규모의 손실을 본 참여업체들에 대한 보상을 외면해 비난을 사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끝내 손실 보상을 거부함에 따라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조폐공사를 상대로 75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회용컵 음료를 살 때 소비자가 보증금(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환경부는 2022년 12월2일부터 제주와 세종에서 우선 시행 한 이후 2025년에 전국적으로 시행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이 사업을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선도사업'으로 전환함으로써 대상 사업자가 대폭 축소돼 사실상 폐기됐다. 대상 가맹점이 전국 3만 2000여 개에서 제주·세종의 700여 개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에 쓸 스티커 제작과 배송 계약을 맺었던 인쇄업체 2곳과 배송업체 1곳이 공사를 상대로 7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3개 업체는 일회용 컵에 붙일 바코드 라벨(스티커) 20억 장·80억 원 상당을 제작해 전국에 배송하기로 공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최종 발주는 6438만여 장(2억 5000만 원 상당)으로 계약 물량과 금액의 3.2% 수준에 그쳤다.

 

세종시 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일횡용 컵 무인 회수기. 연합뉴스
세종시 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일횡용 컵 무인 회수기. 연합뉴스

이들 업체는 정부 발주 물량의 제작과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미리 64억 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했지만, 정부의 급작스런 사업 대폭 축소로 투자비용 회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게다가 지난해 말 계약이 종료돼 이들 기업들은 빚더미에 앉게 됐다.

소송을 제기한 업체들은 최초 입찰 계약대로 75억 원가량의 잔금을 손실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체들은 정부 발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바코드 라벨 제작·배송 단가가 치솟아 만들수록 손해가 났지만, 조폐공사는 손실 보상을 해준다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계약 종료 후 조폐공사는 업체들의 투자금·손실액 보전을 거부했다. 환경부의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공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게 공사의 주장이다. 공사는 주무 부서인 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와 협의를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인쇄업체 대표들은 "단가를 도저히 맞출 수 없어 그만하겠다고 했지만, 조폐공사에서 나중에 손실을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했기에 믿고 끝까지 했다"며 "공사와 협력 관계를 생각해 참고 마무리 지었는데, 지금 와서 이렇게 나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제주의 한 카페에 게시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중단 알리는 공고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의 한 카페에 게시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중단 알리는 공고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폐공사는 손해배상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 조정안도 거부했다. 인쇄물량 70%인 14억 장 납품 계약을 맺은 광주광역시의 A 인쇄업체는 손해배상액으로 56억 원을 요구했는데, 재판부가 조폐공사에 60% 정도인 35억 원을 지급하라고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거부했다.

공사 관계자는 "환경부 정책 변경으로 사업 준비를 위해 투자한 비용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주처와 지속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동시에 협력업체와 협력 분야를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소송을 해서 나중에 어느 정도 보상받기야 하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정부를 믿고 미리 큰돈을 투자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정부를 믿고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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