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라마단 시작 앞두고 곳곳에서 긴장 고조

3대 종교 성지인 알아크사는 시한폭탄의 뇌관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한국 포함 전 세계에 퍼진 이슬람포비아

오는 10일 금식성월(禁食聖月) 라마단이 시작된다. 인류 최후의 예언자이자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달이어서 전 세계 인구 4분의 1이 넘는 20억 무슬림(이슬람교도)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기간이다. 금식으로 복종심과 인내심을 고취하는 한편 이웃에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고 자비를 베푼다.

그러나 라마단은 유대인과 아랍인, 무슬림과 유대교·기독교도 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사원)에서는 1990년 유대교 원리주의자들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7명이 숨진 이래 참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는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알아크사에 대한 아랍계 주민의 출입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우려를 자아낸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무슬림 이주민과 난민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이슬람 혐오, 혹은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슬람 사원 건립을 놓고 3년 넘게 공방이 계속되는 대구에서는 반대하는 주민 일부가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놓는가 하면 삼겹살구이 파티를 벌여 논란이 불거졌다.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된 이들이 최근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음에 따라 라마단에 무슬림을 비하하는 행위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라마단을 앞두고 예루살렘 구시가지 다마스쿠스의 문 광장에 조성된 라마단 장식.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라마단을 앞두고 예루살렘 구시가지 다마스쿠스의 문 광장에 조성된 라마단 장식. 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에 대한 무지가 편견을 부르고 분쟁 부추긴다

복종과 자비를 실천한다는 라마단이 어쩌다가 갈등의 씨앗이자 분쟁의 도화선으로 지목되고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됐을까. 무슬림이 금식하는 까닭은 무엇이고 알아크사 사원은 왜 시한폭탄의 뇌관이 됐을까.

신앙과 정치, 종교 계율과 일상생활을 분리하지 않는 무슬림의 전통이 다른 종교인이나 무종교인들과 갈등을 낳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무슬림을 향한 편견이 오해를 부르고 분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을 오가야 했던 중동에서는 음력을 중시했다(나일강의 범람 주기를 관찰하다가 태양력을 만든 이집트는 예외). 달의 지구 공전주기는 약 27.3일인데 지구도 태양 둘레를 돌기 때문에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삭망월)는 약 29.5일이다. 1년 열두 달을 합치면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보다 11일 남짓 모자라므로 2~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끼워 넣어 일치시키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정치적·종교적 필요에 의해 윤달을 남용하는 사례가 잦자 이슬람제국 2대 칼리프(후계자) 오마르는 서기 636년에 순수 태음력을 채택하며 헤지라(성천·聖遷, 서기 622년 7월 16일 무함마드가 근거지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김)를 이슬람력 원년 1월 1일로 선포했다. 지금은 이슬람력 1445년으로 원년부터 따지면 서기와 43년 차이가 난다. 오는 7월 8일이 이슬람력 1446년 첫날이다. 해마다 11일씩 앞당겨진다. 라마단은 ‘무더운 달’이라는 뜻으로 9월을 가리킨다. 이슬람력 올해 라마단(9월)은 우리가 쓰는 달력의 3월 10일부터 4월 8일까지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교외의 동굴에서 기도하던 무함마드는 서기 610년 어느 날 밤(권능의 밤) 가브리엘의 목소리를 들었다. 알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깨우치라는 계시였다. 그 뒤로도 23년간 신의 말씀을 듣고 114장, 6236절, 7만7432개 단어로 기록해 경전 쿠란을 완성했다. 쿠란에는 “권능의 밤이 1000개월보다 낫다”고 적혀 있다. 이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고 라마단 하순 가운데 하루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슬람력 9월을 거룩한 달로 여기고 마지막 열흘간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2023년 3월 22일 이집트 카이로의 알아즈하 사원에서 라마단 전야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2023.3.22.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3월 22일 이집트 카이로의 알아즈하 사원에서 라마단 전야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2023.3.22. 로이터 연합뉴스

단식으로 복종심 기르고 자선 실천

쿠란에는 이슬람 교리와 계율은 물론 일상생활의 수칙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이슬람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늦게 탄생해 교리의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면서도 오늘날까지 정교일치(政敎一致), 교행일치(敎行一致)가 유지돼 현대 국제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슬림은 메카 방향으로 하루 5번 기도하며 쿠란을 암송한다. 아랍어로 외지 않으면 무효다. 이 때문에 쿠란은 1400여 년간 원래 형태로 보존돼왔고, 이슬람을 신봉하는 모든 지역으로 아랍어가 퍼져나갔다.

단식은 신앙고백, 성지순례, 자선, 기도와 함께 무슬림의 5대 의무로 꼽힌다. 무슬림은 라마단에 동틀 때부터 해 질녘까지 먹고 마시는 일을 삼간다. 음식물만이 아니라 성교, 흡연 등도 금지되며 욕설이나 싸움 등 신성치 않은 행위도 모두 금기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알라에 대한 복종심과 인내심을 고취하고 ▲심신 단련을 통해 건강한 생존의 기초를 닦아주며 ▲투명한 영혼으로 초월의 경지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라마단이 아닐 때도 주기적으로 단식을 했다. 요즘도 라마단 금식기도 중에 영적 체험을 하는 무슬림이 적지 않다고 한다.

