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권, 임미애 두 후보의 건승을 기원하며

신동진 마을활동가
신동진 마을활동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당신이 행한 대로 거둘 것이다. 인과응보다. 대략 이런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며칠 전 발표된 이번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보고 생각 난 말이기도 하다. 비례대표로 선출될 것 같은 순번의 후보에 농민 후보는 딱 한 명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의 13번 순위 임미애 후보다. 1987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1992년 남편의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풀뿌리 정치를 실천해 온, 내가 얘기하는 공정귀촌의 한 모습으로 살아온 후보다. <더불어민주연합> 30명의 후보 중 22번 조원희 후보도 농업인 후보지만, <조국혁신당>의 ‘비조지민’ 선거 전략으로 인해 이번에 선출되기는 힘들 것 같고 22대 국회 회기 동안에 순번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총선 비례대표에서도 홀대받는 농민, 농촌, 농업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35명의 후보 중에는 농업인이 한 명도 없다. <녹색정의당>은 14명의 비례대표 중 5순위 김옥임 후보가 유일하다. 그러나 당선을 기대하기는 역시 어렵다. <새로운미래> 11명, <개혁신당> 10명, <자유통일당> 20명,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 25명 중에도 농업인은 한 명도 없다. 비례대표 후보를 낸 38개 정당 중 농어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2023년 창당한 <한국농어민당>이 김보경, 김도건 두 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냈지만, 두 후보가 국회의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란 힘들다. 소수자를 대변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직능대표를 뽑는다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 농민, 농촌, 농업은 각 당에서 소수로도, 직능적으로도 홀대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구에서는 농업인 출신이 있을까? 선거 결과를 아직 알 수 없으니 21대 국회의 상황을 살펴봤다. 중앙선관위 당선인 통계를 보면 농·축·수산업 직업의 당선인은 지역구, 비례대표 통틀어 1명도 없다. 아래 표는 올해 초 <국회입법조사처>가 조사한 21대 국회의원 직업배경이다.

 

위 표를 보면 도시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촌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20대 국회 때는 어땠을까? 지역구는 1명도 없다. 비례대표로 딱 1명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현권 의원이었다. 앞서 소개했던 <더불어민주연합> 임미애 후보의 남편이기도 하다. 김 후보도 이른바 386운동권 출신으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다가 고향인 경북 의성군으로 내려가 마늘 농사를 지으며 지역 일꾼으로 살았다. 그도 역시 내가 얘기하는 공정귀촌인이다. 민주당 계열 후보에게 험지로 여겨지는 경북 의성에서 2004년, 2012년 출마해 낙선하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순위 6번으로 당선됐다. 그는 의정활동 중 공익형 직불제, 소농직불금 등의 제도화에 기여해 농업ㆍ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농업인의 소득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촌 심은 데 촌이 난 것이다.

지식인 출신 정치인이 ‘투명인간’ 소농 살릴 수 있을까?

도시 지식인 출신 국회의원이 촌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열심히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다. 지난 정부 시절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한다며 태양광 패널을 논과 임야에 마구 건설한 게 그 단적인 예다.

 

위 표에서 보듯 농지 면적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산지가 많은 가평군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논이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농업진흥구역이고 보전관리지역이다. 그런데 이 논을 가로지르는 도로 건설을 이 지역 선거구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이 추진하고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가평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최근 사과 값이 올라가자,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배 수요를 대체할 수 있도록 수입 과일·농산물·가공식품에 대한 할당관세 대상 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물량도 무제한으로 풀겠다" 라며 그 방안을 제시했다. 수출을 통한 경제 성장에 익숙한 도시민들에게 반도체, 자동차 팔아 농산물 수입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그리 낯선 발상도 비합리적인 해법도 아닐 것이다. 민주적이라는 이름으로 문자 폭탄을 날리는, 정보화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의 의견을 다수의 민심으로 해석한다면, 직업군 중 정보화 역량이 가장 낮은 농업인 그리고 초고령화된 촌의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투명인간이 될 뿐이다. 기후위기가 식량위기가 되고, 식료품 공급 부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어도 도시민들은 이번의 ‘사과 파동’을 과거의 ‘배추 파동’, ‘고추 파동’처럼 종종 겪는 불가피한 또 하나의 ‘파동’ 쯤으로 간주하며 또 힘들고 팍팍한 도시 생활에 몰두할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의 농민, 농촌, 농업은 지금까지처럼 뒷전일 것이다. 아래 표에서 보듯 우리 농민의 대다수는 소농(小農)이다.

