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과일값 37% 올라, 2위 대만의 2.5배

유가·전기료 올라 에너지도 프랑스 이어 2위

석유·곡물 수입 의존도 높고 기후변화에 취약

중동사태, 이상기후 발생하면 통제 불능 우려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이 주요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이다. 전체 물가 상승률은 동메달이지만, 과일과 채소는 2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린 단연 금메달이고, 에너지류는 ‘아까운’ 은메달이다. 더욱이 이들 분야는 수입 의존도가 높아, 중동 사태나 기후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국은 물가 관리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주요국 과일류 소비자물가 상승률
주요국 과일류 소비자물가 상승률

22일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이 올해 1~3월까지 한국과 G7(미국·일본·영국·캐나다·독일·프랑스·이탈리아)과 전체 유로 지역, 대만의 월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3.0%로 영국(3.5%)·미국(3.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독일(3.0%)이 우리나라와 같았고, 이어 캐나다(2.9%)·미국(2.8%)·프랑스(2.8%) 등의 순이었다. 일본은 2.6%, 대만이 2.3%로 집계됐다.

종합(헤드라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독일과 공동 3위이지만, 최근 국내 체감 물가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과일과 채소의 상승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1위였다. 우리나라 과일류의 상승률은 1∼3월 월평균 36.9%로, 2위 대만(14.7%)의 2.5배나 됐다. 이탈리아(11.0%), 일본(9.6%), 독일(7.4%) 등도 예년에 비하면 과일값이 많이 올랐지만 10% 안팎 수준이었다.

채소류 상승률도 10.7%로 가장 높았다. 이탈리아(9.3%) 영국(7.3%) 등이 뒤를 이었지만 한 자릿수 상승률에 그쳤다. 신선 과일·채소류를 단일 품목으로 통합한 미국의 상승률은 올해 들어 월평균 1.3%에 머물렀다.

 

주요 10개국 올해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
주요 10개국 올해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

에너지류의 가격 상승률도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노무라증권이 에너지 관련 항목(전기·가스요금, 연료비 등)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이 1∼3월 월평균 1.1%로 프랑스(2.7%)에 이어 2위였다. 하지만 2월 중 국제 유가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휘발유·경유 등에 반영되기 시작한 3월(2.9%)의 상승률은 10개국 중 한국이 가장 높았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물가 상승률 급등은 "기본적으로 국제 정세 불안 등에 따른 유가 상승이 영향을 미친 데다, 지난해 5월 전기 요금 인상의 여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앞서 2021∼2023년 에너지 가격 폭등 이후 기저효과 등으로 에너지 물가가 크게 떨어졌다"면서 "다만 프랑스의 경우 가정용 전기·가스 가격 중심으로 에너지류 물가 상승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10개국 올해 과일 채소 소비자물가 상승률
주요 10개국 올해 과일 채소 소비자물가 상승률

세계적으로 식품류와 에너지류의 높은 물가 상승률은 결국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항목 제외)와 전체 소비자물가 흐름의 격차를 크게 만들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원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근원 물가는 예상대로 둔화하고 있지만, 소비자물가는 상당히 끈적끈적(Sticky)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회의 직후에도 "그동안은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물가가 거의 같이 움직였는데, 본격적으로 차별화하고 있다"며 "현재 근원물가 상승률은 둔화하는데, 농산물 가격과 유가가 오르면서 헤드라인 물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물가 예측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물가 구조나 흐름으로 볼 때 앞으로 중동 사태나 이상기후 등이 길어질수록 우리나라가 그 어느 나라보다 물가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과일·채소 물가 급등은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뿐 아니라 하우스 등 시설재배 비중이 커지면서 에너지 가격과 농산물 가격이 연동되는 경향, 유통 구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한국의 에너지류 물가 상승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이유는 "석유 등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큰 데다 석유 수입선도 중동 지역에 편중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밀가루 등 곡물의 수입 의존도 역시 높기 때문에, 앞으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고 이상기후가 더 잦아질수록 우리나라 물가는 식품·에너지를 중심으로 관리하기 점차 더 어려워지는 취약한 구조"라며 "이 총재가 수입 등의 방법을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짐작되는데, 그런 대책을 당장 실행한다 해도 물가 안정 효과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다소 늦은 제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10개국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주요 10개국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 총재는 지난 12일 사과 등 농산물 물가 관련해 "중앙은행이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 등의 영향이라는 것"이라며 "금리나 재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제 근본적으로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 보호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인지, 아니면 수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 등을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답했다.

국제금융기관 관계자도 "한국은 에너지에서 원유 의존도가 높은 편이고, 특히 농산물 가격은 재배 면적이 작은 국내 생산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다른 주요국보다 공급측 물가 압력이 커질 요인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더구나 총선 이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압박까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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