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안보 패키지 '거래' 틀 한국과 유사
전략적 방위협정·원전 건설·F-35 판매 허용
'주요 비나토 동맹국'…또다른 80년 이정표
트럼프, 이스라엘 무시하고 사우디 편들어?
"이스라엘, 1945년 합의 때 지도에 없었다"
루즈벨트-압둘아지즈, 석유-안보 교환 합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총리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8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양자 관계 격상에 그치지 않고 중동 지역 정세에 큰 영향을 줄 몇 가지 주요 합의에 도달했다.
사우디의 공식 언론 발표에 따르면,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 전략적 방위협정(SDA) 서명 △ 미국-사우디 AI(인공지능) 전략적 파트너십 출범 △ 민간 핵에너지 협력 협상 완료 공동 선언 서명 △ 핵심 광물과 공급망 안보 관련 새 프레임워크 서명 △ 사우디의 대미 투자 승인 가속화 합의 △ 투자 포럼에서 발표된 2700억 달러 규모의 상업 거래와 양해각서들(MoUs)이 거론됐다.
미-사우디, 전략적 방위협정·민간 원전 허용
전략적 파트너십 격상, 또다른 80년 이정표
이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빈 살만은 트럼프와 직접 대면해선 1조 달러(약 1450조 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지난 5월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 때 약속했던 6000억 달러에서 대폭 늘린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는 반색했다. 트럼프는 "당신과 친구가 된 건 큰 영광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악관 팩트시트(설명 자료)를 보면 같은 내용이지만, 그 순서가 거의 뒤바뀌어 나온다. 팩트시트에서 백악관은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이 기존 6000억 달러에서 1조 달러로 확대 약속을 한 점을 맨 앞에 내세운 뒤 △ 민간 핵 협력 합의 △ 핵심 광물 협력 진전 △ AI 양해각서 합의들을 거론한 다음에, 전략적 방위협정(SDA) 서명 사실을 전했다. 사우디 측이 '홍보'의 주안점을 안보와 AI 및 민간 핵협력 등에 두고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 등 경제협력 부분은 후반부로 돌린 것과는 달랐다. 미-사우디 전략적 방위협정(SDA)에 대해 백악관은 "80년 넘는 국방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중동 전역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역사적 협정"이라고 자평했다.
트럼프, 사우디 '주요 비나토 동맹국' 지정
F-35, 첨단 MD, 현대식 탱크 300대 판매
이번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에 중동 지역 내 최고의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사우디를 '주요 비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MNNA)으로 공식 지정했다. SDA에 따른 안전 보장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수준의 '자동 방어 보장'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무기 판매, 미국 무기 저장 권한 확대, 방산 연구·개발 협력 등 여러 군사적, 전략적 특권을 얻게 된다.
그 연장선에서 사우디는 중동에선 현재 이스라엘만 보유하고 있는 F-35 스텔스 전투기의 구매를 '아랍국가로선 최초로' 미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F-35와 함께, 첨단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현대식 미제 탱크 약 300대 등의 대규모 첨단 무기들도 포함됐다. 이 같은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무기 판매 승인 결정은 일차적으론 미 방위 산업 성장 등 미 국익에 따른 것이다. 또한 한국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한 것처럼 트럼프는 사우디를 상대로도 방위비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하지만, 사우디로선 역대 미 행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핵무기와 첨단 무기를 갖춘 채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구가해온 절대적인 군사 우위를 허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잖아도 역대 미 행정부와 의회에선 이스라엘의 중동 내 군사 우위 약화나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로 F-35 판매를 꺼려왔다.
민수용 원전 건설도 사우디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그것이 이번에 양국이 민간 핵 협력 협상이 완료됐다고 선언하고 앞으로 '협정' 체결로 나아갈 것임을 약속한 것이다. 사우디에 '미국 기술'을 활용한 원전 건설이 허용된 셈이다.
1조 3천억 불 대미 투자에 최고 안전 보장?
트럼프, 이스라엘의 '수교 조건' 요구 무시
이에 백악관은 "이는 사우디와의 수십 년에 걸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핵에너지 파트너십을 위한 법적 토대를 구축한다"고 밝히고 미국의 참여와 강한 핵비확산 기준의 준수를 강조했다. 그러나 중동에서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핵무기를 보유 중이고, 훗날 이란이 핵무기 보유에 성공할 경우, 사우디 여기 비확산 약속을 벗어나 핵무기 개발로 나아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 전 사우디는 핵보유국인 파키스탄과 방위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사우디에 세계 최고 수준의 AI 시스템, 고성능 컴퓨팅, 엔비디아의 첨단 칩 접근권 부여했다고 사우디 측은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빈 살만은 1조 달러 대미 투자 약속, 2700억 달러 상업 계약 및 MoU 체결, 미국 무기 구매, 방위비 분담 둥의 천문학적 '돈'을 투입하는 대신,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과 F-35 구매, 원전 건설 및 핵의 평화적 이용 허가, '주요 비나토 동맹국' 지위를 얻고 귀국하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킨 모양새가 됐다. 이제 사우디는 미국산 무기를 단순히 구매하는 '단골'이 아닌,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안보 파트너'로 격상된 셈이다.
2018년 10월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왕따'였던 빈 살만 왕세자는 7년여 만에 미국을 방문해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이번 방미는 '공식 실무 방문'이었는데도, 트럼프는 21발의 예포와 환영식에 의장대 도열과 군악대 연주, 미공군 전투기 백악관 상공 환영 비행, 대통령 공식 만찬 등 '최고 국빈'으로 대접했다.
1945년 2월 루즈벨트-압둘아지즈 '퀸시 합의'
석유-안보 교환…"이스라엘은 지도에 없었다"
전략적 방위협정(SDA)을 포함한 이번 트럼프-빈 살만의 '합의'를 미-사우디 관계의 기본 틀을 규정한 80년 전의 '퀸시 합의'(Quincy Agreement) 만큼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45년 2월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사우디의 압둘아지즈 국왕은 미 해군 순양함 퀸시호에서 만나 △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 미국은 사우디 왕정체제의 안보를 지원하고 안정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했고, 이 전략적 파트너십이 80년 간 지속됐고 이번에 전략적 방위협정으로 양자 관계가 한 차원 더 높게 격상되면서 또다른 80년의 이정표가 만들어졌다는 해석이다.
사우디의 대미 밀착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 러시아는 물론,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 등이 전략적 부담을 당연히 느끼겠지만, 대놓고 말은 못해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권에게 가장 충격이 됐지 싶다.
그동안 미국은 이번에 약속한 전략적 방위협정과 F-35 판매, 민간 원전 건설과 평화적 핵 이용 등은 사우디가 미국과 '영혼의 동맹'이라 불리는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의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번에 이스라엘도 그걸 조건으로 요구했지만, 트럼프는 무시했다. 사우디의 빈 살만이 이스라엘 국교 정상화는 "실현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향한 되돌릴 수 없는 경로"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고 기존의 원칙을 고수했고 결국 트럼프가 사우디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스 매체 뱅킹뉴스는 20일 '트럼프, 가자 문제와 사우디를 분리하다'란 기사에서 "워싱턴은 다시 한번 사우디를 중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내'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을 희생해서? 그렇다면 이스라엘은?"이라고 반문한 뒤 "미국-사우디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인 80년 전엔 이스라엘은 지도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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