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도시폐기물 처리장이 아니다 ②
생태계의 보고 연천에 폐기물처리업체 난립 막아야 할 이유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생태와 생태계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 생태는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를 뜻한다. 생태가 좋다는 것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생명체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고 있는 상태가 좋다는 뜻이다. 각 생명체들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들만의 체계를 유지하는데, 이런 체계를 생태계라고 한다. 생태계의 발달 상태는 지역 혹은 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경기도 연천의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처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의 생태계는 생물권의 종류와 규모, 역동성과 탄력성 등 모든 면에서 그렇지 않은 곳보다 우월하다. 이 생태계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산업 활동이다.
거의 모든 관행적인 산업 활동은 폐기물을 남긴다. 폐기물은 쓸모 있는 물질이나 물건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거나 수명이 다 됐을 때, 인간이 물질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은 물질은 폐기물 처리장으로 옮겨져서 재활용-소각-매립의 경로 중 하나를 밟게 된다. 문제는 폐기물의 발생량은 갈수록 늘어날 뿐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폐기물, 어떻게 구분하고 처리하나
폐기물은 어디서 발생하는가에 따라 생활폐기물, 사업장일반폐기물, 건설폐기물, 지정폐기물로 나눈다. 생활폐기물은 말 그대로 가정집이나 사업장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들이다. 사업장폐기물은 산업현장에서 오염물질로서 배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수처리장, 폐수처리장, 분뇨처리장, 폐기물처리사업장 등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다. 폐농약이나 폐산, 폐유, 의료폐기물, 폐석면, 폐수은 등 독성이 강한 물질은 지정폐기물이라 하여 따로 관리한다.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 중 불에 타는 것은 소각장으로, 타지 않는 것은 매립한다.
소각은 탈 수 있는 물질을 태우는 것이다. 태우면 물질은 무기물로 분해되어서 대부분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만 재로도 남는다. 사실 소각은 오염물질을 땅 위에서 공기층으로 보내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던 독성물질도 태울 때 나오기 때문이다. 즉 일산화탄소,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염화수소 같은 것들이다. 다이옥신과 퓨란 같은 발암물질도 바로 연소 과정에 나온다. 특히 염소 성분을 가진 유기물을 태울 때 다이옥신이 형성된다. 다이옥신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이다. PVC 등 합성물질을 태울 때 나오기 쉬운데, 한번 형성되면 없어지지 않고 생태계에 잔류하거나 인체에 흡수된다.
태울 수 없는 폐기물은 땅에 묻는다. 매립은 침출수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특히 지정폐기물의 경우 독성물질이 섞인 침출수가 유출되면 환경에 재앙이 된다. 매립장이 꽉 차면 이후 30년 동안 안정화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 동안에도 침출수는 계속 생겨나며, 혐기성 소화로 인한 유독가스도 나온다.
한강유역환경청 따로, 연천군청 따로
연천 고능리 산업폐기물매립장은 한탄강 인근에 설치된다. 한탄강으로부터 직선거리 1.5km 이내의 위치이다. 그리고 한탄강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과도 가깝다. 이런 곳에 사업장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을 묻는다고 할 때, 이 사업의 환경영향은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하에 평가할까? 참 궁금한 대목이다. 사업장일반폐기물의 경우 폐기물매립시설의 조성 면적이 30만㎡ 이상이거나 매립용적이 330만㎥ 이상일 경우에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이 된다. 연천의 경우 일차 사업면적 4만 9680㎡이므로 환경영향평가대상은 아니다.
연천 고능리 산업폐기물매립장은 한강 수계의 개발 사업에 해당하므로 한강유역환경청에 사업허가 신청이 먼저 들어갔고, 검토 후 사업승인을 내주었다. 부족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신설할 때의 효용에 비하면, 한탄강 일대의 우수한 자연생태계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듯 허가를 내줌으로써 주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지역의 반대목소리나 이미 폐기물업체들이 난립해 있는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사업대상부지의 용도변경은 경기도가 판단할 몫이었는데, 2년 전 당시에는 허가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업체는 다시 부지 용도변경과 매립장 설치를 동시에 신청하고 나섰다. 문제는 연천군청이다. 새로 선출된 연천군수가 조건부 입안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여전히 주민들의 반대목소리는 높았고, 자신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사항이었음에도 조건만 맞으면 수용하겠는다 것이다. 이 과정까지 오는 동안 매립장 업체의 계획은 집요하고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지역 언론들이 매립장 사업에 호의적인 기사들만 생산해냈다. 찬성측 주민들이 반대측 주민을 윽박지르고 고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은 하루도 안 되어 떼어지고, 심지어는 업체 대표가 반대측 인사를 협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엇이 연천군의 입장을 바꾸게 했을까?
