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①] 네타냐후-하마스 적대적 공생의 역사
네타냐후 "팔 국가 좌절 원하면 하마스 강화해야"
10·7공격 방치 정황…'이스라엘판 총풍' 의심마저
'두 국가' 오슬로 평화협약 파탄에 하마스 필요
세계는 새해맞이 '불꽃놀이'…가자엔 전투기 '폭격'
가자 전쟁이 시작된 지 2일로 88일째다. 그러나 휴전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자 주민의 처참한 인도주의 위기 상황을 외면한 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 완전 섬멸'을 내걸고 전쟁 강행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있어서다. 이스라엘군은 전 세계가 2024년 새해를 맞으면서 축하 불꽃놀이를 할 때 가자 중부에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했다. 지금까지 가자 주민 사망자는 2만2000명에 육박하고 주민 220만 명 중 70% 이상이 강제 난민이 됐다.
세계는 새해맞이 '불꽃놀이'…가자엔 전투기 '폭격'
가자 사망자 2만 명 육박…주민 70%가 강제 난민
가자 전역을 뒤덮고 요르단강 서안에 이어 인근 중동 지역으로 번지는 '전쟁의 화염'에 첫 불씨를 던진 것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였다. 하마스는 10월 7일 동시다발로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을 가해 민간인 1130명을 살해하고 250명의 인질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네타냐후 정권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 공습과 지상 작전을 벌여 가자를 거의 초토화시켰다. 민간인 여부나 병원, 학교, 교회, 주택, 모스크(회교사원), 난민촌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망자 비율만 따져도 가자 주민 사망자가 이스라엘의 20배 가까이에 이른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살상은 이스라엘 시민과 인질들도 가리지 않았을 정도로 잔혹했다.
10·7 사태를 복기해보면, 네타냐후 정권이 하마스의 공격 준비 사실을 1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10월 7일 직전에도 이스라엘군의 국경 감시 초소들에서 하마스의 공격 훈련 동향과 경고 메시지를 정보 채널을 통해 상부에 수시로 전달했지만,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각료들이 이를 '무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은 1년도 더 전에 하마스 공격을 알고 있었다'란 제목의 11월 30일 자 기사에서 하마스의 세부적 공격 시나리오를 담은 암호명 '제리코 장벽'이란 40쪽짜리 문건이 1년도 더 전에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 공유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CNN은 닷새 후인 10월 12일 하마스 전투원들이 시야가 탁 트이고 감시망을 갖춘 철저히 요새화된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1.6㎞도 안 되는 가자 지역에서 치명적인 공격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팔 지우기' 위해 10·7 공격 의도적 방치 정황
10ㆍ7공격, 네타냐후 정권에 '불감청 고소원'
네타냐후는 자국민 1130명을 죽이고 250명의 인질을 납치한 '야만적인'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정보를 받고서 '오판'한 걸일까, 아니면 고의로 '방치'한 것일까가 여전히 의문이다. 그 진실은 네타냐후만 알겠지만, 미국과 영국을 뺀 국제사회 절대다수의 설득과 압박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금도 무자비한 공세를 강행하는 것을 보면 가자, 나아가 서안 등 점령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모두 내쫓고, 팔레스타인을 지우려는 '큰 목표'를 갖고서 의도적으로 '방치'한 정황이 짙다. 감히 요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였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 국제경제컨설팅 업체 디퍼런스그룹의 단 슈타인보크 설립자는 '무엇이 가자-이스라엘 재앙을 초래했나'란 제목의 월드파이낸셜리뷰 기고문(12월 19일 자)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구는 10월 7일 실패하지 않았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임박한 위협을 경고하는 등 제 일을 했다. 실패한 건 정치 지도부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슈타인보크는 "의도했든 아니든 (네타냐후가) 이를 방치한 것은 가자인들을 내쫓고 서안의 팔레스타인인 축출을 위한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가자와 팔레스타인 주권을 없애려는 극우 정부의 암묵적인 정치적 목적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와 극우 광신자 동맹이 이런 결과까지 염두에 두고 고의로 '방치'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결과는 그리로 수렴하고 있는 얘기다.
