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군사작전 즉각 중단·강제 이주 반대 합의

팔 주민의 국가 수립과 자결권 한목소리 지지

베이징서 첫 3자 공동위… 경제·안보 밀착 가속화

왕이 "중동 운명 스스로 결정…외세 배격하라"

바이든, 중국 견제·이란 고립 정책 파탄 자초

 

왕이 중국 외교부장(사진 가운데)이15일  베이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외교 차관과 함께 제1차 3자 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2023.12. 15.  아랍 뉴스 홈피 갈무리(SPA)
왕이 중국 외교부장(사진 가운데)이15일  베이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외교 차관과 함께 제1차 3자 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2023.12. 15.  아랍 뉴스 홈피 갈무리(SPA)

사우디-이란, 중국과 '의기투합'…3국 밀착 가속화

아랍·중동 지역에서 중국의 전략적 행보가 한층 더 대담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하며 가자 전쟁의 즉각 휴전에 '홀로' 반대하면서 이 지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사이에 아랍·중동의 편을 들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첫 '3자 공동위원회' 회의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두 나라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던 '베이징 협정'의 후속 조치다. 뭣보다 세 나라가 '3자 협의 틀'을 정례화하면서 경제와 안보를 비롯한 전 분야에서 밀착을 가속화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 협정을 계기로 이슬람 수니파의 수장인 사우디 왕국과 시아파 수장인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기로 다짐했다. 2016년 사우디의 이란 성직자 처형으로 단교한 지 7년 만이었다. 화해 흐름을 타고 양국 외교부 장관이 서로 상대국을 방문하고 대사관을 다시 열었으며, 마침내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1월 11일 사우디를 찾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정상회담까지 했다.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주재한 이날 '3자 합동위원회' 회의에는 사우디에서 왈리드 빈 압둘카림 알후라이지 외교차관, 이란에선 알리 바게리 카니 외교차관이 각각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다.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협의 최종회의에 참석한 사우디 대표단(왼쪽)과 이란 대표단, 그리고 이 회의를 주재한 왕이 중앙위 국무원 등 중국 관계자들(중앙) 모습. 2023.03.11. 신화 연합뉴스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협의 최종회의에 참석한 사우디 대표단(왼쪽)과 이란 대표단, 그리고 이 회의를 주재한 왕이 중앙위 국무원 등 중국 관계자들(중앙) 모습. 2023.03.11. 신화 연합뉴스

왕이, 사우디-이란에 "외세 개입 배격" 주문

이 자리에서 왕 부장은 사우디-이란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세 가지 조언을 내놨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가 전했다. 첫째는 '베이징 협정'이 상징하는 양국의 전략적 화해 결정을 변함없이 견지하라는 것이다. 대화와 협의를 통해 계속해서 신뢰를 구축하고 궁극에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우호 관계로 나아갈 것을 희망했다. 둘째는 양국 관계의 추가적 진전을 위해 경제, 무역, 안보, 국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 확대다. 셋째는 양국이 관계 개선 과정에서 외세 개입을 배격하라는 주문이다. 뭣보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임은 물론이다. 특히 왕 부장은 "중동은 더는 강대국들의 경기장이 아니며, 중동의 운명은 중동 국가 인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 매체인 아랍 뉴스와 이란 관영 이르나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와 이란 대표단은 이번 3자 합동위원회를 주관하고 그간 중재를 해온 중국에 고마움을 표하고 '베이징 협정'의 이행을 다짐했다. 아랍 뉴스는 이날 회의는 '베이징 협정'에 따라 개선되고 있는 사우디-이란 관계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사우디-이란의 3자 협력 강화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하마스를 제거한다며 지상전을 강행하고 있다. 2023.12.15 [AFP=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도 하마스를 제거한다며 지상전을 강행하고 있다. 2023.12.15 [AFP=연합뉴스]

가자 군사작전 즉각 중단·강제 이주 반대 합의

당면한 최대 현안인 가자 전쟁을 두고도 깊이 있는 협의가 이뤄졌다. 3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세 나라는 2만 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하고 150만 명의 강제 난민을 만든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작전과 가자 및 요르단강 서안에서 벌어지는 대참극에 우려를 표시하고 중동과 세계의 평화·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세 나라는 한 목소리로 △ 이스라엘의 가자 군사작전 즉각 중단 △ 지속가능한 민간인 구호 제공 △ 팔레스타인 주민 강제 이주 반대를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반드시 팔레스타인 주민의 의지가 반영돼야 하며, 팔레스타인인의 국가 수립과 자기결정 권리를 지지했다. 왕 부장은 분쟁의 해결은 반드시 팔레스타인 인민의 의지와 역내 국가들의 정당한 우려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지고 '두 국가 해법'에서 일탈해선 안 된다면서 "긴급한 임무는 가자에서의 휴전과 전투 중지를 밀어붙이고 인도주의적 구호를 진전시키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왕 부장은 사우디와 이란이 공동으로 이슬람 국가들을 압박해 이-팔 분쟁 격화에 대한 더 강력하고 단합된 입장을 만드는 작업에 중국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1호기에 탑승하기전 손을 흔들고 있다. . 2023. 12. 17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1호기에 탑승하기전 손을 흔들고 있다. . 2023. 12. 17 [AFP=연합뉴스]

