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 83곳 한 채 더 사도 1주택자 인정
공시가 4억 이하 재산세·종부세·양도세 감면
“다주택자· 부자에게만 세금 혜택 집중”
“부동산 상승기 투기 수단 악용될 우려”
정부는 지난 2021년 10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했다. 그대로 두면 사라질 수 있는 곳을 지정 고시해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들 지역의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는 올해 초부터 ‘세컨드 홈’ 활성화 정책을 예고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주택 한 채를 보유한 사람이 인구감소지역에서 공시가 4억 원 이하 집을 사면 1주택자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를 덜 낼 수 있어 인구감소지역에 사람들이 모이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기획재정부는 15일 개최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 내용을 포함한 ‘인구감소지역 부활 3종 프로젝트’ 추진 방안을 내놨다. 소규모 관광단지 조성과 외국인 거주를 늘릴 특화형 비자 할당 확대가 나머지 대책이다.
‘세컨드 홈’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은 전체 인구감소지역 중 83곳이다. 수도권과 광역시에 인접한 부산 동구·서구·영도구와 대구 남구·서구, 경기 가평군 등 6개 지역은 부동산 투기 우려해 제외했다. 다만 인천 강화군·옹진군, 경기 연천군, 광역시 군 지역인 대구 군위군은 특례 대상에 포함됐다. 북한 접경지와 해당 지역의 낙후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세컨드 홈 활성화 정책 실행을 위해 관련 세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이달 중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오는 6월 지방세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세법이 정비되면 서울에 거주하는 1주택자가 경기 연천 등 특례 지역에서 공시가 4억 원 이하 집을 사도 다주택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다만 특례로 지정된 지역에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거나 2주택자 이상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
공시가 4억 원의 실거래가로는 6억 원 안팎이다. 인구감소지역 집값이 6억 원이 넘는 매물이 드물다는 점에서 살 수 있는 주택은 많을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취득가액이 9억 원인 아파트(공시가 9억 원)을 30년 보유·거주한 65세 1주택자는 인구감소지역에 있는 공시가 4억 원의 집을 살 때 종합부동산세는 71만 원, 재산세는 94만 원가량 기존보다 덜 내는 것으로 연합뉴스는 추산했다.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 한도가 12억 원으로 유지되고 고령자·장기보유자 세액공제를 받아 종부세가 75만 원에서 4만 원으로 최대 71만 원 줄고 재산세는 세율이 낮아지고 공정시장가액비율 특례를 받아 기존 305만 원에서 211만 원으로 94만 원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 주택을 13억 원에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양도세는 비과세 한도 12억 원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을 받아 8551만 원에서 22만 원으로 8529만 원의 세금을 덜 내게 된다.
수도권 거주자를 인구감소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세컨드 홈 정책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선 주말에만 머물기 위해 기반 시설이 부족한 지역의 집을 매입하려는 수요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10명 중 8명 이상은 거주지에서 승용차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지역에는 세컨드 홈을 두지 않겠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일시적 또는 한시적 거주만으로 인구감소 추세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이는 유럽 등 세컨드 홈이 활성화한 국가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인구감소를 막으려면 상시 거주할 사람을 유치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병원과 학교, 도로, 쇼핑센터 등 기반 시설이 탄탄해야 한다.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든 서민들은 세컨드 홈 정책의 혜택을 전혀 볼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은 세컨드 홈은 ‘나와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결국 인구 소멸 지역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중산층 이상에 수혜가 집중되는 또 다른 부자 감세이자 다주택자만을 위한 정책으로 될 소지가 다분하다.
투기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금리가 높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투기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집값이 상승기에 접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기꾼들은 각종 호재를 만들어 땅값 급등을 부추길 것이다. 먹잇감이 된 지역에 투기꾼이 몰려들면 이들의 말에 현혹돼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뿐 아니라 원주민들도 피해를 본다. 실거주를 목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집을 사려는 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인구감소지역에 방문하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소규모 관광단지 조성도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인구감소지역 내 관광단지의 지정 요건을 기존 50만㎡에서 5만~30만㎡로 축소하고 필수 시설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게 15일 기재부가 발표한 핵심 내용이다. 기존 관광단지에 적용되던 개발부담금 면제뿐 아니라 관광기금 융자 우대와 조례를 통한 재산세 최대 100% 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정부는 제천시·단양군·고창군·고흥군·영주시·하동군·남해군 등 7개 지역에서 소규모 관광단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책 역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서도 사람이 찾지 않는 ‘유령 관광지’만 더 늘리는 실책을 범할 수 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