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연장근로 행정해석 변경 추진”
연장근로 기준 1일 8시간→주 40시간
하루 최장 21.5시간 근무시켜도 합법
“노동자 건강권 무시한 반인권적 판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에서 연장근로 준수 여부를 따질 때 하루가 아닌 주간 단위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26일 내놨다. 요지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하루 8시간을 초과 근무 판단 기준으로 삼았던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해 현장 혼선을 막고 근로 시간 유연성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이날 발표한 설명 자료에서 “1일 8시간을 초과하였는지가 아닌 1주간의 근로 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것은 그간 행정해석으로만 규율되었던 연장근로시간 한도 계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현행 근로 시간 법체계는 물론 경직적 근로 시간 제도로 인한 산업현장의 어려움을 깊게 고민해 도출한 판결로 이해하며 행정해석과 판결의 차이로 현장에서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하여 조속히 행정해석 변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이번 판결이 바쁠 때 더 일하고 덜 바쁠 때 충분히 쉴 수 있도록 근로 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결로 본다”며 이런 취지를 반영한 근로 시간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원론적 수준의 평가로 보이지만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장시간 근무를 합법화하는 근로 시간 개편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주당 연장근로 상한선만 명시하고 하루 연장 근로 시간 상한선을 명시하지 않은 입법 공백을 틈타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판결로 교대제 근무의 특성과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대법 판결대로 하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4시간마다 30분씩 쉬는 시간을 빼고 하루 최대 21시간 30분씩 근무하도록 강요해도 사업주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틀 연속으로 43시간을 근무해도 법정 근로 시간(40시간)을 빼면 연장근로 시간은 3시간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칠 수 있는 장시간 노동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일주일 총노동 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이틀 연속 하루 15시간씩 3일을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라며 “제조, 경비, 병원, 게임, 정보기술(IT) 등 산업현장에 ‘크런치 모드’ ‘압축’ ‘압박’ 노동의 지옥이 합법적으로 열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또 “이번 판결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써 이번 판결을 근거로 경제지를 포함한 수구 언론과 사용자단체의 노동시간 개악 요구가 거세다”고 질타했다. 한국노총도 “연장근로수당을 고려한 판결이 아니며 가산임금 지급 의무가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고 있다”며 “국회는 연장근로에 대한 현장의 혼란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입법 보완에 지금 즉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장근로 기준에 대한 논란은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가 지난 7일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항공기 객실 청소 서비스 업체 대표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낸 판결에서 비롯됐다. 1·2심 법원은 근로일마다 8시간을 초과한 부분을 연장근로로 인정해 연장근무 법정 한도인 12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봤으나 대법원은 1주간의 근로 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 시간을 기준으로 연장근로 준수 여부를 판단했다. 그 결과 1, 2심과 달리 연장근로가 주당 12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근로 관행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외면한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2~3일을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1일 단위로 연장근로를 해석한 것도 이런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올 여름에도 많은 노동자가 무더위에 장시간 노동하는 중에 쓰러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다. 전문가들도 이번 판결이 연장근로 수당을 줄이거나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견강부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재계와 보수 언론은 이번 판결을 노동법 개악에 활용하려는 저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시간 개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유연 근무제 도입 요건을 개선하고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완화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인력난과 불규칙적 초과 근로에 힘겹게 대응해오던 중소기업계의 애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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