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등산로와 연결 안돼 정상은 갈 수 없는데

지자체와 지역언론 짠듯이 '의도된 오보' 봇물

덕유산 등 이미 설치된 지역에서도 불법 용인

등산로 연계 금지했는데도 ’의도된 오보‘

“현재 등산화 끈을 조이고 설악산 대청봉을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코스는 오색지구 남설악탐방지원센터~대청봉 약 5㎞ 구간이다. 해당 구간의 소요 시간은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로 조성돼 있어 체력 소모가 심한 구간이다.

결국 이른 새벽 산행에 나서지 않으면 당일치기가 어려워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개통되면 이 같은 구간을 단 15분 만에 오를 수 있게 돼, 노약자나 장애인 등도 어렵지 않게 대청봉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23.11.20. 뉴스1)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도.(양양군 제공)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도.(양양군 제공)

이 기사를 보면 누구나 오색케이블카가 완공되면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8m)을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커다란 착각이다. 2026년 상업 운영 개시를 목표로 하는 오색케이블카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하부정류장에서 설악산 끝청(1,610m) 아래 상부정류장(1,430m)까지 연결한다.

상부정류장에서 산책로로 400m 떨어진 지점에 전망대가 설치돼 설악산 등산로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1.52㎞ 떨어진 대청봉은 물론 서북주릉의 주요 봉우리인 끝청에도 오를 수 없는 것이다.

환경부의 ‘자연공원 삭도(索道) 설치·운영 가이드라인’(2008년 제정, 2011년 개정) 기본 방향을 보면 ‘주요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하되, 주요 봉우리는 피함’, ‘왕복 이용을 전제로 하고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함’이라고 규정돼 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조감도.(양양군 제공)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조감도.(양양군 제공)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역시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치될 예정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관광객은 기존 등산로를 이용할 수 없고, 전망대까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등산로를 이용해 설악산을 오른 등산객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수 없다.

김철래 양양군 오색삭도추진단장도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대청봉까지 걸어갈 수 없지만 상부정류장에서 동해 조망이라든가 기타 정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경관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다(2023.3.27 MBC강원영동).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고 대청봉을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기사는 뉴스1만이 아니다. 2023년 2월 27일자 매일경제는 ‘설악산 대청봉 가는 길…오색케이블카 들어선다’란 제목을 달았고, 머니S 역시 같은 해 11월 20일 ‘대청봉까지 15분…설악산 케이블카, 15년 만에 첫 삽’이란 엉터리 제목으로 보도했다.

2023년 11월 22일 헤럴드경제는 “태백산맥 최고봉 설악 대청봉에 노인, 여성, 어린이도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소개하며 아예 케이블카 이름을 ‘오색-대청봉 케이블카’라고 둔갑시켰다.

이밖에도 숱한 매체가 “TV에서만 보던 대청봉을 이제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렌다”는 독자와 시청자의 소감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에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차단된다는 보도는 조선일보 2023년 12월 1일자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원도가 오보 유도하고 방관하는 속내

이런 일이 벌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기자가 잘 모르거나 성의 없는 탓도 있겠지만 강원도가 착각을 유도했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강원도는 시공사도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11월 20일 서둘러 착공식을 치른 뒤 이튿날 ‘친환경 명품 케이블카를 만들겠습니다. 2026년 설악산 정상으로 초대합니다’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케이블카로 설악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비친다.

이에 대해 강원도 설악산삭도추진단 담당자는 “상부정류장 전망대에 오르면 설악산 정상이 보인다는 취지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원도는 다른 보도자료 등에서도 케이블카를 통해 기존 등산로를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있다.

언론도 ‘40년 묵은 강원도민의 숙원 사업’임을 앞세워 강원도의 ‘꼼수’에 협조하거나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오보를 내보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원도가 일단 가이드라인에 따라 케이블카를 만들고 난 뒤 탐방객들의 불만과 지역 상권 활성화 등을 내세워 등산로와 연결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일고 있다.

