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수도자들의 대화·봉사 모임 삼소회

남성 성직자 중창단 "유엔 공연 하고 싶다"

1천600여 년 전 중국 동진의 고승 혜원은 여산 동림사에 틀어박혀 결코 산문(山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누가 찾아와도 산문 앞 개울 호계(虎溪)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유학자 도연명과 도교 도사로 이름난 육수정이 찾아와 정담을 나눴다. 즐겁고 뜻깊은 며칠을 보낸 뒤 혜원은 두 사람을 배웅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넘고 말았다.

때마침 뒷산의 호랑이가 울었다. 그제야 세 사람은 혜원이 30년간 스스로 서원하고 지켜온 안거금족(安居禁足) 동구불출(洞口不出)의 계율을 깨뜨린 것을 깨닫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 고사에서 '호계삼소(虎溪三笑)'란 성어가 나왔고 이는 유(儒)·불(佛)·선(仙) 세 종교, 나아가 종교 간 화합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이 일화를 기리는 시를 지었다. 화가들도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를 '호계삼소도', 줄여서 '삼소도'라고 한다.

 

비구니와 수녀, 원불교 정녀로 이뤄진 삼소회(三笑會) 합창단원들이 1999년 5월 8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펼칠 `북녘 어린이 돕기 삼소 음악회'를 앞두고 4월 1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연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비구니와 수녀, 원불교 정녀로 이뤄진 삼소회(三笑會) 합창단원들이 1999년 5월 8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펼칠 `북녘 어린이 돕기 삼소 음악회'를 앞두고 4월 1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연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여성 수도자들의 대화·봉사 모임 삼소회

1988년 3월 원불교의 정녀(교무), 천주교 수녀, 불교의 비구니 6명은 서울 시내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웃 종교들의 교리와 여성 수도자 생활 등을 서로 이해할 필요성을 느껴 '원(圓)·천(天)·불(佛)'이란 이름으로 등산과 대화 모임을 시작했다. 이들은 모임을 만든 김에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그해 10월 서울에서 치러지는 장애인올림픽의 기금 마련 합창 공연을 펼쳐 수익금을 장애인올림픽 선수촌에 전달했다. 종교 간 화합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이름도 호계삼소 고사에서 따 삼소회로 바꿨다.

음악회와 시화전을 열어 북한 어린이와 장애인을 돕고 에티오피아 소녀 가정에 염소 5만여 마리를 기증했다. 국내외 성지순례에도 나서 천주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다.

이들은 매달 정기모임을 열며 '자비로 충만하신 부처님', '사랑의 하느님', '은혜의 본원이신 법신불(法身佛) 사은(四恩)님'에게 세 번씩 모두 9번 절을 올리며 기도를 시작한다. 나중에는 성공회 수녀와 개신교 언님(여성 독신 수도자를 일컫는 말)도 합류했다.

 

1월 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불광출판사 제공]
1월 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불광출판사 제공]

남성 성직자들도 중창단 구성해 활동

2년 전에는 4대 종교 성직자로 구성된 남성 중창단도 '세계 최초로' 탄생했다. 만남중창단 단원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의대화 위원장 성진 스님(남양주 성관사 주지), 종교평화봉사단 이사장 김진 목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 겸 정의평화위원장 하성용 신부,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 박세웅 교무는 할리우드 인기 영화 제목을 빗대 '종교계 어벤저스'로 불린다.

이들은 2021년 12월 JTBC 예능 프로그램 '다수의 수다'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만남과 방송 출연 등을 이어오다가 이듬해 6월 동국대에서 열린 '서울국제명상엑스포'에서 명상 대담을 나눈 것을 계기로 중창단 결성에 뜻을 모았다. 출범 1년 반 만에 60여 회 공연을 펼치며 관객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지친 마음을 달랬다. 타고난 미성도 아니고 기교도 덜 다듬어졌지만, 관객은 성직자들이 이뤄내는 하모니에 감동해 박수를 보냈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이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봤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과 함께 제주에 가서 합동 공연을 열기도 했다. 그간 받은 출연료 등을 털어서 3박 4일간 아동 70여 명의 항공권과 제주 체험 비용을 댔다.

 

만남중창단의 연습 장면 [불광출판사 제공]
만남중창단의 연습 장면 [불광출판사 제공]

"BTS에 이어 유엔 공연 펼치고 싶다"

최근 출간된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불광출판사)는 이들이 각기 다른 교리의 토대 위에서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며 세상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있는지 풀어놓은 책이다. 살면서 누구나 가장 많이 떠올리는 화두인 행복, 돈, 관계, 감정, 중독, 죽음 6가지 주제로 4인4색의 가치관을 설파한다. 딱딱한 설교나 뜬구름 잡는 식의 법문이 아니라 푸근하고 친절한 화법을 택했다.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네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노래로 들려주는 화음 못지않게 조화를 이뤄낸다.

지난달 26일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네 사람은 만남중창단을 꾸려 노래하며 겪은 이야기와 책을 펴내며 느낀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도서판매 수익금을 종교인평화봉사단에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무대에 올라 종교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작정이다.

"우리의 목표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유엔에서 무대를 꾸미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종교 분쟁 지역에서 평화의 공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나아가 최종 목표는 노벨평화상 수상입니다."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책 표지 [불광출판사 제공]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 책 표지 [불광출판사 제공]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을 혐오와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평화와 구원을 입에 달고 사는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종교인이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박세웅 교무의 토로가 뼈를 때린다.

만남중창단이 그들의 바람처럼, 미사 도중 총격 사건이 벌어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산타마리아성당,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미얀마 군부의 탄압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로힝야족의 방글라데시 난민촌, 주민들이 돼지머리 올려놓고 항의 시위를 벌인 대구 이슬람사원 공사 현장 등을 돌며 화합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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