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참사로 드러난 외국인 노동자 실태

전체 산재 사망 사고 10명 중 1명이 이주노동자

위험한 작업 도맡는데도 안전 교육은 거의 없어

사고 보상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도 부지기수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절규 새겨들어야

“유망한 산업이라면서 위험은 왜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돼야 하느냐.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 3D가 아니라 죽음(Death)이 더해진 4D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다 산재를 당하는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무런 근본적인 개선책이 없었다. 문제가 누적되는 사이에 이주노동자는 내국인의 두세 배 비율로 끊임없이 스러져갔고 결국 이번 같은 최악의 대형 참사의 최대 희생자가 되었다.”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시 아리셀 일차전지 제조공장 [공동취재] 연합뉴스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경기 화성시 아리셀 일차전지 제조공장 [공동취재] 연합뉴스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과 난민인권센터, 다산인권센터 등 113개 인권 시민단체는 25일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 대한 성명에서 ‘선진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춰냈다. 이번 화재 사고의 사망자 23명 중 18명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아리셀의 정규 직원이 아니다. 파견업체로부터 연락받고 화재 가능성이 매우 높은 환경에서 작업하다 참변을 당했다. 한국말이 서툰데다 작업장마저 낯선 곳이라 순식간에 퍼진 불길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형 참사에 언론들은 앞다퉈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처참한 삶을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와 처우 개선에 소홀했던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도 산업 현장에서 수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으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고 이후 이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지 못했다. 일부 인권 단체가 실상을 알렸으나 대다수 국민은 ‘남의 일’로 여겼다. 그러는 사이에 ‘위험의 이주화’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수는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제 산업 현장과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필수 인력이 됐다. 이들이 없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고 농작물 수확이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취업자 수는 92만 3000명에 달했다. 정부는 올해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입국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를 작년보다 4만5000명 많은 16만5000명으로 정했다.

이런 추세라면 공식 집계되는 외국인 취업자 수는 곧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다. 정식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 입국해 일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실제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이미 13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들도 재외동포(F4)와 방문취업 동포(H2), 결혼이민(F6), 영주권(F5) 비자로 들어온 이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취업자 수 추이. 연합뉴스
 외국인 취업자 수 추이. 연합뉴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극심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라셀 공장 이주노동자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업무는 제조업체 직접 생산 공정으로 파견 직원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력을 공급한 업체는 ‘메이셀’도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았다. 메이셀 측은 연합뉴스 취재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아리셀에 공급하는 근로자에게 근무지로 향하는 통근버스 사진만 문자로 보내줄 뿐이다. 근로자들도 저나 저희 직원 전화번호만 알지 얼굴도 모른다. 우리는 아리셀에 직접 갈 수도 없다. 아리셀이 불법 파견을 받았으면서 거짓말하고 있다.”

전체 산재 사고 사망자 중 외국인 노동자 비중은 10% 안팎이다. 이 수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외국인 취업자가 늘어나는 만큼 사망 사고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취업자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5% 미만이다. 한국 노동자보다 사망 사고가 2~3배 많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인력난 탓에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저임금에 작업환경까지 열악해 한국인 구직자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고용하고 위험한 작업에 내모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인력 운용 차원을 넘어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가 26일 오전 10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 외치고 있다. 2024. 6. 26. 연합뉴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가 26일 오전 10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 외치고 있다. 2024. 6. 26. 연합뉴스

저출산 고령화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중소형 공장들이 밀집한 지역과 농촌에서는 어렵지 않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외국인이라는 불리한 신분을 악용해 괴롭히고 사기를 치는 사업주들도 적지 않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근로 조건, 임금 체불 등으로 고통받는데도 대다수 국민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악행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는 ‘비겁한 방관자'와 다름없다.

최은영 작가는 최근 ‘한겨레21’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당장 오늘 밥상에 오른 깻잎, 상추, 고추와 식후에 먹은 사과까지 이주노동자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 또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최소한의 자각을 해야 한다.”

아리셀 화재 참사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반인권적 폭행과 차별에 방관했던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더 이상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권 단체들은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고 오래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외쳐 왔다”며 “정부와 기업, 한국 사회는 이제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고 유사한 사업장에서 또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산업안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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