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도 이스라엘군 가자 공습해 250명 학살

교황 "무고한 민간인들 목숨 끔찍하게 앗아가"

네타냐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울 것"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 올해는 유령도시 방불

교황, 무기 산업 비판…한반도 대화·화해 소망

"오늘 밤 우리 마음은 전쟁이란 헛된 논리와 무력 충돌에 의해 '평화의 왕자'(예수)가 다시 한번 거절당하는 베들레헴에 있다. 오늘날에도 그분은 이 세상에서 거처할 곳을 못 찾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현지시간) 약 6500명의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행한 성탄 전야 미사 강론을 통해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에 관한 성서의 얘기는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올해 베들레헴은 "슬픔과 침묵의 장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 강론을 하기 전에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23. 12. 25 바티칸 제공.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 강론을 하기 전에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23. 12. 25 바티칸 제공. [AP=연합뉴스]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 "슬픔과 침묵의 장소"

성탄절에도 이스라엘 가자 공습…250명 살해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 도시 베들레헴은 성탄절 연휴가 되면 축제 인파로 북적였지만, 올해는 유령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여파로 성직자들은 처음으로 성탄 전야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그 대신에 촛불을 켜고 찬송가를 부르며 가자의 평화를 기원하는 철야 기도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성탄절인데도 가자에 더 세찬 공격을 가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5일 성명을 통해 "지난 24시간 사이 250명이 숨지고 5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로써 10·7 사태 이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만674명, 부상자는 5만4536명으로 집계했다. 24일 밤 이스라엘군이 가자 중부의 알마가지 난민캠프를 공습해 최소 70명이 숨졌으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였다. 성탄절을 몇 시간 앞둔 시각에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25일 새벽까지 이어져 지역 주민들이 개전 이후 '최악의 밤'을 보냈다고 팔레스타인 언론들은 보도했다. 알마가지 인근 알부레이즈와 알누세이라트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8명이 숨지고 남부 칸 유니스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3명이 숨지는 등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성탄절을 몇시간 앞둔 24일 밤부터 24일 새벽까지 이스라엘군이 가자 중부의 알 마가지 난민캠프를 공습해 최소 70명이 숨졌으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였다. 2023. 12. 25 [AFP=연합뉴스] 
성탄절을 몇시간 앞둔 24일 밤부터 24일 새벽까지 이스라엘군이 가자 중부의 알 마가지 난민캠프를 공습해 최소 70명이 숨졌으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였다. 2023. 12. 25 [AFP=연합뉴스] 

교황, 이스라엘 무차별 가자 군사 작전 비판

"무고한 민간인들 목숨 끔찍하게 앗아가"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은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끔찍하게 앗아가고 있다"며 "군사 작전 중단을 간곡히 요청한다. 인도주의 구호 제공에 길을 열어줌으로써 절박한 인도주의 상황에 대한 해결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내 마음은 10월 7일 혐오스러운 공격의 희생자들로 인해 비통하다"며 억류 인질들의 즉각 석방을 호소한 뒤 "전쟁으로 생명이 파괴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팔 분쟁은 "강한 정치적 의지와 국제사회 지지를 바탕으로 당사자들 간의 진지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오늘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가 학살되고 있나! 어머니의 태중에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전쟁으로 어린 시절이 부서진 모든 작은 아이들에서. 그들은 오늘의 작은 예수들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정의가 '힘의 과시'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예수는 힘의 과시를 통해 위에서부터 불의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불의를 없앤다"고 말했다. 특히 교황은 전 세계 분쟁에 기름을 붓는 무기 산업에 경각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무기 생산과 판매, 교역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는가?"라면서 "전쟁의 꼭두각시들을 조종하는 이익과 이윤을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해 말하고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와 함께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시리아와 레바논, 예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을 거론한 뒤 폭력과 죽음을 압도하는 인도주의적 자세, 대화와 안보를 호소했다. 특히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대화와 화해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의 긴장이 풀리기를 기원한다"며 "대화와 화해는 지속적인 평화의 여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에서 성탄절을 앞두고 한 교회의 작은 동굴 돌더미 속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놓여 있다. 2023. 12. 24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에서 성탄절을 앞두고 한 교회의 작은 동굴 돌더미 속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놓여 있다. 2023. 12. 24 {로이터=연합뉴스]

네타냐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울 것"

연합뉴스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여당인 리쿠드당 의원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며칠 안에 전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울 것"이라며 "전쟁은 오래 걸릴 것이고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덧붙였다. 네타냐후는 뒤이은 크네세트(의회) 연설을 통해 "군사적 압박이 없었다면 100명 넘는 인질의 석방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남은 모든 인질의 석방 역시 군사적 압박 없이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영상으로 공개한 성명에서도 그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전쟁의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전사자와 관련해서는 "전쟁에는 우리 영웅적인 군인들의 목숨을 비롯해 무거운 대가가 따른다"며 "그러나 우리는 승리를 얻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병사도 지난 이틀 사이에 15명이 숨졌으며, 지상전 시작 이후 이스라엘군 전사자는 156명으로 늘었다.

 

요르단강 서안도시 베들레헴에서 열린 성탄 전야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가자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고 씌어 있다. 2023.12.24 [AFP=연합뉴스]
요르단강 서안도시 베들레헴에서 열린 성탄 전야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가자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현수막에는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고 씌어 있다. 2023.12.24 [AFP=연합뉴스]

이집트, 3단계 중재안 제시…이스라엘 대응 주목

한편 이집트는 가자에서 적대행위 중지와 인질 추가 석방을 포함하는 3단계 중재안을 이스라엘에 제안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단계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 가운데 여성과 미성년자, 노인 남성 등 40명을 석방하고 2주간 전투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의 대가로 팔레스타인 포로 120명을 풀어주게 된다. 적대행위가 중단되는 2주 동안 이스라엘 탱크는 철수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의 가자지구 진입이 허용된다. 2단계에는 이집트 중재 아래 하마스와 파타 등 여러 팔 정파가 참여하는 '팔레스타인 국민 회담'을 열어 전후 가자지구에 긴급 안보 정부 수립을 논의한다. 기술관료로 구성되는 이 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전후 재건, 총선·대선 준비 등을 감독하게 된다. 마지막 3단계는 완전하고 포괄적인 휴전으로, 이스라엘 군인을 포함한 가자지구 억류 인질 전원과 팔레스타인 죄수가 맞교환 석방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군하고 난민들의 귀향을 허용한다. 중재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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