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대사 "즉각 휴전 없으면 제노사이드 못 막아"
안보리 '휴전' 빠진 가자 인도 지원 확대 결의
미국 "안보리, 하마스 비난 또 실패 소름 끼쳐"
러시아 "미, 진짜 정체 드러내…승리 아닌 비극"
이집트, 안보리에 구속력 있는 휴전 결의안 촉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마침내 '적대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이란 단어를 언급하기까지 75일이 걸렸다. 즉각적 휴전이 없으면 (이스라엘에 의한) 전쟁 범죄, 인류를 향한 범죄,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막을 길이 없다." 팔레스타인의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대사는 2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 인도주의 지원 확대 결의안'(2720)이 통과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휴전'이 빠진 결의안에 대한 불만의 표시임은 물론이다.
팔 대사 "즉각 휴전 없으면 제노사이드 못 막아"
안보리, 가자 인도주의·재건 조정관 임명 요청
결의안 2720은 가자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규모 확대를 골자로 한다. 안보리 공식 발표에 따르면, 안보리는 가자 전역의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즉각적이고 안전하며 방해받지 않는 대규모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 촉진하며 직접 도달하게 할 것을 분쟁 당사자들에 요구했다. 이를 위해 가자로의 모든 구호품 배송을 촉진·조율·모니터링·검증하는 고위 인도주의·재건 조정관을 임명토록 유엔 총장에게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결의안은 분쟁 당사자들이 국경 통과를 포함해 가자 전역에 대한 모든 가능한 접근로를 허용하고 활성화할 것을 요구했다. 안보리는 "이는 절박한 처지의 가자 민간인에게 연료와 식량, 의약품 공급 및 비상 대피소 지원을 비롯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구호 요원들이 우회하지 않고 가장 직통으로 도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집트 육로를 통한 가자로의 구호품 전달도 이스라엘의 감시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주의적 물품 전달이 필요량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세계식량계획(WFP)은 전했다. 또한 결의안은 2712 결의안에 담긴 △ 모든 당사자의 국제인도주의법을 포함한 국제법상 의무 준수 △ 즉각적이고 무조건적 모든 인질 석방 등의 요구를 재확인하고, 인도주의적 필요성을 충족할 만큼의 연료를 가자에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유엔 인도주의·재건 조정관에게 20일 내로 작업 결과를 보고한 뒤, 내년 9월 30일까지 90일마다 보고토록 요청했다.
안보리 '휴전' 빠진 가자 인도 지원 확대 결의
'적대행위 중단' 요구, 미국 비토 경고로 배제
아랍권을 대표한 아랍에미리트(UAE)가 처음 제시한 초안에 담겼던 '적대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을 요구하는 내용과 배송되는 구호품의 감시 권한을 유엔에 주는 내용은 이스라엘 대변자인 미국이 비토(거부권 행사)를 경고하면서 결국 최종안에 넣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확대된 인도주의 접근을 허용하기 위한 긴급 조치(urgent steps)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지속가능한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여건 조성을 촉구한다"로 낙착됐다. 표결에 앞서 러시아가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확대된 인도주의 접근을 허용하기 위한 긴급한 '적대행위 중지'(suspension of hostilities)와 지속가능한 적대행위 중단을 향해 긴급 조치를 촉구한다"는 수정안을 내놨지만, 미국의 비토로 좌절됐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대사는 UAE 초안에 대한 미국의 '사보타주'(방해)를 비난했다. 네벤쟈는 "미국은 안보리를 상대로 자기 맘에 드는 텍스트를 받거나 또다른 비토를 당하거나란 식의 최후통첩을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이사국들은 끝까지 '몽니'를 부리는 미국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당장 생사의 기로에 선 가자 주민의 인도주의 위기를 고려할 때 이 정도라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미국 "안보리, 하마스 비난 또 실패 소름 끼쳐"
러시아 "미, 진짜 정체 드러내…승리 아닌 비극"