 

필요한 농산물은 수입해서 먹고, 국내 농업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공장식 생산과 이를 위해 한 농경지에 한 작물만 심는 단작(單作) 위주의 농사를 밀어붙여 왔던 것이 이제까지의 주류 농정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농민의 대다수는 소농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해내는 소농이 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나 기후위기,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 팜(Smart Farm)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산업계의 지원을 받아 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자본력이 없는 소농에게 스마트 팜은 그림의 떡이거나 부채의 늪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을 4차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보는 산업자본의 힘과 도시 중심의 행정을 농민 출신 국회의원 딱 1명이 제대로 제어할 수 있을까?

제국의 식민 침략 논리 닮은 농사의 산업화 패러다임

이제 농촌에 사람 한 명 안 살아도 스마트 팜으로 농산물 생산이 가능한 시대다. 2023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최고혁신상을 받은 업체는 자율주행 농기계를 출품했던 미국의 농기계, 농업로봇 업체 존디어였다. 줄어드는 농촌 인구를 스마트한 기계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에 첨단산업계가 열광한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다량의 농지를 사들여 미국 제1의 땅 부자가 된 일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어느 재벌 총수가 이런 땅 부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식의 이전 농사는 인제 그만두고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를 사용하는 문명화된 방식으로 농사를 짓자는 얘기는, 동학농민군에게 근대화를 해주겠다며 침략을 자행한 일제의 논리나, 의·식·주에서 자립한 농촌 마을에 근거해 펼쳤던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허물어뜨린 대영제국의 침략 논리와 얼마나 다를까? 그때의 패러다임이 지금도 계속 유효한 것인가? 우리는 물어야 한다. 농사가 산업인지 생명인지. 그리고 농사를 생명으로 생각지 않고, 농촌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생명의 공동체로 여기지 않는 패러다임을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는 또 2, 3천 년, 심지어 4천 년이 지난 후에도 어떻게 땅이 수많은 사람을 변함없이 먹여 살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우리는 이들 나라를 살펴보는 동안 거의 매일 어디를 가든 이들의 농업 환경과 관련 기술을 보고 배웠는데, 그럴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나중엔 경이로워지기까지 했다. 수십 세기 동안 자연 자원을 사용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땅에서 난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그 위대함에 놀랐으며…”

 

윗글은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히람 킹 박사가 1909년 중국, 일본, 한국을 여행하면서 이들 나라의 유기농법을 직접 보고 쓴 답사 보고서의 일부다. 킹 박사는 기계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서구식 농법의 한계를 느끼고, 지속 가능한 농업 대안을 수천 년 동안 수억 명을 먹여 살렸던 동아시아의 농법에서 찾은 것이다. 근대화의 이름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우리의 전통 농법이 100여 년 전 미국의 한 농업전문가에게는 미래의 농법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킹 박사의 답사 보고서는 <유기농업의 원류 – 중국·한국·일본, 4천 년의 농부>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었다.

극소수 농민 정치인과 <민들레>에 거는 생명·생태의 염원

우리가 모두 다 알듯이 우리 농업의 역사는 킹 박사가 극찬한 우리의 전통농법을 없애는 역사였다. 비록 전통농업, 유기농업을 지키고 보전하는 농민들이 아직 소수 남아있지만, 이 역시 노령화와 4차 산업혁명 앞에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다. 농민 출신 국회의원 딱 1명이 예견되는 22대 국회에서 그 사라진 등불을 지킬 수 있을까? 킹 박사가 위대함마저 느꼈던 수천 년 지혜의 역사를 복원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일단 검찰 독재를 조기 종식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계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않겠는가…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최근 생명, 생태, 평화에 관한 칼럼 필자 여섯 분을 새로 모셔서 “우리 시대 이 분야 담론의 중심축”을 만들고자 하니 이에 그나마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민주당 계열 후보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 험지에서 21대 총선의 멋진 패배에 이어 이번에도 용산 대통령실 출신의 국민의힘 후보에 맞서 또다시 민들레 홀씨 같은 도전을 하는 공정귀촌인 김현권 후보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척박한 토양에서 화학비료로 키운 꽃이 되기보다는 기꺼이 밑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 온 김현권, 임미애 두 후보의 건승을 기원한다.

 

임미애, 김현권 후보.
임미애, 김현권 후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