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 매장”

지지율 급락에 여론 돌리기 위한 꼼수?

성공률 높게 잡아도 20%…“시추해 봐야”

1976년 포항 석유 발견 대소동 겹쳐

증시도 대혼란…관련 없는 종목도 급등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예정에 없던 국정브리핑에 나섰다. 지난 2022년 5월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이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2월부터 동해 가스전 주변에 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 그 결과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나왔다.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다.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다.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다.” 윤 대통령은 놀라운 사건이라 “직접 국민께 보고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2024.6.3.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2024.6.3.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희망대로 유전 개발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자원 빈국에서 자원 부국으로 위상이 바뀐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윤 대통령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내용을 보면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 매장량은 순전히 가설일 뿐이다. 실제 시추해서 확인한 게 아니라 물리 탐사 단계에서 해석된 추정치다. 윤 대통령 발표에 대해 많은 국민이 반신반의하는 이유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윤석열의 포항 앞바다 유전 가능성 발표와 박정희의 포항 석유 대소동이 겹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 대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는 걸 보고 1976년의 일이 떠올랐다. 가짜로 판명된 포항석유발견 대소동이다. 유전 발견은 물리 탐사가 아니라 시추로 확인되는 것인데 물리 탐사에만 의존하여 꿈 같은 발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실패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는데 훗날 부풀려진 내용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가스전 개발의 성공률을 20%라고 했다. 시추공을 5개 뚫으면 하나 정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인데 지나치게 높게 잡은 것이다. 수십 번을 시추해도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더욱이 이번 가스전은 심해에 있다. 한 번 시추에 1000억 원 이상 비용이 들고 고도의 시추 기술이 필요하다. 산업부도 “심해 가스 유전 개발 경험이 없어 신중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인정했다. 

한국석유공사는 20년가량의 탐사 끝에 1988년 울산 남동쪽 해상에서 가스전을 발견했다. 이 가스전은 심해에 위치하지 않았는데도 시추 성공률이 10% 미만이었다. 2004년부터 상업 개발에 들어간 가스전은 2021년까지 2조 6000억 원어치의 천연가스와 원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매장량이 많지 않아 에너지 자립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2022년부터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동해에서 얕은 바다가 아닌 심해 탐사는 노무현 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때도 시도됐다. 석유공사와 호주 유전개발업체 우드사이드는 2007년과 2009년 울릉도 남쪽 동해 8광구 전체와 6-1광구 일부 지역에서 탐사를 벌였다. 당시에도 정부는 동해 2000미터 밑 심해저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발표했다. 지식경제부(현 산업부)는 2009년 8월 2차 탐사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물리 탐사에서 취득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석유나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유망구조를 다수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이후 상업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산업부가 3일 발표한 동해 심해 유전에 대한 설명은 15년 전과 많이 닮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과거에 실패했던 탐사와 다른 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과거보다 기술이 올라온 상태다. 8광구와 6-1광구 주변에 대해 자료를 축적했지만 비교적 최근 작업이 이뤄졌다.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한 시점이 작년 초, 재작년 말이었고, 그 자료를 심층 분석에 맡겼는데 성공률이 생각보다 높게 나와 오늘 발표하는 것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더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힐 정도로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그중 4분의 3이 가스, 석유가 4분의 1로 추정된다. 2027년이나 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인 2200조 원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안 장관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매장량이 충분한 유전이 발견돼 최단기간에 상업 개발에 들어간다고 해도 11년 후의 일이다. 시추에만 수조원이 들어가고 개발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직면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석유공사는 동해 울릉분지 6-1광구 심해에서 유전을 탐사하던 중 ‘이상고압대’를 만나 작업을 접었다. 이상고압대는 압력이 매우 높은 지층으로 시추 중에 폭발할 위험이 큰 곳을 말한다. 

 

 동해 석유 가스 매장 예상지역. 연합뉴스
 동해 석유 가스 매장 예상지역. 연합뉴스

이처럼 불확실성이 크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은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나서 발표해야 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채해병 특검' 거부권 행사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 한반도 근해 대륙붕에서 유전이 발견됐을 때마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나서 대단한 사건처럼 발표했다가 대부분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번 건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김칫국부터 마실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도 “목표는 결국 상업적 성공을 이뤄야 하는 것”이라며 “(오늘 발표가) 이룬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월요일 오전 느닷없이 포항 앞바다에 최대 유전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증시도 혼란을 겪었다. 석유·가스 채굴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한국석유는 대통령 국정브리핑 직후 상한가로 직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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