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도입했다간 '제2 부자감세' 부작용

'유리지갑' 실질임금 보전해줄 필요 있으나

세율 낮은 저소득층보다 고액 연봉자 혜택 커

“부자 증세·면세자 비율 낮추는 게 선행돼야”

4월 총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근로소득세 세율 구간을 조정하는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가 다시 소환됐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가 초래한 역대급 세수 펑크를 직장인의 ‘유리 지갑’이 메우고 있다는 비판과 맞물려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총국세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10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내내 고공 행진한 물가로 직장인들의 실질 임금이 감소한 것도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논의에 불을 지핀 요인이다.

그러나 정교한 설계 없이 무작정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는 부자 감세에 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세율이 낮은 저소득층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연봉자에게 수혜가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 세수 기반인 근로소득세가 수입이 줄면 취약층에게 쓸 재원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물가와 연동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자칫 또 다른 ‘부자 감세’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근로소득세 비중이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사실을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을 비판했다.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2013년에는 (총국세에서) 근로소득세 비중이 10.9%에 불과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22년 14.5%, 2023년 17.2%로 10년 만에 (근로소득세 증가율이) 168%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은 4월 총선 공약으로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59조 1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총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2%에 달했다.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비중이다. 근로소득세는 근로자의 월급과 상여금, 세비 등 근로소득에 부과되며 급여에서 원천징수 된다. 그래서 직장인 월급을 ‘유리 지갑’에 비유한다.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과 개인 사업자가 내는 종합소득세의 국세 수입 증가율은 최근 10년간 97% 수준에 그쳤다. 근로소득자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총국세 증가율과 비교하면 근로소득세가 2.4배 높다. 정부는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명목 임금이 상승한 결과라고 하지만 총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은 무분별한 부자 감세 탓이 결정적이다.

물가가 크게 오른 현실을 무시하고 오직 명목 임금으로 근로소득세를 매기는 방식은 고물가 상황에서 실질 임금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월평균 실질 임금은 351만 9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만 원(0.9%) 하락했다. 경기 침체에도 명목 임금은 오르고 소비자물가가 큰 폭으로 뛰다 보니 근로자의 실질 임금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직장인들의 처분 가능 소득이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소비가 감소하며 내수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가 상승분만큼 근로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면 내수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근로소득세 수입, 총국세 대비 비중 추이
근로소득세 수입, 총국세 대비 비중 추이

작년에도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고 명목 임금도 꾸준히 오르자 수면 아래 잠복했던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하지만 물가연동제 도입은 세제의 전체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난제 외에도 저소득 근로자보다는 고연봉자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과 대규모 세수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도입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어려움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저소득 직장인은 각종 공제를 통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이 면세자에 속한다. 이들은 물가연동제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022년 세법 개정안에서 6% 세율 적용 구간을 1200만 원 이하에서 1400만 원 이하로, 15% 세율 구간을 1200만~4600만 원에서 1400만~5000만원 이하로 각각 올렸다. 명목 임금 상승을 반영해 소득이 적은 근로자의 세금 부담을 완화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 조정만으로 줄어드는 세수가 2023~2027년 총 19조 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고소득 직장인도 세금을 덜 내게 될 수 있다. 물가 급등기에 세수 감소가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근로소득세 물가연동제는 폭넓은 세수 기반 확보를 통해 취약층 지원 등 사회적 안전망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도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고소득 전문직과 개인 사업자의 탈세를 막고 부자 감세가 아닌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를 철회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낮췄던 법인세와 다주택자 등 부동산 관련 세금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불합리한 세액 공제 제도를 정비해 면세자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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