이에 따라 '휴전'이나 '적대행위 즉각 중단' 내용이 빠지고 인도주의 지원 확대 내용만 담은 이번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만 기권하고 나머지 13개국이 찬성함으로써 일주일 줄다리기 끝에 채택됐다. 결의안 통과 후 미국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대사는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곳에 도달했다"며 "인도주의에 초점을 맞춘 강력한 결의안을 만들어낸 결과, 안보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바다에 희미한 희망의 빛을 줄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제인도주의법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마스에도 적용돼야 한다. 다시 한번 안보리가 하마스의 끔찍한 10·7 테러리스트 공격을 비난할 수 없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네벤쟈 러시아 대사는 "극히 약한 목소리로 가자의 적대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것도 차단함으로써 미국은 세계에 자기의 진짜 정체를 드러냈다"며 "안보리에 오늘은 승리의 날이 아니라 비극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표결에 앞서 UAE의 라나 자키 누세이베 주유엔 대사는 제안 설명에서 휴전과 적대행위 중단 등 핵심이 빠진 결의안에 대해 "외교 세계에서 종종 도전은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전면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작업을 절대로 싫증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도 계속 요구해 나갈 뜻을 밝혔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스라엘 옹호' 미·러 대척점…중간에 영·프·중
미국 → 영국 → 프랑스 → 중국 → 러시아 순
이날 결의안 통과후 가자 전쟁의 주요 이슈들과 관련한 5개 상임이사국의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이스라엘 옹호를 기준으로 '정도'에 따라 미국 → 영국 → 프랑스 → 중국 → 러시아의 순서가 된다. 먼저 '즉각 휴전'을 두고는 미국은 비토, 영국은 기권인 데 반해, 프랑스와 중국, 러시아는 찬성하고 있다. 다음은 이스라엘인 1140명의 사망자와 인질 250명을 초래한 10·7 하마스의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안보리 규탄이다. 미·영·프 서방 3국은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만, 중·러는 굳이 거론하지 않는다. 셋째로 가자 주민 최소 2만 명의 사망자와 6만 명의 부상자, 200만 명의 강제 난민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자위권" 인정 여부다. 미·영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뒤늦게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촉구하며 자위권 지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은 자위권은 인정하지만 도를 넘었다고 본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마크롱은 지난 20일 프랑스 5TV를 통해 "테러리즘과의 효과적 전투가 가자를 초토화하거나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넷째로 무력 분쟁과 군사적 점령 과정에서 '전쟁범죄'를 규율하는 법인 국제인도주의법(전쟁법) 준수 관련 언급을 안보리 결의안에 넣는 부분이다. 미·영은 반대하고 프·중·러는 찬성한다. 끝으로 하마스가 억류한 모든 인질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 석방은 다섯 상임이사국 모두가 지지하고 있다.
이집트, 안보리에 구속력 있는 휴전 결의안 촉구
"오늘의 결의안 인도주의 이슈에 국한 아니다"
이날 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미국이 기권한 것은 '하마스 규탄' 부분이 빠진 데 대한 불만이, 러시아가 기권한 것은 '휴전이나 적대행위 즉각 중지' 부분이 빠진 데 대한 불만이 각각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다이 빙 주유엔 차석대사는 발언을 통해 "결의안의 중요 대목들을 몇 군데 수정하면서 이사국들의 기대에 못 미치지만, 이번 안보리의 행동은 적어도 희미한 희망의 빛을 제공한다"며 "그 빛이 진정으로 가자 주민에게 느껴지려면 결의안이 효과적으로 이행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적 해결 전망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길은 오직 휴전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야마자키 카즈유키 주유엔 대사는 재앙적 인도주의 위기에 처한 가자주민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안보리의 의미있는 긴급 행동과 모든 인질의 즉각적 무조건적 석방을 촉구한다면서 "의미 있는 인도주의 작전을 허용하려면 교전과 폭격을 즉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번 결의안 협상 과정에서 중재 역할을 했던 이집트의 오사마 마흐무드 압델칼렉 마흐무드 주유엔 대사는 "이것은 첫 걸음"이라며 "가자에서 무조건 적대행위를 중지하라는 압박을 이스라엘에 가하는 것을 포함해 다른 많은 것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보리가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휴전과 관련한 구속력 있는 결의안을 실행해야만 인도주의 위기를 낮추려는 모든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흐무드 대사는 "오늘의 결의안은 인도주의 이슈에 국한된 게 아니다"라며 국제법 준수, 민간인 강제 이주 금지, 가자와 서안의 팔레스타인 영토 통합성 존중, 팔레스타인 인민의 정당한 열망 실현 등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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