라마단 금식의 시작은 육안으로 초승달이 보일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하루 차이가 나기도 한다. 나라마다 이슬람교 당국이 저녁에 초승달을 관측해 발표하면 이튿날 금식에 돌입한다. 끝나는 날도 29일째 새벽 그믐달이 보이지 않으면 하루를 더한다. 쿠란에 따르면 동틀 때는 육안으로 흰 실과 검은 실을 구분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알아크사가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관할 구역 개념도   
알아크사가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관할 구역 개념도   

“기독교 금식기도, 스님들 일일일식과 무엇이 다른가”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 신앙의 근간이므로 이를 어기는 것은 중죄로 친다. 그러나 미성년자와 환자, 임산부와 수유 중인 산모, 50마일(약 80㎞) 이상 여행자 등은 면제된다. 때때로 신앙심이 투철한 운동선수가 라마단 기간에 국제대회 출전을 포기하거나 단식 의무를 지키며 경기를 치러 화제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면제 사유에 해당하는데, 단식 중인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는 사례도 있다.

금식 면제 대상이더라도 사유가 해제되면 거른 날만큼 금식 기간을 벌충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로 60일 금식하거나 무효된 날만큼 금식을 하면서 60명의 가난한 사람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일몰 직후 어슴푸레한 시간에 기도를 마치고 처음 하는 식사를 이프타르라고 한다. 가족 친지 모여 푸짐하게 먹는 것이 전통이다. 이에 따라 이 기간에 오히려 식료품 소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라마단이 끝난 이튿날(이슬람력 10월 1일)에는 이드알피트르(파단제ㆍ破斷祭)라는 이름의 축제를 대대적으로 열고 불우이웃을 위해 특별자선을 베푼다.

라마단에 이슬람권을 여행하다 보면 당혹스러운 일을 많이 겪는다. 문을 닫은 식당이 많을 뿐 아니라 거리에서 물과 음식을 먹어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반대로 비이슬람 국가에서 생활하는 무슬림들도 큰 불편을 견뎌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생을 중심으로 무슬림 인구가 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카자흐스탄·파키스탄·말레이시아·튀르키예 등 이슬람권 출신 이주민·유학생·관광객 등과 마주칠 기회가 많아 라마단을 둘러싼 오해나 갈등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이주화 이맘(예배 인도자)은 “기독교인의 금식기도나 스님들의 일일일식(一日一食) 수행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라마단 금식에 대해서는 편견을 지닌 사람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일부 기독교인은 역라마단 기도운동 펼쳐

아랍인의 시조는 아브라함의 큰아들 이스마엘이다. 쿠란은 이스마엘이 알라의 축복을 받은 적자(嫡子)이며 무함마드 이전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성경은 이스마엘을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갈이 낳은 서자(庶子)로 칭하고 부인 사라가 낳은 이삭을 정통으로 여긴다. 각각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기독교도는 형제이자 숙적이다.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를 비롯한 유대인 원리주의자들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교도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고 열심히 기도하는 라마단에 공격적인 성향을 더 드러낸다. 국제예수전도단 등 세계복음주의 선교단체와 교회들은 1992년부터 라마단 기간에 영적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역(逆)라마단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다. 30여 개국 약 2000만 명의 개신교인이 동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내에서도 해마다 수만 명이 참여한다. 일부 국내 신도는 서울 한남동을 비롯한 전국의 이슬람성원이나 이슬람 국가의 종교 유적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이른바 ‘땅 밟기’를 시도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황금색 지붕 건물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제단 위에 세워진 '바위의 돔'으로 불리는 알아크사 사원이다. AFP 연합뉴스  
예루살렘 구시가지. 황금색 지붕 건물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제단 위에 세워진 '바위의 돔'으로 불리는 알아크사 사원이다. AFP 연합뉴스  

무슬림 반발 부추겨 충돌 유도하는 이스라엘

무함마드가 이슬람교 창시를 선언한 메카의 카바 신전,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의 알나바위 사원, 무함마드가 가브리엘과 함께 메카에서 날아와 승천한 뒤 천국을 경험한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교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이 가운데 메카는 무슬림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꼭 순례해야 하므로 이슬람력 12월 첫 주에는 수백만 명이 몰려 압사 사고가 나기도 한다. 알아크사에서 드리는 기도는 다른 사원에서 하는 것보다 1000배의 효력이 있어 라마단 참배객이 집중된다.

요르단령이던 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상태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이슬람교·기독교·아르메니아정교·유대교가 각각 관리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알아크사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지구 동쪽에 남북으로 걸쳐 있다. 알아크사는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3대 종교의 공통 성지로 무슬림은 ‘고귀한 안식처’ 유대교도는 ‘성전산(聖殿山)’이라고 부른다.

유대교도는 이곳에 있는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한 곳으로 믿는다. 이 위에 황금빛 원형 지붕의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바위의 돔’이란 별칭이 붙었다. 이곳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왕과 유대 왕국의 헤롯왕이 지었다가 각각 바빌로니아와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된 성전 터이기도 하다. 성전 잔해인 서쪽 담장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통곡의 벽’이다. 기독교도 역시 예수의 생애와 관련이 깊은 곳이어서 거룩하게 여긴다.

이곳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다. 알아크사 사원에서 기도와 예배는 무슬림만 할 수 있고, 유대교도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서쪽 ‘통곡의 벽’에서만 기도할 수 있다. 비(非)이슬람교도의 방문은 허용되나 무슬림과 유대교도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라마단의 마지막 열흘 동안에는 금지된다.

유대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逾越節)은 유대력으로 1월 14일부터 1주일이다, 그레고리력으로는 3월 말부터 4월에 해당한다. 지난해에는 유월절과 라마단이 겹쳐 이곳에서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폭동 대응을 명분으로 경찰력을 투입, 예배 중이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때리고 쫓아내 분노를 샀다. 여섯 달 뒤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작전’이란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기습하자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에 나서 지금까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전쟁을 구실로 아랍계 주민의 알아크사 출입 제한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무슬림의 반발을 부추겨 충돌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모두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다. 그러나 받드는 신과 믿는 방식이 달라 이들 종교를 낳은 인류의 성지를 분쟁의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다. 신이 평화를 바라지 않는 것인지, 신도들이 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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