네타냐후의 '오판' 가능성도 있다. 슈타인보크에 따르면, 1년도 전에 하마스의 상세한 공격 시나리오를 확보하고, 실제 공격 직전에도 하마스의 공격 훈련 동향과 경고 메시지를 받고도 철저히 '무시'한 데는 완벽하게 요새화된 이스라엘을 상대로 그런 규모의 대담한 공격을 실행할 능력이 하마스에는 없고, '감히 그렇게 하겠느냐'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강화한 것은 "반세기의 점령이 대중 여론뿐 아니라 (정보) 분석·평가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하마스가 공격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그들"은 "우리"만큼 창의적일 리가 없다는 관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인의 의식 저변에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오늘의 하마스'를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네타냐후
아라파트 PLO 대항마로 하마스 낙점…'이이제이'
이스라엘 정권, 특히 네타냐후와 하마스 간의 '공생', 나아가 '적대적 공생'의 역사는 반세기를 지날 정도로 깊다. '오늘의 하마스'를 키운 것은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이었다. 하마스의 전신인 '알-무자마 알-이슬라미'(이슬람 센터)는 1970년대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의 지원 속에 가자에 설립됐다. 그 지지자 중 하나가 '휠체어를 탄'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다. 그는 미래에 하마스의 지도자로 떠올랐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군은 서안과 골란고원과 함께 가자를 점령했고 2005년에서야 가자에서 완전히 철군했다. 1970~80년대에 이스라엘은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의 무장 정파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당시 PLO는 여객기를 납치하고 요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이 PLO 대항마로 낙점한 게 바로 야신을 비롯한 이들 이슬람주의자였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구사한 셈이다. 이들은 점령지역에서 PLO가 극심한 폭압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가자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했다. 이 이슬람 조직의 출발은 코란 등 이슬람교 전파와 함께, 병원, 학교 건립 등 자선·사회사업 단체였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인의 제1차 인티파다(봉기) 와중인 1988년 이스라엘 국가를 부정하고 반유대주의를 내건 하마스로 변신했다. 하마스는 1989년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살해했고, 1996년에는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은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슈타인보크는 "네타냐후에게 하마스는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manna)였다. 1996년 하마스는 민간인 공격 작전을 벌였고, 이는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보수, 극우 세력의 부상을 도왔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1996년 처음으로 비로소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두 국가' 오슬로 평화협약 파탄에 하마스 필요
"네타냐후에게 하마스는 하늘이 내려준 만나"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1995년 암살)와 아라파트 의장(2004년 암살) 간의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됐을 당시 야신은 수감 중이었지만, 총리가 된 네타냐후는 야신을 석방했다. 석방한 후 야신을 요르단으로 추방했던 네타냐후는 1997년 말 '영웅'으로서 야신의 가자 복귀를 허용해줬다. 그 이후 야신은 2004년 3월 이스라엘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이스라엘인들을 상대로 자살테러 공세를 폈다. 야신의 석방과 가자 복귀를 도운 것은 네타냐후로선 뭣보다 '두 국가 해법'을 약속한 1993년의 오슬로 평화협약을 파탄내는 데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하마스가 절대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점령지역을 포함해 거대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선 '두 국가 해법'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네타냐후 등 이스라엘 극우 세력의 생각이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가 이-팔 전쟁의 평화적 해결은 '두 국가 해법' 외에는 없다고 한목소리로 압박하지만, 네타냐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슬로 협약에 따른 하나의 실행 조치로 이스라엘 정착촌들과 가자 대부분은 팔레스타인당국(PA)에 양도됐으며, 이스라엘 극우 세력의 거센 반발에도 정착촌들은 2005년까지 철수를 완료했다. 야신은 피살됐지만, 하마스는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가자와 서안에서 모두 44.5%를 득표해 파타를 제치고 제1당으로 올라섰다. 두 무장 정파 하마스와 파타는 권력 분점을 놓고 벌인 유혈 충돌 끝에 가자는 하마스가, 서안은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각각 통치하면서 지금까지 흘러왔다. 하마스가 가자를 통치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가자에 대한 육상, 해상, 상공 봉쇄에 들어갔다. 가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열린 거대한 감옥'으로 변모하게 됐다. 가뜩이나 병든 가자의 경제는 황폐해졌음은 물론이다.
네타냐후 "팔 국가 좌절 원하면 하마스 강화해야"
오죽하면 하마스 공격 '유도' 의혹 마저 제기될까
네타냐후는 그러면서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계속 살려둔 이유를 고백했다. 슈타인보크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2019년 3월 자신의 리쿠드당 소속 의원들에게 "팔레스타인 국가를 좌절시키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마스를 강화하고 하마스로의 자금을 이전해주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이는 가자의 팔레스타인인과 서안의 팔레스타인인을 격리하는 우리 전략의 일환이다"라고 말했다. 5년도 채 되지 않은 얘기다. 기회 있을 때마다 네타냐후가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할 때까진 휴전은 없다"고 발언하는 것과는 전혀 그 기조가 다르다. 그의 진짜 목표는 하마스 완전 제거가 아니라, 전쟁의 지속을 통한 가자 초토화와 점령일 공산이 크다. 슈타인보크는 "네타냐후 정부는 그들이 하마스를 활용할 수는 있어도 하마스는 자신들을 활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그 정보 실패가 (진짜) 실패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하마스 공격의 의도적 방치 의혹, 나아가 만에 하나 유도 의혹을 제기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1997년 대선 직전에 국민의힘 계통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측 일부 인사가 지지율을 올리고자 북한측 인사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시위를 요청했던 이른바 '총풍사건'의 이스라엘판일 아닐까란 의심마저 들 정도다. 적대적 공생의 대표적 사례다. 가자에 대참극을 벌이면서까지 네타냐후와 그의 극우 광신자 동맹이 실현하고자 하는 '악마의 계획'은 뭘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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