바이든, 중국 견제·이란 고립 정책 파탄 자초

10·7 하마스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군사작전 이전까지만 해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미국과 심도 있는 협상을 벌여왔던 점을 고려하면 구도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미국은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2020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를 필두로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일부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끌어낸 데 이어,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 주도로 중동을 안정시킨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미 1979년과 1994년 이스라엘과 각각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카드는 사실상의 '화룡점정'으로 여겨졌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에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 전략을 파탄낸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바이든 자신이다. 10·7 사건 직후부터 7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마스 제거와 이스라엘 자위권을 운운하며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방불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군사작전을 줄곧 싸고돌고 있기 때문이다. 가속화하는 중국과 중동의 두 맹주 간의 밀착은 바이든에겐 두고두고 두통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1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45차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가자전쟁 즉각 휴전 결의안을 표결한 결과193개국 중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해 단 10개국만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은 153개국, 기권은 23개국이었다. 2023. 12. 15. [유엔총회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12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45차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가자전쟁 즉각 휴전 결의안을 표결한 결과193개국 중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해 단 10개국만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은 153개국, 기권은 23개국이었다. 2023. 12. 15. [유엔총회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안보리·유엔총회 표결, 미국·서구의 '독선' 입증

아랍·이슬람권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날로 고립되고 있다. 거의 '왕따' 수준으로 전락했다. 지난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와 12일 제45차 유엔 긴급 특별총회가 이런 미국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8일 안보리 특별회의는 가자 상황의 절박성을 감안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52년 만에 '비상대권'인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하면서까지 소집했다. 중동의 대표적인 미국의 동맹국인 UAE가 주도하고 100개국이 서명한 즉각 휴전 결의안을 상정했지만, 유일하게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비토(거부권 행사)해 좌절시켰다. 아랍·이슬람권은 즉각 반발했다. 아랍 국가를 대표한 이집트와 이슬람협력기구(OIC) 의장국인 모리타니가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유엔총회 결의안 377A(V)를 이례적으로 발동해 같은 내용의 즉각 휴전 요구안을 유엔 긴급 특별총회에 올렸다. 바이든에게 표결 결과는 참담했다. 193개국 중 찬성 153, 반대 10, 기권 23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을 빼면 서구에서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오스트리아 둘뿐이었고, 기권도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넷뿐이었다. 미국, 더 나아가 '한 줌의 서구 나라'가 국제 여론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웅변해준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취임이후 '가치 외교'와 '70년 동맹'을 내걸고 시종일관 미국을 맹종해온 윤석열 정부까지 아랍ㆍ중동국을 의식해 등을 돌렸을 정도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14일 자에 실린 리서치 네크워크인 '아랍 바로미터'의 튀니지 주민 인터뷰 조사를 보면 10·7 사건 전과 후의 미국 호감도는 40%에서 10%로 떨어졌고 비호감도는 56%에서 87%로 급등했다. 바이든 지지율은 29%에서 6%로 추락했다. 이 조사는 10월 27일까지 진행한 것이어서 그 이후 가자 상황을 고려하면 훨씬 더 악화됐다고 봐야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 워싱턴D.C. 국무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3 12. 07 [AFP=연합뉴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 워싱턴D.C. 국무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3 12. 07 [AFP=연합뉴스]

영·독 외무 "너무 많이 죽어…즉각 휴전은 반대"

이스라엘의 광기 어린 군사작전의 부작용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15일 가자 북부에서 이스라엘인 인질 3명을 오인해 사살했다. 이에 반발한 이스라엘 시민 수천 명이 16일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을 규탄하고 인질 석방을 위한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AFP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또한 이스라엘 저격수가 가자의 한 교회에서 비무장 상태의 모녀를 사살했다. 이렇게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는데도 영국과 독일은 '지속가능한 휴전'을 주장하면서 즉각적 휴전에는 반대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과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영국 선데이타임스 공동 기고문을 통해 "너무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면서도 "즉각적인 전면 휴전을 지금 요구하는 것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오늘만 전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며칠간, 몇 년간, 몇 세대 간 지속하는 평화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속가능한 휴전'이라고 말을 그럴 듯 하지만, 지금 휴전은 불가하단 얘기고 추가적인 민간인 인명 피해도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영국과 독일은 지난 12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기권했다. 지난 75년의 팔레스타인 참극을 연출한 장본인인 영국과 히틀러 시절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를 저지른 독일이 미국과 더불어 또다시 이스라엘의 반인류적 범죄 행위를 용인하면서 '공범'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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