기후재난 시대에 맞는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졌는가
연천군은 2021년 3월에 기후변화에 따른 연천지역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검토한 바 있다. 이른바 [제2차 연천군 기후변화 적응대책 세부시행계획]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21세기 후반부 경기도의 강수량 증가율은 우리나라 평균 증가율보다 높은 30.9%가 될 것으로 예측됐고, 특히 연천군의 증가율은 경기도 평균보다 높은 36.6%로 예측되었다. 동일기간 내 읍면별 기후변화 전망치를 보면 폐기물매립장 대상지가 속한 전곡읍의 강수량이 현재도 많지만 미래에도 가장 많은 것으로 예측됐고, 이런 강수량의 영향으로 2040년대 산사태로 인한 임도의 취약성도 청산면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보더라도, 기후변화에 따라 갈수록 대형화하는 자연재난은 정주공간뿐 아니라 사회기반시설 등에 영향을 미쳐 복합재난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이런 전망치들은 단지 보고서로 끝날 일은 분명 아니다. 왜냐면 자연재해의 강도가 기존 경험치를 벗어나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갖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기준은 훨씬 더 보수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기존의 기준치나 임계값은 위기감이 지금처럼 높지 않을 때 세워진 것들이다. 이를테면 자연생태환경 분야, 대기환경 분야, 수환경이나 토지환경 분야 등 자연과 연결되는 모든 분야의 평가항목에서 높은 가중치를 세우고 적용해야 한다. 특히나 자연생태계를 대규모로 개조하거나 변형하는 일인 경우에 더더욱 그렇다.
곳곳에서 갈등… 중앙정부가 규제 나서야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의 면적이 적은 나라에서는 매립장 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의 경우엔 민간에 맡기다 보니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산업폐기물매립장 갈등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본다.
첫째, 폐기물처리사업은 공공서비스 영역인데, 민간에 위탁하면서 고수익 영리사업으로 변질된다. 이 때문에 매립장을 설치하려는 사업주는 법과 제도망을 교묘히 이용해서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등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둘째, 폐기물매립 사업은 땅에 묻어서 오염물질을 감추는 사업이다. 매립장 운영 중이나 종료 후의 안정화 기간 동안에도 침출수 관리나 붕괴방지 등 점검관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인 매립장은 폐쇄적으로 운영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사업주가 부도나서 관리주체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화성과 당진, 제천이 바로 이런 사례의 피해지역이다.
셋째, 매립장이 설치된 지역은 소음과 먼지, 침출수 등 환경에 부담이 커지고, 주민들은 생활터전의 경제적 가치 하락이라는 타격을 입는다. 반면 매립장 사업주는 고수익을 얻게 된다. 경제정의 측면에서 불공정한 게임이 분명하다. 수익의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환원이 성립되려면, 매립지 공사와 같이 공공기관이 운영을 맡아야 한다.
넷째, 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발생한 지역에서 폐기물 최종처리까지 완료해야 한다. 폐기물 이전의 모든 경제적 효용은 발생지에서 취하다가, 폐기물 후의 부담을 인구소멸 위기의 지방으로 전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다.
다섯째, 폐기물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은 줄이는 것이다. 애초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쓰거나, 자연분해가 가능한 재료를 쓰면, 매립량이 줄어들 수가 있다. 전체 폐기물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폐기물이 많기 때문에 어떡하든 줄이려는 노력이 앞서지 않으면 이 문제는 갈수록 꼬이기만 할 것이다. 중앙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개입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섯째, 지역별로 처리되는 폐기물의 총량을 계산해서,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땅값이 싸고, 마을의 저항이 약한 지역에는 한번 들어오면 연쇄적으로 밀려들어 온다. 경기북부 연천엔 이미 온갖 종류의 폐기물 사업들이 들어와 있어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해온지 오래다. 그런데도 모자라 산업폐기물매립장까지 들어오려 한다.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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