 

덕유산 향적봉의 설경.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게 된 이후 인파가 몰려들어 등산로 훼손이 심각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덕유산 향적봉의 설경.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게 된 이후 인파가 몰려들어 등산로 훼손이 심각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케이블카로 연결된 덕유산 향적봉은 스트레스 1위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 덕유산 국립공원에 들어선 전북 무주리조트 케이블카다. 설천봉 상부정류장과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까지의 거리는 552m. 처음에는 향적봉으로 가는 방향에 목책을 설치하고 출입금지 팻말도 만들어 놓았다.

일부 등산객이 목책을 넘어 다니기 시작하다가 2000년대 초반에는 국립공원공단이 목책을 없애고 등산로를 조성했다. 관광객 민원과 항의를 앞세운 무주리조트의 압력에 손을 든 것이다.

이제는 무주리조트 인터넷 홈페이지에 “20분만 관광 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0m 설천봉에 오르면 덕유산 정상 향적봉을 20분 만에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라고 버젓이 홍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천봉~향적봉 구간은 산악형 국립공원 144개 탐방로 가운데 이용압력(스트레스) 지수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덕유산은 자연공원 가이드라인이 생기기 이전에 등산로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이후에 설치된 케이블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남 밀양의 영남알프스 얼음골케이블카는 천황산(1,189m)·재약산(1,119m)과 연결되는 등산로를 개방한 상태에서 2012년 9월 운행을 시작했다가 상부승강장 건물 높이가 자연공원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그해 12월 운행을 중단했다. 이듬해 5월 운행을 재개하며 가이드라인에 따라 상부승강장 전망대에서 등산로로 가는 길을 막았다.

그러나 등산객의 민원, 지역 상권 활성화, 적자 해소 등을 명분으로 경남도립공원위원회는 2014년 11월 등산로 차단 조건을 해제하기로 결정해 이듬해 4월 등산로가 열렸다.

다만 연계 등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왕복권만 판매하고 있으며 상부승강장에서는 표를 팔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침 역시 나중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바꿔 달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10월 개통한 강원도 춘천의 삼악산호수케이블카는 상부정차장 주변에 450m의 산책로를 조성하고 맨 위 전망대에는 바닥이 투명한 스카이워크를 설치해 놓았다. 삼악산 정상인 용화봉(655m)으로 오르는 길은 없다.

그러나 예상만큼 관광객이 몰리지 않자 지역 언론이 도우미로 나섰다. 강원도민일보는 2022년 4월 21일 ‘춘천 삼악산 케이블카 상부정차장~용화봉 연결해야’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스카이워크에서 고개만 들면 정상이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부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더 큰 볼거리가 되지 않겠나”(관광객),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코스가 만들어진다면 관광객 유치는 물론 지역 내 상권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식당 운영자) 등의 의견을 소개하며 개통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말라고 부추긴 것이다.

지자체의 약속 파기 편드는 지역 언론

전국에 관광용으로 운영 중인 케이블카는 4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개가 2010년 이후 설치됐다. 대부분 초창기에만 반짝 인기를 누린 뒤 계속 적자를 내고 있다.

오색케이블카도 비슷한 운명을 걸을 공산이 크다. 경제성 분석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적자가 나면 다음 수순은 덕유산이나 얼음골 케이블카처럼 탐방객과 지역주민의 여론을 앞세워 등산로와 연결을 시도할 것이다.

현지 언론은 당초 약속을 깨고 가이드라인을 무력화하려는 지자체나 사업자를 비판하기는커녕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거론하며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을 압박할 것이다.

강원도는 스키 슬로프를 조성한 정선 가리왕산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원형 복원하기로 한 중앙 정부와의 합의와 대국민 약속을 파기한 ‘전과’도 있다.

우여곡절을 거쳐 곤돌라 한시적 운영에 합의했는데, 올해 말로 시한이 다가오자 또다시 강원 지역 언론들은 연초부터 ‘가리왕산 케이블카 1년…"영구 존치 총력"’(G1방송), ‘[올해 이것만은 해결하자] 가리왕산 케이블카 영구 존치와 강원랜드 규제 완화’(강원일보) 등의 기사를 통해 존치 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강원도는 쏟아지는 오색케이블카 오보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선례가 있다고 하지만 덕유산이나 얼음골 케이블카는 처음부터 약속 파기를 전제로 하지는 않았다. 언론도 ‘공범’ 역할을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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